마음 곳간 (64) 썸네일형 리스트형 지혜로운 불자가 되는 길 지혜로운 불자가 되는 길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온통 다 번거롭게 보입니다. 반면,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세상 또한 맑고 깨끗해질 것입니다. 또 가까운 이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좋아하고 가까운 이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함께 힘들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이며, 스스로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또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이 세상이치인데, 衆生心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기에만 집착[執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자가 겪고 있는 행복과 불행, 기쁨과 즐거움, 고통과 괴로움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자작자수.. 남과 나눌 줄 아는 복을 실천해야...! 신년 법문 분명하게 보는 안목이 열리면 전체를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부분적인 것은 누구나 다 알고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구는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우주의 일부분이며 또한 우주와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는 말씀,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진리를 배워도 나 혼자 잘 살길 바랍니다. 나만 잘되길 바랍니다. 우리만 잘되길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과 세상과 우주와 인드라망으로 연결돼 있어서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똑똑한 것 같아도 물과 공기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가본 적은 없지만, 경주에는 최부자댁이 있다고 합니다.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집은 몇 백 년.. 업 소멸 위해 염불공덕 쌓아야! 우리 중생들은 살아가면서 입만 떼면 업(業)을 짓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업을 소멸하거나 닦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이란 말처럼 우리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도 드문데 말이지요. 자 그러면 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면서 일이 뜻대로 잘 안 풀릴 때 뭐라 그럽니까. “나는 왜 이리 전생에 지은 업이 많은 것일까?” “업장이 얼마나 두텁길래 이리도 일이 안 풀리는 것일까” 등과 같은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대체 업이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왜냐하면 이 업이라는 말의 어원이 본래 우리말이 아니거든요. 업은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인데 이것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국 땅으로 불교가 전해지면서.. 자비로우신 부처님 마음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자비로우신 부처님 가장 어두운 곳을 밝은 빛으로 먼저 밝히려는 심정으로. 호흡하기 어려운 곳에 미묘한 향으로써 정화시키는 마음으로 한줄기 향을 사릅니다. 사바의 인연으로 이루어진 인연들 중. 하고많은 중생 두루 굽어 살피시사. 각기 맡겨진 분량의 그릇대로 쓰임 받고 벅찬 환희 심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들의 인생. 삶, 계획, 모두 주관해 주시고 경영해 주소서. 하루, 하루 나아지는 과정이 되어가고 있사오니 부처님 전에 영광을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돌보시고 이끄시고 지켜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스스로 팔정도의 부처님 크신 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삶을 개척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받아들이고 확신하면 그 사람은 부처님 말씀의 테두리에 알 맞는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 매일 나를 바꾸는게 인과응보! 무소구행(無所求行)의 삶! 대가를 구하는 바가 없이 선행을 하면서 세상을 살라입니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대가를 받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행하라는 말이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 탐욕과 집착은 계속 업을 쌓기 때문에 아무리 공덕을 베풀어도 소용이 없다. 