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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는 종교가 불교 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입니다.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불과 100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종교가 불교든 개신교든 천주교든 우리 민족의 모든 사람들의 몸속에는 불교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기독교인들은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극성스럽게 다니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대고 다니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느새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설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워낙 기복적인 종교이다 보니 귀가 얇고 근기가 하열下劣한 많은 사람들이 흡수된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종교만..
‘멈춤’ 법의 말씀 ‘멈춤’에는 자신의 선험적 견해의 작동을 멈추고, 밀당을 내려놓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나의 것’이라는 내 생각, 내 가치, 나의 개념들을 대상에 덧입히지 않는 것, 오쇼 라즈니쉬는 장미꽃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보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기억 경험 듣고, 보고, 알고 있는 것들을 텅 비워야 대상의 현재 실제 모습을 느끼고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대상을 알기 위해선 자신의 선험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한 멈춤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 오랫동안 바라보는 ‘머묾과 관찰’을 통해 장미와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때 ‘미지의 장미’라는 대상이 바라보는 존재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의 가치판단과 선호..
어떻게 하면 잘 사는가? 항상 깨어있는 마음 결국 인생의 근본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서 불제자가 된 지금, 지금 수행하지 않으면 다시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일로 미루지 말고 마음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걸어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사는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공헌하고 있는지 내면의 자성을 발견하십시오. 그러면 내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내 잘못이 보이고 자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영광된 삶일 수도 있고 부끄러운 오욕을 남기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가? 불법을 귀하게 여기고 거기에 의지해서 살겠다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본래 불성의 인품이 나도 모르게 자리를 잡아서 일상생활에서 보살로 살아갈 수 있는 ..
인과의 씨앗[업]은 썩지 않는다 [1] 인과는 당신들이 살아오면서 저지른 죄[업], 그 업을 받지 않고서는 피할 수도 없다. 그래서 썩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법문도 알아듣지 못하면, 그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다. 내 짐을 지지 않겠다면, 내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내가 되받지 않는다면, 누가 받을 것인가. 좋은 말이든 나쁜 일이든, 내 짐을 내가 지지 않겠다면, 누가 대신 져 줄 것인가. 대신 밥 먹어 주고 대신 잠자 줄 수 없듯이, 대신 똥 누고 대신 아플 수 없듯이, 내 짐을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은 철칙이다. 한 치의 에누리가 없는 인과의 법칙이다. 누가 대신 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아무리 관세음보살을 찾고, 아무리 다라니를 외어도 자작자수의 법칙엔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자식이 ..
어묵이 마음이다 우리의 목전에 전개되고 있는 모든 것은 그대로가 허상입니다. 이 허상이 바로 허깨비입니다. 허깨비이기 때문에 거품 같고 안개 같고 구름 같고 연기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허무한 것입니다. 이 허무한 것에 마음을 두고 산다는 것 자체가 일장춘몽입니다. 즉 거북이의 털, 토끼의 뿔입니다. 여기에는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현실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지 현실을 벗어나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여기에서 산승이 하는 말 모두가 거짓입니다. 그러나 거짓 가운데 진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법입니다. 이것은 허무한 말과 뜻과 생각이 아닙니다. 도를 이룸으로 법을 알 수 있는 것이지 말로써는 절대로 깨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도는 선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법이다, 선이다, 도다, 하..
나눔의 밭을 일구세요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나누며 살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고, 자신의 깊은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전율과도 같은 삶의 의미를 느껴 보세요. 오늘도 여러분은 부처님 앞에 몸을 숙여 3배를 하며 무엇인가를 빌었을 겁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지라도 여러분이 부처님께 빈 것은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란 것. 여러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방법 하나를 제시할까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불교는 인과(因果)의 종교입니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고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간단한 원리가 바로 인과입니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만 잘 파악하면 최고의 불자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훌훌 나뭇잎들을 떨구어 내는 저 가을 나무들을 보고 ..
