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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저 태양이 언제부터 시방세계를 비추기 시작하였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언제부터 돌기 시작하였는가?” “우리 인간은 언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이 세상 만물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조건이 있어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다. 머나먼 시간을 씨줄로 하여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 즉 공간을 날줄로 하여 거기 인과의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진다. 우리가 볼 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그 자리 그렇게 있지 아니하면 아니 될 여건이 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인과법이라 한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은 시간 공간 그리고 인과, 이 세 가지에 의해서 존재한다. 어떤 사어볼 수 없었을 것이다. 원인은 나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근본은 바로 나..
참 보시는 기쁨 주는 것! 보시는 기쁨 주는 것!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은 기쁨이다.그 기쁨은 사랑을 통해서나 물질적 소유를 통해서 아니면 종교적 희열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온다.“인간에게 가장 큰 보시는 상대방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즉 환희지 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환희지 보살이 필요한 시대라고 봅니다불교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 아닙니까.참선을 통해 우리는 낙을 얻을 수 있지만 세속에서는 오욕을 통해 낙을 얻을 수 있습니다.불교가 왜 좋은 것일까요. 진실로 나를 볼 수 있으면 늘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인 기쁨이 아닌자연스러운 법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에 맞는 참선, 즉 수행을 해야 합니다.”인간의 전부는 사랑과 희망이다.바람같이 흐르는 세월..
모두가 한 생각에 있다 지옥과 극락 한 생각에 있어,  지금 우리는 인간이야말로 극악극선의 존재임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아침 한 나절에 저렇게 혼란에 빠지고 수만의 인명 이 살상될 수 있다는 현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건의 이면에는 국가적인 이해관계와 인종적인 적대감 등등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문제는 죄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희생된 것인지 조차 알 길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인간은 한 마음을 펼치면 선으로 향하고 한 마음을 돌리면 악으로 향하는 존재입니다. 선과 악이 항상 함께 인간의 마음자리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하고 수행을 잘해서 선한 마음을 많이 꺼내어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
下心 잘난 척하는 마음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심(下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수행의 궁극으로 삼고 있는 무심(無心)조차도 사실 하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심이 안 되는데 무심이 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 하심이란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행자시절 최고의 덕목은 하심이었습니다.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이었지요. 그래서 행자 당시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꺾고 절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당연히 하심을 연습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마음을 낮추는 데서 참다운 공부는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감히 나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당신들은 스스로를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나 자신을..
의심이 없으면 법계도 없구서리![자리이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살아가는데 무엇이 제일 중요합니까? 잘 살게 해 달라고요?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요? 행복, 건강? 그것보다 먼저인 건 없습니까?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사는 걸까요? 자신을 버리고 살면 된다고요? 그런데 자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도 생각할 수 없거든요. 문제는 나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은 이기심을 버리라는 말이지 나를 어떻게 버립니까. 그리고 나를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남을 위할 생각도 못해요 . 그래서 부처님 법문에 ‘자리이타’라는 말이 있죠. “나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남을 위할 줄 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지 나를 위하는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나를 버리겠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나를 버린다”라..
번뇌망상이 본래 어디있느냐, 너희가 만든것이지 無相으로 爲宗하고 無住로 爲體하고 妙有로 爲用이라.공부에 대해서 말한다면 상이 없는 것으로 전체를 삼고, 주함이 없음으로써 체를 삼고. 마음의 용심하는 것으로 용을 삼으라 했습니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그러기도 하고 혹은 손가락을 척 내밀기도 하고 혹은 이렇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가리키기도 하는데 그것이 다 한 물건을 가리키는 방법입니다.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모든 스님네의 공부하는 방법이지요. 이 세상물건은 모든 것이 그늘이 있으면 양지가 있고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듯이 상대가 있는데 이 물건은 그렇지가 않아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뭐라고 입만 열면 한방 망이 맞아야 하지요. 말이 안 통하는 겁니다. 언어도단이고, 말 길이 끊어진 자리지요...