공덕 복덕을 베풀더라도 영원히 불생불멸한 근본 그 자리에 앉아서 공함을 알고 베풀어야지, 그 이치를 모르고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 만유는 공하여 항상 함이 없으니 집착함이 없어야 삼독에서 벗어나, 그러고 나면 칭법행(稱法行)이라.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본래의 마음, 성품의 근본자리, 선악시비와 공덕 복덕을 다 떠나 불생불멸, 부증불감, 선악도 끊어지고, 시비도 끊어진 영원한 진여자성의 자리에 앉아서 살라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억천만사가 떠오.. 운명의 수레바퀴! 불교에서는 운명이나 숙명 대신에 스스로의 삶을 나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인과(因果), 업보(業報) 론에 기초하고 있다. 누구나 물론 전생의 업인(業因)에 따라 자기만의 삶의 모습을 갖고 태어난다.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살 것인지, 어느 정도의 학벌과 능력과 외모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얼마 정도의 행복을 누리다가 언제쯤 죽게 될 것인지에 대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 정해진 업력(業力)을 받고 태어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떤 배우자를 만날 것인지, 어느 정도의 대학이나 학벌을 가지게 될 것인지, 어떤 회사에 취직하여 어느 정도까지 진급을 하게 될 것인지, 어떤 인연을 만나서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게 될 것인지, 언제 어떤 병이나 사고로 얼마만큼 고통을 겪.. 업생(業生)에서 벗어나 원생(願生)으로! 우리가 생사 일대사를 해결하게 되면 생사에 자유자재하게 됩니다. 중생은 업생(業生), 업대로 삶을 살게 되지만 참선 잘한 도인은 원생(願生), 원력을 세운 대로 살게 된다. 겉보기에는 우리가 똑같이 살아가는 인생이라 하지만 차별이 생깁니다. 섭생은 업에 끄달려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저금통장에 있는 돈 까먹듯이, 과거에 지은 대로 금생에 받아서, 또 금생에 지은 대로 내생에 흘러가는 것이 바로 업생, 업에 따라 사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한 분들은 업성에서 벗어나 원생을 살게 됩니다. 원생은 서원, 원하는 바에 따라서 태어나고 서원을 세운 대로 살아갑니다. 큰스님들 중에는 돌아가실 때 ‘내가 다음 생에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들에게 불법을 전파하리라’라.. 노력한 댓가! 달라지는 삶! 중생의 번뇌는 창공에 구름이 일 듯이 무한 히 일어납니다.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라는 말은 팔만사천이란 숫자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많고 많은 번뇌가 무한히 일어난다는 말이지요. 중생들이 팔만사천가지 번뇌를 갖고 있으니, 그 번뇌를 모두 없애 버리기 위해서 많은 교설을 한 것이지, 세존께서는 한 법도 설하신 것이 없습니다. 세존께서 깨달으신 법을 ‘무유정법無有定法’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라 합니다. 법이란 꼭 ‘이것이다’라고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부 하나로 통합니다. 그러니까 천경만 론(千經萬論)이 모르고 보면 말이 다르지만 알고 보면 다 똑같다는 뜻, 그렇게 온갖 번뇌를 소멸하는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은 모든 것은 누가 던져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 번뇌 망상의 근원 불교수행은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 번뇌 망상을 물리치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텅 비우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기도는 수행법 중 하나입니다. 세존께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번뇌 망상들을 물리치고자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기도를 하는 행위는 결국 깨달음의 길로 가기 위한 방편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서원을 세우고 부처님께 지극히 기도를 할 때, 그 서원은 부처님이 이뤄주시는 것일까요? ‘저 사람은 내 명호를 지극정성으로 부르니까, 저 사람의 서원을 들어주자’ 하며 들어주시는 것일까요? 기도는 내 마음속에 있는 번뇌 망상들, 탁한 부분들을 맑게 해 마음을 밝힘으로써 업장이 맑아지게 되는 수행입니다. 업장은 업으로 인한 장애입니다. 그 장애가 맑아지니 그동안 장애에 의해하기 어려.. 원력 한 칸 방 어찌 그리 너무도 고요한가 만 가지 인연이 모두 적막하네. 길은 돌 틈으로 뚫려 있고 샘은 구름 속에서 새어나네. 밝은 달은 처마 끝에 걸려 있고 산들바람 숲 속에서 일어나네. 