흘러가는 물처럼 마장과 싸워이겨내라 우리는 세세생생 버릴 줄 모르는 집착의 세계에서 살아왔습니다. 『능엄경』에는'오십종변마사(五十種辯魔事)'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색 · 수 · 상 · 행 · 식 5 온의 각각에 해당되는 열 가지씩의 마구니의 일을 곱하면 오십 종 변마사가 됩니다. 곧 쉰 가지의 마구니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 일상생활이 전부 여기에 해당됩니다. 심지어 머리를 깎고 절에 계시는 큰스님들이나 큰 절의 조 실 스님이라도 이 오십 가지 마구니의 장애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능엄경』에서는 무섭도록 마장에 대해 아주 세밀하게 밝혀놓았는데, 그것들은 과연 어디로부터 생겨난 것일까요? 이 마구니 모두가 내 마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내 부모,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내가 지워진다는 것은 있을 수..
지혜와 자비 위없는 지혜와 자비! 세존께서 지니신 여러 가지 많은 훌륭하신 점 가운데서도 특히나 위대하시게 생각되는 것은 지혜와 자비일 것이다. 위없으신 세존의 지혜와 중생들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시는 현실적 자비심으로서 이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으며 허공에 떠있는 태양과 달과 같은 것으로서 태양의 빛이 만물을 성장시키듯 부처님의 지혜로서 모든 중생들이 무지의 어두움에서 지혜의 밝은 빛으로 나아가게 하며 달밤의 서늘함이 모든 중생들을 고뇌의 아픔에서 휴식을 취하게 하듯 세존의 자비가 중생들로 생로병사의 윤회고통에서 해탈의 길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혜와 자비가 부처님을 모든 수행자나 성자들보다도 훨씬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게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하셔야 할 모든 임무를 완성하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언제나..
긴 무위의 자연과 벗삼아.... 우리 중생들이 구하는 행복인 오욕락은 사실은 아무런 자취가 없습니다. 이 몸뚱이를 아무리 아낀다 해도 이 몸뚱이는 자취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 사람이 나를 배신했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마는 가장 지독한 배신자(背信者)가 무엇인가 하면은 바로 자기 몸뚱이입니다. 아무리 아껴봐야 죽을 때는 미련 없이 갑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가장 지독한 배신자는 바로 우리 몸뚱이입니다. 분을 칠하고 연지를 칠하고 다이아몬드로 몸을 장식(裝飾)한다 하더라도 제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먹인다 하더라도 이런 몸뚱아리 이것은 너무 많이 먹으면 그냥 아퍼버리겠지요. 우리 중생들은 법학을 모르고, 열반 락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몸의 노예(奴隸)가 되어서 한 세상 보내기가 쉽습니다. 이것이 성자의 가르..
장엄하게 펼쳐진 파노라마 세상 _()_ 이 세상을 천차만별로 만들어 놓고 천차만별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을 알아야 하겠지요? 또 나를 돌아다볼 때 온 것은 누구이고 간 것은 누구냐, 누가 울고 누가 웃느냐, 그렇게 하는 근본은 누구냐를 알아야 하겠지요? 간단히 말해서 자기를 형성시켰고 수억 겁의 진화를 이끌었고 지금의 자기를 움직이게 하는 本來 면목이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가, 있다면 대답 좀 해보아라 하는 것이 '관'입니다. 말하자면 지켜보는 것이기도 걷는 것은 누구고 말하는 것은, 듣는 것은, 보는 것은 누구인지 지극한 마음으로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면 '나'라는 조건을 한번 돌아다보는 계기가 있어야 할 것이고 돌아다봤으면 믿어야 하고 믿었으면 놓고 맡길 줄 알아야 하겠지요...