(照顧脚下)늘 자신을 돌아보세요! 산사에 가면 신발 벗어놓는 댓돌 위에 조고각하라고 쓰인 주련 걸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발밑을 살피라’는 뜻이지요.신발을 잘 벗어 놓으라는 뜻도 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 자기의 존재를 살펴보라는 의미입니다.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스스로 살펴보라는 법문입니다. 순간순간 내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가르침입니다.당나라 때 ‘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이라는 스님이 있었어요. 일찌감치 온갖 경전에 통달한 분이라고 해요. 하지만 많이 아는 것이 말재주나 늘릴 뿐 마음을 깨치는 데는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스승을 찾아다닙니다. 여기저기 다니다 마조스님을 만나게 됩니다. 대 선지식을 만나니 평소 늘 의문인 것을 묻습니다. “입만 벌리면 부처가 어떻고 보살이 어떻고 하는데 도대..
존재와 삶!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육신과 생각은 하늘과 땅이 열린 아득한 태초로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부모님들께서혼돈 속에서 이름 모를 생명체로 시작하여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며 진화하고 지혜와 사랑과 행복을 깨달아 물려주고 물려준 위대하고 숭고한 유산입니다. 우리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세상을 살 수 있음을 우리들의 부모님과 부모님의 부모님과 끝없이 이어지는 부모님들께서 마음을 육신과 생각과 함 몸으로 잉태하고 잉태하여 낳고 낳아주신 은혜 덕분입니다. 마음이 존재와 삶의 주체로서 그 공덕이 아무리 높다할지라도 사람 세상에서는 사람으로 낳아 사람세상을 살게 해 주신 부모님의 은혜에는 결코 비하지 못할 것입니다.마음이 비록 존재와 삶의 주체로서 감각, 언어, 행동 등 존재와 삶의 모든 능력을 갖추 어으나 육신세상의..
업을 뛰어넘으라! 불교에서는 운명이나 숙명 대신에 스스로의 삶을 나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인과(因果), 업보(業報) 론에 기초하고 있다. 누구나 물론 전생의 업인(業因)에 따라 자기만의 삶의 모습을 갖고 태어난다.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살 것인지, 어느 정도의 학벌과 능력과 외모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얼마 정도의 행복을 누리다가 언제쯤 죽게 될 것인지에 대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 정해진 업력(業力)을 받고 태어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떤 배우자를 만날 것인지, 어느 정도의 대학이나 학벌을 가지게 될 것인지, 어떤 회사에 취직하여 어느 정도까지 진급을 하게 될 것인지, 어떤 인연을 만나서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게 될 것인지, 언제 어떤 병이나 사고로 얼마만큼 고통을 겪게 ..
항상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세요 오늘은 ‘인연’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인과’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불교 교리의 큰 기둥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인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을 들여야만 하겠습니다. 불교는 어느 신을 전제로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모든 신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인 종교가 바로 불교입니다. 불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요, 마음을 찾아서 깨쳐가는 수행의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한 마디로 말해서 ‘마음’입니다. 이 마음 하나만을 주장하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우리는 흔히 운명이다, 숙명이다 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운명과 숙명은 우리 에..
생활불교 菩薩行 이런 예가 있어요. 제가 예전에 시장에 다니다 보면 어린애를 업고 시들시들하게 마른 배추며 무 같은 야채를 요만큼씩 놓고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노인네들도 조금조금씩 놓고 파는데 물건이 많질 않으니까 빨리 시들까 봐 그게 참 애가 타요. 그러면서 섰다 앉았다 섰다 앉았다 한다고요. 시든 야채를 뒤집어 놨다가 바로 놨다가 하면서요, 그런 걸 보면 깎지도 않고 그냥 삽니다. 그러면 옆에서 그러죠 스님은 왜 시들시들한 것만 찾아다니며 사느냐고 야단입니다. 아 못 먹을 걸 왜 사느냐는 거죠, 그러나 그것이 그런 분을 위해서 야채를 사들이는 게 아니에요. 또 보시를 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단, 내 마음이 아프니까 내 마음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좇아 다니면서 사는 거예요. 그..
陰德 평소에 음덕(陰德)을 쌓아라, 기도를 성취하고자 하면 평소에 음덕(陰德)을 쌓아야 합니다. 은행에 가서 돈을 찾으려고 해도 평소에 저축을 해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평소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음덕을 쌓아 베풀어야 기도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선행을 쌓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선행을 받을 것을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땅에 씨앗을 뿌리지 아니하고서 풍년이 되기를 기도한들 무엇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잡초는 무성할지 몰라도 곡식을 걷어 들이지는 못합니다. 항상 음덕(陰德)을 쌓아가며 사람들에게 선심으로 대하고 선행을 쌓아간다면 공덕의 문이 활짝 열리고 진리의 과실이 열리는 것입니다. 선행을 쌓아야 그 공덕의 과실이 서쪽이나 남쪽에서도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형상적인..