누구 따라 고요히 앉아 참 즐거움 배우려나. “우리가 사는 기세 간은 지진, 태풍, 해일 등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어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니다 재앙이 없으면 테러를 비롯해 서로가 투쟁을 해 살상을 일삼는 등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생명을 존중하고, 자비사상으로 남에게 베풀면서 살라는 보살행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찰나 찰나 변해가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생명이 있는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면할 길이 없다, 불교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부처가 될 수 있는.. 마음자리 밝아지면 행복” 한 생각 바꾸면 생산자 요. 마음자리를 다 밝아지게 하고 그렇게도 간절히 행복을 바라지만, 많은 사람들의 현실은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지 행복은 타고난 마음자리가 영원히 밝아지는 것 나와 상대 둘 아니죠 마음이 밝아지면, 나와 상대가 적중하게 됩니다. 나와 상대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밝아지는 것, 마음, 지혜는 모두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하나입니다. 마음이 밝아지면 시간에도 공간에도 속해지지 않아 생도 다스리고 별도 다스리기 때문에 그 역량으로 대우주를 통솔하고, 그 지혜자원은 결코 줄어들지 않습니다. 유정물이든 무정물이든 종합적으로 생명체 어느 생명이든 시작할때 지혜의 역량이 전체 생명의 원리 원천이 되고 모체가 각자 생명들의 생사요체가 연결돼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 선근 공덕 종교에 입문하게 되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내면적 동기를 갖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그 계기를 일별 하여 보리심을 발하였다고 하며, 그 보리심은 깨달음의 발단이 되고 불자들이 이상으로 하는 완전한 자유 종자가 되며 궁극에는 이타의 덕성을 함양시켜 밝은 세상을 구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독(三毒)으로 얼룩진 무한생사의 풍랑 속에서 진정한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밝기를 헤아리기 어려운 등불을 밝히는 것이요 세간의 빛깔에 비유할 수 없는 장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무변광명과 무한 장엄자비를 계발하는 일, 이것이 참으로 보리심을 발하는 일이며 출가입신(出家入信)하는 길입니다. 삼독을 여의는 길이 출가요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입신의 길이니 참으로 완전히 비우면 만덕(萬德)이 꽉 차게 되는 것입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 불자님이시여! 불상은 조각이든 그림이든 부처님에 대한 형상이지 부처님은 아니다, 부처님은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나 지혜의 눈을 떠 깨닫고 깨달은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행 할 수 있다면 그가 곧 부처이다 부처님은 예배의 대상이 아니고 그 어떤 우상도 아니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로 충만한 인격의 소유자이지요 그러므로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고 나와 이웃이 다 함께 지혜롭게 잘 살아가는 마음밭을 닦아가는 길이다 이러한 인격에 귀의하는 것은 곧 본질적인 자아에 눈을 뜨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 형상을 모시고 애경 하며 그 뜻을 이어받기 위하여 각자 지혜의 눈을 뜨고 저 함이다 부처님 本體인 法身은 宇宙의 대광명이며 모든 衆生의 생명의 根源이다 그래서 無量光 또는 無量壽라고 한다 그래서 석가모니.. 매 순간 일어나는 경계에 끄달리지 말라 어떤 경계 닥쳐도 ‘공부’로 알아야 -“마음에 묻고 맡기는 습관에서 답이 나와요”- -“苦를 苦라 집착하면 별도에 이르지 못하죠”- “항상 좋은 일만 생기지 않는 것은 파도나 잔잔한 물이나 동등하듯 그 이치 알게하기 위해서죠” 우리에게 제일 급한 게 뭐냐 하면, 자기 뿌리를 자기가 믿는 겁니다. 배를 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선장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를 믿습니까? 그래서 파도가 치든 잔잔하든 양면을 다 놓고 그 선장한테 맡겨 놓는다 이겁니다. 선장이 배를 끌고 갈 수 있게끔 만들어야지, 파도가 친다고 해서 우왕좌왕하며 마음이 흔들린다면 결국에는 배가 뒤집히죠. 우리 몸뚱이를 배로 비유한다면선장인 주인공이 자기를 이끌고 가는데 바깥으로 자꾸 끈 달린다 면목적지까지 목적지까지목적지까지 제대로 끌고 갈 수가.. 不二門 나오는 곳에 되놓으면 일어났다 소멸되기 마련! 둘 아니게 진실히 믿고 믿는 마음으로 채찍질해야 자생중생 스스로 제도 하나도 걸림없이 살 수 있는데 자기가 긁어서 고를 만들고 자기가 긁어 애고·병고 만들어 내면에다 놓고 들어가야 정(定)에 들어 진실하게 믿고 어떠한 문제든 타파해 나갈 수 있는 능력 길러야 이렇게 더운데도 불구하고 한자리를 또 하게 됐습니다. 