한 낮 무더위 바다와 꽃과 쉬엄! "우리 모두는 내일이 없다.라고 " 오직 "지금·여기"가 있을 뿐이다. 내일이나 모레를 기약해서는 안된다.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깨어있는 정신으로 직시하면서 묵묵히 코끼리 걸음으로 걸어가라. "지금·여기"가 바로 삼천대천 세계의 근본 자리이며, 바로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자 영겁의 시간을 머금고 있는 자리이다. 고로 올바른 신행을 하는 사람은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그대로 영원이요 무한의 시간으로 살아간다. 지금·여기가 그대로 도량이다, 자성이 그대로 사찰이다. 세속을 떨치고 입산해야만 입산이 아니고 몸을 일으켜 집을 떠나야만 출가가 아니다. 마음의 산, 마음의 도량으로 입산하고 출가해야 한다. 밖으로 끄달리고 집착하는 마음을 거두고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 그대로 귀의이다.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
자동양조증후군 몸에서 절로 술이 만들어지는 병 김응빈의 생생바이오 ​자동양조증후군의 주된 발병 원인은 장내미생물 생태계 교란으로 급증한 효모가 창자에서 알코올 발효를 과도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 어느 휴일, 심드렁히 TV 채널을 돌리다 '자동양조증후군(Auto-Brewery Syndrome, ABS)'이라는 희귀병 환자 사연에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이 병에 걸리면 알코올 섭취 없이 혈중알코올농도가 눈에 띄게 올라간다. 쉽게 말해서 회식 자리에서 술은 입에도 안 대고 밥만 먹었는데, 음주단속에 걸리고 만다는 얘기다. 당사자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억울할지 안쓰러움과 함께 도대체 어떻게 그런 병이 생길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미생물 공부를 업으로 하다 보니 장내미생물 생태계에 모종의 이상이 왔을 거라고 직감했고, 즉시 문..
안심입명 (安心立命) 우리 인간(人間) 치고서 마음이 안락(安樂)스럽고, 마음이 편안(便安)하고, 그러한 자기 안정(安定)을 도모하지 않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행복(幸福)이라는 것도 마음이 안정(安定)되지 않으면 얻으래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법문(法門)의 대요도 모두가 다 안심법문(安心法門),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안심법문이 기본적인 법의 내용이 되어 있습니다. 달마스님께서 인도(印度)에서 일부러 중국(中國)으로 오신 뜻도 역시 안심법문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길을 갈 때에 길의 순로(順路)라든가 길목을 잘 모르면은 마음이 안정(安定)될 수가 없습니다. 그와 똑같이 우리 인생(人生)살이도 우리 갈 길을 훤히 알아 버리고서, 인생은 대체로 어떤 것인가, 그 의미(意味)도 알고,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目的)이 ..
내 안네 다 갖추고 있는데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건 다 다릅니다. 당장 밥 한 끼가 없어도 마음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밥은 저절로 들어오게 돼 있죠. 아마도 그 뜻을 잘 모르시는 분도 많을 거예요. 당장 밥 한 끼가 없는데 어떻게 좋을 수가 있나 이러겠죠. 자꾸만 나무를 비유로 드는데 나무를 한번 보십시오. 뿌리가 있기 때문에 그 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을 안 해요. 그와 같이 우리도 불성이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불성이 나를 형성시켜서 이끌어가고 있는데 왜 주인의 걱정을 내가 맡아서 해야 됩니까? 그렇다고 해서 잘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 자리에 맡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공했으니까 없다, 나는 본래 이미 죽은 거다, 공해서 죽은 거다, 자타가 같이 죽은 거다, 자타..
마음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삼재가 없다 끊임없이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뀝니다. 물 론 부처님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도 없이 찰나찰나 나투는 생활이라고 하지만 우리 중 세계의 사람이 사는 데는 시간도 만들어 놓고, 공간도 만들어 놓고, 날짜도 만들어 놓고, 달력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살아가시면서 한번 더 가슴에 손을 얹고 내 마음 을 스스로 개선시키도록 다짐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항상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기를 모든 것은 자기 주처에서 하는 것이니 바로 자기 주처 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주처라는 것은 주장자도 되고 불성도 되고 주인공도 되고 자 부처도 됩니다. 하지만 그 이름들이야 뭐라고 부르든 어떻겠습니까마는 굳이 ‘주인 공(主人空)’이라고 하는 것은 천차만별로 살아나가는 일 중에 모두가 찰나찰나 나투 면서 과거로 돌아가고 아무것도 남..
진여불성[眞如佛性] 진여불성(眞如佛性) 조사어록(祖師語錄)에 산시산(山是山)이요 수시수(水是水)라, 산은 바로 산이요, 물은 바로 물이라는 그런 법어(法語)가 있습니다. 이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중생(衆生)이 본 산 그대로 산이요, 물 그대로 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삼독심에 가려서 실제적(實際的)인 실상(實相)을 못 보고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도 미처 못 보며, 또한 일체(一切)의 존재(存在)의 본성품(本性品)도 못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산은 바로 산이요, 물은 바로 물이라는 조사어록의 법어는 우리 중생이 보는 산 그대로 산이요, 우리 중생이 보는 물 그대로 물이라는 그런 의미(意味)가 아닙니다. 부처님 법문(法門)에는 많은 갈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고마문령(藁馬聞鈴)처럼 따라 ..