(한글 금강경 원문) 금강경은 부처님과 부처님 10대 제자 중 한 분으로 공의 이치에 통달하여 '해공제일(解空第一)'인수보리 존자와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승 보살이 어떠한 깨어난 의식으로 걸림 없는 보살행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쓰인 경전입니다.1. 법회의 시작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1,250명의 비구와 함께 머물고 계셨다. 그날 탁발할 시간이 되자, 부처님께서는 가사를 입으신 뒤발우를 들고 사위성 시내로 나가 한집 한집을 다니시며 먹을 것을 얻으셨다. 탁발을 마치신 부처님께서는 사원으로 돌아와 공양을 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2. 수보리의 질문 바로 그때, 수보리 존자가 일어서서 오른쪽 어깨를 걷고..
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 금강 마하 반야 바라밀경 ) 개경게(開經偈)無上甚深微妙法(무상심심 미묘 법)百千萬劫難遭隅 (백천만겁난조우)我今聞見得修持(아금문견득수지)願解如來眞實義(원해여래진실의)開法藏眞言(개법장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옴 아라남 아라다옴 아라남 아라다1. 法會因由分 (법회인유분)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천이 백오십 인구 이 시 세존 섹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반사흘 수의 발 세족이 부좌가 좌.2. 善現起請分 (선현기청분) 시 장로 수보리 재대중 중 즉 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이백불언. 희유세존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세존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당위여설. 선남자 선여인..
설국의 ...허공산 묵언 하심!   침묵으로....한 움쿰 쥐어진 세상가슴 시린 사연찬란했던 그 인생덧 없는 여정추억의 하늘을 ~~그 세월의 발자욱마다사바에서 배운 지식 나부랭이사유하는 그림자  모두 가슴 걸망에가득 담아 설산의 영봉에 올라뿌드득 거리는 발자욱소리에 내려 놓는다  법 등_()_
因緣의한 緣起法 승려가 겪는 여러 인연들 사이의 고민과 번민을 표현한, 인연들에 의해 생겨난 무수한 일들이윤회가 되어 다시금 그 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선(禪)적으로 말하다.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인연(因緣)의 생기에 의한 연기법(緣起法)으로 논한다.씨앗이 좋은 땅을 만나면!!!뿌리와 줄기가 잘 자라듯이 사람도 좋은 인연을 만나야 공덕을 이룰 수 있다.씨앗이 나쁜 땅에 심어지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만약 지혜가 있어 사리를 잘 생각해 헤아리면 온갖 법이 마음 땅에 자라나지만어리석어 지혜가 없으면 법을 알 수가 없다.그러므로 좋은 인연을 만나 바른 법을 부지런히 익혀야 한다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멸하면 이것이 멸하는그러한 관계성에서 우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정교하게 이어진 인연의 사슬로 이어진 채 함께..
향기로운 글 업을 뛰어넘으라!불교에서는 운명이나 숙명 대신에 스스로의 삶을 나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인과(因果), 업보(業報) 론에기초하고 있다. 누구나 물론 전생의 업인(業因)에 따라 자기만의 삶의 모습을 갖고 태어난다.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살 것인지, 어느 정도의 학벌과 능력과 외모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얼마 정도의 행복을 누리다가 언제쯤 죽게 될 것인지에 대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어느 정도 정해진 업력(業力)을 받고 태어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떤 배우자를 만날 것인지, 어느 정도의 대학이나학벌을 가지게 될 것인지, 어떤 회사에 취직하여 어느 정도까지 진급을 하게 될 것인지, 어떤 인연을 만나서 그들에게어떤 도움을 받게 될 것인지, 언제 어떤 병이나 사고로 얼마만큼 고통을..
온통 눈 세상, 발이 꽁 마음을 떠나 어찌 부처를 찾으랴!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불타는 집과 같은데 어찌하여 그대로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을 것인가.윤회를 면하고자 하면 부처를 찾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부처는 곧 이 마음인데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으랴.마음은 이 몸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은 거짓이라서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지만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없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온몸은 무너지고 흩어져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지만 한 물건은 언제나 신령스러워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고 하였다.삼계화택에서는 본래 청정한 마음이 경계를 따라 한없이 유전하다가 꼬일 데로 꼬인 모습이 탐진치 삼독으로 인한 불타는 집과 같은 상황에 비유하고 있다. 세상은 끝없이 무상을 설하고 생사의 불길이 걷잡을 ..