물론 세상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걸 보면 마음과 마음이 전달돼서 한치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로 같이 돌아가고 살고 있지만 모습은 다 각각인 것처럼 만났다고 하고 또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항상 말씀드리지마는 아버지가 됐다가 남편이 됐다가 아들이 됐다가 이렇게 순간순간 바뀌면서 돌아가듯 우리가 헤어졌다 만나.. 바람같은 인생 외로운 나그네 눈물샘속으로 별하나 진다 얼마나 멀리 왔을까? 사람이 그립구나! 저 만치 저녁이 다가와 모두들 돌아가는데 오늘은 어디서 쉴까 머무를 곳이 없구나! 지친 나그네 가슴속으로 꿈하나 진다 얼마나 멀리멀리 왔을까 사람이 그립구나! 오늘은 어디서 머무를 곳이 없으니 지친 나그네 심연으로 저밀어오는 애절한 이야기 눈꽃이 날린다 얼마나 터덜터덜 걸어 왔을까 긴 터널~~ 나그네가 쉴 곳이 어디멘가! 그 어디 있을까 어둠이 내리면 그대 허상을 찾아 텅빈 거리를 헤메어 보지만 그리움도 외로움도 그대입니다 _()_ 본래 청정한 본연의 자리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번뇌 망상이 80억 도 더 된다고 합니다. 그 한 생각 한 생각 念念生滅心, 그것이 모두가 다 마(魔)거든요. 이러한 번뇌의 마가 熾盛할 적에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기도를 하든 하나를 일념으로 해 나아가면 한 생각이 또렷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 마치 급히 흘러내려가는 여울물에 달빛이 비쳤을 때 물길이 아무리 세차게 흘러가도 달빛은 떠내려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공부가 일념이 되어서 온갖 경계에 부딪치더라도 조금도 동요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그야말로 動靜一如가 됩니다. 더 나아가면 夢中一如, 꿈속에서도 한결같이 되어서 나중에는 , 熟眠一如 잠이 푹 들어서 꿈도 생각도 없을 때 한결같이 깨어있는 주인공이 생생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경계에 부딪쳐서 心機一.. 누가 내것 만들어주는가을 바라지 말라 법당도 꼭 사찰에 있는 법당만 법당이 아니라 각자 자기 몸뚱이가 바로 법당입니다. 내가 없다면 세상도 없고 상대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법당일 수밖에요.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있는 곳이라면 변소간도 부처님이 계시는 법당인 셈이죠. 법당에 와서 절을 할 때도 ‘ 아, 저 부처님 모습이 내 모습이고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이고 부처님 생명이 내 생명이니 모두가 둘이 아니구나’하고 마음을 둥글려서 한다면 일배를 올린다 해도 삼천배 못지않습니다. 이런 마음의 이치를, 이렇게 시원하고 광대무변한 이치를 여러분 모두가 알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어서 우주 바깥도 한 생각에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문지방 너머도 한생각, 천리만리도 한 생각, 지구 바깥도 한 생각, 한.. 섬김과 희생 부처님처럼 사는 다섯 가지 조건 부처님처럼 살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자비심을 갖는 것입니다. 경전에서 자비심에 대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를 어머니가 자식 사랑하듯이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항상 즐거운 마음을 갖고 모든 사람들의 어려움을 막아주고 생각해주는 마음, 자비심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한없이 키우면 그것이 곧 행복을 가꾸는 길 중에 하나가 되는 따뜻한 미음을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복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나오는 보시가 바로 복의 씨앗입니다. 끊임없이 남에게 베푸는 것은 곧 나에게 저축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푸는 것은 부자로 사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고 훔치는 것은 가난한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 가피의 길 길 우리는 어제도 인생의 길을 걸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인생의 길을 걷고 있고 내일도 인생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할 것인가? 부처님의 법문(法門) 가운데 중요한 물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습마물(什徼物)이 임 마래(恁徼來) 오. 이것은 중국 송(宋) 나라 때의 속음인데 이 뜻은 "무엇이 이렇게 있는가?" "무엇이 이렇게 왔는가?" 이런 뜻입니다. 