불성광명 얼마 안 가서 계절(季節)이 바뀌게 됩니다. 아직은 바람결이 쌀쌀하지만 그래도 봄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봄 그리고 여름이 오고 이내 다시 가을이 오고 하는 이것은 누가 막으래야 막을 수도 없을뿐더러, 가장 쉬운 일인 동시에 하나의 우주(宇宙) 섭리(攝理)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참선(參禪) 공부도 그와 같이 가장 쉽습니다. 보통은 참선을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어려운 공부로 압니다. 그러나 참선(參禪)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가장 쉬운 공부입니다. 그래서 불교(佛敎) 용어로 안락스러운 법문 즉 안락법문(安樂法門)이라고 합니다. 다른 것은 까다롭고 경(經)도 많이 외워야 하지만 참선공부는 경을 많이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선(參禪)은 어디서 빌려온 것도 아..
참선(參禪)의 요체(要諦) 우리가 바른 생각을 하고 거기에 따르는 바른 행동(行動)을 함으로 해서 바른 깨달음과 위없는 행복(幸福)을 얻습니다. 따라서 바른 생각이 없으면 부처님 가르침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른바 무명심(無明心)이라든가 무지(無知)라든가 그런 것을 가지고서는 부처님 가르침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중생(衆生)들의 가지가지의 고난(苦難) 같은 것은 모두가 연원(淵源)이 무명(無明)으로부터 옵니다. 십이 인 연법(十二因緣法)을 다 배워서 아시는 바와 같이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해서 거기에 행동이 따르는 것이고, 또는 우리가 식(識)을 받는 것이고, 또 무명(無明)이 없으므로 해서 거기에 따라서 우리 모든 업장(業障)이 소멸(消滅)되고 드디어는 깨달음과 행복(幸福)이 수반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무명..
安心立命(안심입명) 이렇게 날씨가 궂은데 먼 거리에서 고생하시고 오신 것은 다른 데가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좀 얻어봐야 되겠다는 자기 행복(幸福)의 한 조각이라도 얻어봐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어서 오신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 인간(人間) 치고서 마음이 안락(安樂)스럽고, 마음이 편안(便安)하고, 그러한 자기 안정(安定)을 도모하지 않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행복(幸福)이라는 것도 마음이 안정(安定)되지 않으면 얻으래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부처님 법문(法門)의 대요도 모두가 다 안심법문(安心法門),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안심법문이 기본적인 법의 내용이 되어 있습니다. 달마스님께서 인도(印度)에서 일부러 중국(中國)으로 오신 뜻도 역시 안심법문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길을 갈 때에 길의 순로..
나 없는 고향 길 찾아서! 위 없는 부처님의 이른바 法王法은 말을 떠나고 또는 一切相을 떠나 있습니다. 相對的인 말이나 형상은 제대로 진리를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法床에 오를 때는 마땅히 相을 떠난 法門, 또는 말을 떠난 법문, 즉 우리 중생의 상대 有限的인 말을 떠난 참다운 眞言을 法門해야 원칙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방(棒)을, 몽둥이를 텅텅 내리치기도 하고 그래서 禪機를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 따라서 이 자리는 그런 자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解說이 깃든 법문을 제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까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하고, 三寶에 귀의하는 그런 예식을 올렸습니다. 양족존(兩足尊)이라는 말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慈悲나 智慧나 그러한 모든 德性을 완전히 구비한, 완벽하게 구비한 부..
범부의 용심(用心)! 빛깔도 모양도 냄새도 더더구나 빗장도 없는 마음의 문이 관성과 업력으로 떠다니며 제멋대로 여닫으면 그것은 범부의 용심(用心)입니다. 수행의 동력을 통해 얻은 지혜로 어디서나 자유롭게 여닫되 만물을 유익하게 하면 그것은 바로 성인의 지혜입니다. 따라서 오로지 부처님께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버리라고 하셨던 그 가르침 하나를 가지고 우선 자기를 단련하세요. 그것은 분수와 위치를 알고 자기 역할을 하는 것에서 이뤄집니다. 어리석은 마음 욕심 분노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욕망으로부터, 아는 것으로부터,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때 마음은 그 본래의 빛을 찾습니다. 언뜻 지식의 습득과 지혜의 전승과정은 그렇게 상반되고 대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바탕으로 한 유용한 지식은 다시 큰 바다에서 합류하..
가피의 길 소리없는 길! 우리는 어제도 인생(人生)의 길을 걸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인생의 길을 걷고 있고 내일도 인생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할 것인가? 부처님의 법문(法門) 가운데 중요한 물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습마물(什徼物)이 임마래(恁徼來) 오. 이것은 중국 송(宋) 나라 때의 속음인데 이 뜻은 "무엇이 이렇게 있는가?" "무엇이 이렇게 왔는가?" 이런 뜻입니다. 다시 부언해서 말씀드리면 "나라는 것은 대체로 무엇이며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 그런 뜻입니다. 내가 대체로 무엇인가 하는 그런 해답이 내려지면 응당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그런 우리 삶의 의미(意味)도 거기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제까지는 내가 인생의 의미대로 바르게 살았던가? 오늘은 바르게 살고 있는 ..
매일 나를 바꾸는게 인과응보! 무소구행(無所求行)의 삶! 대가를 구하는 바가 없이 선행을 하면서 세상을 살라입니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대가를 받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행하라는 말이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 탐욕과 집착은 계속 업을 쌓기 때문에 아무리 공덕을 베풀어도 소용이 없다. 공덕 복덕을 베풀더라도 영원히 불생불멸한 근본 그 자리에 앉아서 공함을 알고 베풀어야지, 그 이치를 모르고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 만유는 공하여 항상 함이 없으니 집착함이 없어야 삼독에서 벗어나, 그러고 나면 칭법행(稱法行)이라.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본래의 마음, 성품의 근본자리, 선악시비와 공덕 복덕을 다 떠나 불생불멸, 부증불감, 선악도 끊어지고, 시비도 끊어진 영원한 진여자성의 자리에 앉아서 살라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억천만사가 떠오..
어둡고 우둔함이 곧 밝고 총명함도 아니다 “어둡고 우둔함을 능히 알 수 있는 그것은 결코 어둡고 우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시 어느 곳에서 초월하고 깨달을 것을 찾겠습니까? 지식인이 이 어둡고 우둔함에 의지하여 들어가야 만약 어둡고 우둔함에 집착하여 스스로 나에게 돌아올 몫은 없다고 여긴다면 어둡고 우둔함이라는 마귀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대개 평소에 지견(知見)이 많으면 깨달음을 찾는 마음이 앞에서 가로막기 때문에 자기의 올바른 지견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도 역시 밖에서 온 것은 아니며, 또한 별다른 일도 아닙니다. 다만 능히 어둡고 우둔한 것을 알 수 있는 주인공일 뿐입니다.” 어두우니 밝으니 우둔하니 총명하니 하는 것은 이미 사념(思念)에서의 일이다.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알고 우둔함을 우둔함으로 아는 것은, 밝음을 ..
그림자! 망상일 뿐! 마음은 얼마나 맑고 고요한 것일까, 우리도 마음이란 게 있지만 깨달으신 분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의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으십니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귑니다. 망울 튼 버들가지는 싱그럽고 시냇물은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흘러갑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아낙네들은 봄나물을 뜯고 있습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런 광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도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이 있으면 물을 보고 꽃이 있으면 꽃을 본다는 것. 이게 바로 空寂靈知입니다. 이 자리가 本心의 자리인 참 마음인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산에 올라가서 연 초록색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듣고, 흘러가는..