다시 부언해서 말씀드리면 "나라는 것은 대체로 무엇이며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대체로 무엇인가 하는 그런 해답이 내려지면 응당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그런 우리 삶의 의미(意味)도 거기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제까지는 내가 인생의 의미대로 바르게 살았던가? 바르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내일도 또 오늘 같은 연속이 아.. 반야선 해지기 전 자신을 한 번 만나보라 살 때 살 줄 알고 살아야, 갈 때 갈 줄 알고 갑니다. 오늘부터 해지기 전에 자신이 자신을 한 번 만나보세요. 뭐가 바쁜가? 죽자 살자 일하는 것이 늙어 죽는 것밖에 하는 것이 없어요. 늙으면 간다고 하지만 갈 곳도 안 찾아놓고 한 치 앞 갈 길도 모릅니다. 또 갈 놈이 누군지도 모르고 간다고 하니 전부 남의 다리 긁고 수박 겉핥고 살아요. 오늘부터 정말 ‘내가 누구냐?’ 한 번 물어서 대답 안 하고 두 번 물어서 답이 없으면, 세 번 만에 죽여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 말 안 듣는 놈에게 밥 주고 물 주고 하겠습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살면 ‘하나 둘 셋’ 할 때 나와서 서로 끌어안고 춤을 덩실덩실 추며 노래를 부릅니다. 천하 만물은 무비선(無非禪)이요, 세상만사는 무.. 무지한 사람은 기도해도 복을 짓지 못 함 경전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고 싶어 미륵보살에게 기도를 했답니다. 기도를 간절히 하니 대가를 주어야겠기 에 미륵보살이 그의 꿈에 현몽해 도량에 있는 바위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것이 금 덩 거리이니 가져가 잘 살라고 했어요. 금덩어리를 받은 그 사람은 세상에 이런 좋은 법이 있는데 헛고생했다 싶어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래, 이번엔 미륵보살님이 이를 가리키며 금 덩어리이니 가져가라고 했어요. 그러자 이에 재미가 들린 그 사람은, 더 큰 부자가 되려고 꾀를 냈어요. 미륵보살님의 손가락을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손가락질만 하면 금 덩어리가 되니까 손가락이 탐난 거지요. 그러나 복이 있는 사람이 복을 짓는 것이고, 인과가 있.. 다라니 수행 거친 마음 밝히는 등불을 자성 깨쳐 부처 이룬다” 백 년 동안 쌓은 재물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지만 3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동안 보배가 됩니다. 부처와 조사스님들은 ‘명심견성성불(明心見性成佛)’이라고 했습니다. 거친 마음을 다스려 맑게 밝히면 자성을 볼 수 있고 자성을 확연히 깨치면 곧 부처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 닦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흔히 부처가 다 된 것처럼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막상 경계에 처하면 살림살이가 다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옳고 그른지는 스스로가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자기 식으로 잘못 해석해서 말하면 사도요, 마도가 되니 신앙생활은 제대로 해야 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훌륭한 눈밝은 선지식을 찾아 법을 묻고 되묻고 공.. 유수같이 빠른 세월, 분심을 일으켜 마음공부하라 (彼旣丈夫 汝亦爾 但不爲也 非不能也) 부끄러운 마음이 이렇듯 분심은 누구한테라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능력은 다 똑같다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분심을 일으켜서 한 번 해보시라는 말씀입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빠르게 흘러서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 버립니다 삶이란 영원히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하루빨리 분심 무상심을 내어서 수행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철저한 하심을 바탕으로 믿음을 일으키고, 눈 밝은 선지식이 제시해주는 말씀을 화두 삼아 공부하면서 막힘이 있을 때는 포기하지 말고 더 분심을 내어 자신을 채찍질하는 그런 불자가 되어주시길 간절히 발원합니다 소욕지족 소병소뇌(少慾知足 少病少惱). 적은 것으로 넉넉한 줄 알고 적게 앓고 적게 걱정하라. 본래다 갖추어져 있거늘 모르고 살아가는 중생 본래 물들지 않는 부처님의 성품 “저들 천상에 사는 중생들이나 인간들이나 지옥 악도에 떨어진 중생들이나 이 깨달은 눈으로 보니 부처님의 지혜, 여래의 눈, 여래의 몸이 엄연 부동하다. 비록 겉모습을 보면 탐, 진, 치 삼독 번뇌에 쌓여 있는 듯이 보이지마는 실로 깨달은 눈으로 보건대 그렇지가 않다.” 여래의 지혜, 여래의 눈, 여래의 몸이 엄연 부동하다. 번뇌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가 지니고 있는 여래장(불성, 부처님의 성품) 이것은 항상 깨끗하여 결코 물들거나 때 묻지 아니해서 덕스런 모습이 두루 갖추어 있어서 나와 더불어 다를 바가 없다. 이 대목을 우리는 정녕 기억하셔야 합니다. ‘일체중생을 보건대 결코 때 묻지 않았다. 