쉼 ! 생의 파장! 언젠가부터 따라다니는 이 고통! 상대가 나에게 주었다고 여겨 그 상대를 원망하고 저주합니다... 마치 유리병에 갖혀 그곳이 세상이 전부다 여기는 옹 절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상대로부터 받았다 여겼던 그 고통이 사실은 내 안에서 생겨난 욕망에 의한 것임을 인지합니다.. 잘 살펴보니 몽둥이로 나를 때린 상대를 그리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내 피부에 직접 와닿은 몽둥이에게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괴로움의 근원이 상대인지 나의 욕망인지 잘 살핀다면 거짓말 같이 질투와 증오 원망하는 부정적 마음이 사라짐을 사유합니다 마음에 큰 변화가 생기고 혼란이 야기될 때 침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답을 찾아 해 맺지요 아무리 찾아도 생각만의 해답은 진실함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는 침묵은..
자비로운 관세음 . “천룡팔부 신장들이 자비로 보호하고, 백천 삼매 속히 닦아 성취하고, 가없는이 몸은 밝은 빛이 깊게 되어, 가이없는 이 마음은 신통력을 감추는 곳, 번뇌 티끌 모두 싣고 고통바다 건너서 방편문을 넘어서 깨달음을 얻겠네. 자비로운 관세음께 귀의하여 원하오니, 모든 진리 얻게 하고 지혜 눈을 얻게 하여 모든 중생 제도케 하옵소서. 자비로운 관세음께 귀의하여 원하오니, 반야심을 발하게 하고 하루 빨리 고해바다 건너가서 계·정·혜를 빨리 얻게 하고, 하루빨리 법신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할 때 언제나 외우는 천수경의 일부분을 약해서 풀어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천수경을 항상 독송하면서도 근본 뜻은 마음에 새기지 아니하고 외우기만 합니다. 아무리 좋은 부처님 말씀, 진리의 말씀이라..
역경을 통하여 부처를 이루라... 이 거룩한 말씀은 늘 나의 마음을 흠뻑 적셔줍니다. 나날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일상을 도리어 더욱 값진 행복으로 되돌려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나날이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나아가는 일상이 늘 걸림 없이 뻥 뚫리길 바랍니다. 그러다가 장애가 올 때 한없이 괴로워 하고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며 때로는 크게 좌절하기도, 포기하기도 합니다. 장애가 바로 부처이며 괴로움의 경계가 바로 부처되는 경계임을 알지 못합니다. 죽기 싫어하는 우리의 마음... 그러나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준다고 하면 덥석 붙잡을 수 있을까요. 남들은 다 늙어 가는데 주위는 모두 변해 가는데 나만 죽지 않고 늙지 않고 늘 그대로 생생하다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친구들이며 사랑하는 여인이며 부모님 모두가 늙어 가는데 홀로 젊음을 즐..
만남 인연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대 숨 쉬는 하늘아래, 그대 머무는 세상에서, 추억 한 줌으로 살 수 있음도 행복이라면 행복이지요. 욕심부려 무엇합니까? 미우면 미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세상사 순응하며 살 일이지요. 성급한 걸음으로 앞서 갈 일 있겠습니까? 사랑이 부족했다면,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지요. 해답 없는 사랑, 규칙 없는 사랑일지라도 만남은 소중해야 합니다. 인연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젖은 어깨 털어 주고 때 묻은 마음 헹구어내 잘 익은 봄의 가운데로 함께 걸어가야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거리가 있습니다. 그 거리를 좁히고 믿음이라는 징검다리를 놓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친구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그 거리를 멀게 하여 무관심이란 비포장도로를 놓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타..
마음의 집착! 마음의 집착! 탐욕은 인간을 미혹한 삶으로 이끌어 수행을 통해서만 ‘탐욕’ 씻어낼 수 있다 ‘욕망을 최고의 반려로 삼는 사람은 오래도록 미혹의 세계를 헤맨다.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며 미혹한 생을 되풀이 할 수밖에, 그래서 이 미혹의 세계를 뛰어넘을 수도 없다. 이와 같은 사람은 탐욕이 괴로움을 낳는다는 것을 알아 집착을 끊어야만 한다.’ 인간에게 가장 큰 괴로움은 탐욕으로부터 오는 속박이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고 휘몰아 이로 인해서 인간을 미혹의 생으로 떠돌게 하는 원인이 된다. 부처님은 “나는 탐욕의 마음보다 더한 속박을 보지 못했다”고 이는 탐욕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을 악하게 만들고 미혹의 세계로 이끈다는 것을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욕구가 있다. ‘식욕’, ‘성욕’, ‘수면욕’이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