물들지 않았다.’ 남 보기는 살인도 하고 나쁜 짓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중생.. 인연속 자비심 자비심 키우는 법 보다 구체적으로 일상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비심을 키워갈 것인지... 첫째, 수많은 생을 통해서 있었던 일체중생과 나와의 인연관계를 명상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들이 모두 한때 어느 전생에 선가는 부모형제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다음 생에도 또한 그와 같은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상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가 사랑하는 부모고 형제였다면 어떻게 대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좀 더 크고 너그럽게 쓰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대방과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는 훈련으로 학습한다 그런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은 때로 ‘나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인해서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반대로 사람마다 근기가.. 마음의 사계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계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는 사계절 없는 마음의 봄이 와야 합니다. 마음의 봄 말입니다. 사계절 중에서 겨울이 좋은 사람은 겨울로 쫓아가고 여름이 좋은 사람은 여름으로 쫓아가고, 가을로 봄으로, 사방으로 흩어져서 쫓아다니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근본에서 나오는 것이고, 일체 만법이 들고 나는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 한 군데에서 봄날을 맞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곤충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사생에 대한 문제가 천차만별로 돼 있는데, 천차만별로 돼 있는 그 마음 자체가 사계절 없는 마음의 봄이 된다면 얼마나 자유스럽고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뜻을 알지 못하고, 과거에 수억 겁을 거치며 쫓고 쫓기면서 살아온 악업 선업을 잔뜩 짊어지고 이 세상에 나서 지금 .. 만법이 유심조 생각이 끊어진 자리 생야사야(生也死也), 본래 한 물건이 없는데 무엇이 생(生)하고 또 무엇이 죽는단 말인가? 서산(西山) 대사의 게송(偈頌)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닭소리를 들으니 장부 하는 일을 모두 마쳤도다.” 이 장부의 일이란 바로 생사 일대사(生死一大事)를 이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생(生)이고 사(死)냐. 내 몸을 가지고 ‘나’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분명 나는 아니다. 다만 나라고 생각할 뿐, 먼저 나를 밝히자. 무엇인가 나의 몸을 끌고 다니는 것, 그것이 어떻게 생긴 물건이냐.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사종하처거(死從何處去)오.” 생(生)이 온 곳이 있다면 가는 곳도 있을 터, 생이란 허공에 뜬구름과 같다고 했다. 항상 뚜렷이 드러나는 한 물건, 그것은 허공에 뜬구름과는 다르다. .. 자신의 마음을... “안녕하세요?” 그동안 몸과 마음이 편안했느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엔 “부자 되십시오”한다면서요? 단순한 일상에서의 인사말이라 하지만 곱씹어 보아야 합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이전과 비교해 가치관과 세계관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서입니다 . 나와 남이 경쟁하는 회사에서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만 행복이 오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식과 재물을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합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 보고 있습니다 . 나는 주관이고 보이는 대상은 객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와 남을 항상 둘로 나누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이(不二)의 철학 정신으로 살아왔습니다 서양 철학에서는 ‘이성’을 중시하.. 가치관 가치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품이 바뀐다. 가장 소중한 나의 가치를 위해 날마다 공부하는 날이 되어야겠습니다_()_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