지장보살 본원경[한글]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어떻게 하여 지옥(地獄)에서 고통받는 중생(衆生)을 건져 주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지장보살의 여러 가지 전생 이야기와, 지옥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지, 또 지옥에서 겪는 고통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여러 부처님의 이름, 즉 불명호를 부르는 것이 중생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이익이 되는지,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자신의 사후 미륵이 이 땅에 올 때 까지 지장보살에게 중생들을 맡기니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도리천궁신통품 제일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한 때에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계시사 어머니를 위하여 법문을 연설하시니 그때에 시방의 말할 수 없는 한량없는 세계에 있는 말할 수 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마하살이 다 모..
地藏菩薩本願經(지장보살본원경) 상세설명!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어떻게 하여 지옥(地獄)에서 고통받는 중생(衆生)을 건져 주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지장보살의 여러 가지 전생 이야기와, 지옥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지, 또 지옥에서 겪는 고통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여러 부처님의 이름, 즉 불명호를 부르는 것이 중생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이익이 되는지,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자신의 사후 미륵이 이 땅에 올 때 까지 지장보살에게 중생들을 맡기니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忉利天宮神通品 [第一]도리천궁신통품 제일 부처님께서 도리천궁에서 어머님을 위해 설법을 하시면서 큰 신통을 나타내 보임如是我聞.여시아문.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一時 佛 在忉利天 爲母說法 爾時 十方無量世界不可說 不可..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이제는 '내가 너를 통해서 기쁨을 얻었다'라는 의미가 아니고,'삶이 기쁨 그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어느 순간 보니까 산과 내가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산이 봄과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봄 속에서 느껴지는 사계의 전체의 기운과 나의 기운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그와 같은 것의 경험을 지(智)라고 하며, 우리 삶의 닫힌 마음을 여는 순간입니다.여는 순간 지(智)에는 능소(能所)가 없습니다〔無我〕.이때에 유식에 주(住)한다고 하며 식장(識場)을 경험하는 것입니다.식(識)이라고 하는 말의 근본은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 된 앎의 장입니다.그런데 이 앎이 있기까지는 '내가 너를 안다, 내가 추움을 안다, 내가 더움을 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그런데 ..
문은 이분법적 규정에서 나와야 집이나 방으로 들어서려면 문을 통과해야 한다.사찰 법당에 들어서려면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이 쭉 들어서 있다.부처님의 세계, 진리의 세계, 열반과 행복의 세계로 들어서게 하는 문이 법문(法門)이다.그런데 정말 정해진 어떤 문을 통과해야만 그 세계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일까?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선(禪)에서는 진리로 통하는 입구에는 문이 없다고 한다.법문(法門)은 무문(無門)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그 이유를 물은즉 무문 혜개(無門慧開) 선사는 “문을 통해 들고 나는 것은 잡스러운 것들이요,인연을 통해 얻은 것은 마침내 부서지고 말 것이다.”라는 옛사람의 말을 든다.이미 갖추어져 있는데 뭐 문을 통해 찾고 들어설 일이 이겠느냐는 말이다.문이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인데 그것으로 통해 ..
겨울 나라! 팔랑개비 삶!모두 다 떠돌이 世上살이 더러 외로운 날들엔 누구를 기다릴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서툴기만 한 世上인데 맨몸으로 버틴 삶이 서러워 괜스레 눈물을 흘리고 生이 고달파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모두 다 제멋에 취해 우정이나 사랑으로 멋진 포장을 해도 때로는 서로의 필요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들 텅 빈 가슴은 생채기가 찢어지도록 아프다.만나면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데도 생각하면 더 눈물만 나는 世上살이가슴을 열고 욕심도 없이 사심도 없이 같이 웃고 울어줄 그 누가 있을런가? 인파 속을 헤치며 슬픔에 젖은 몸으로 홀로 웃어도 보고 흐느껴 울며 생각도 해보았지만살면서 살아가면서 몹시도 외로운 날들엔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다.그러나 산에 오르면 무상을 즐기며돌아올 땐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고개..
沈默 침묵은 과묵한 나무처럼 큰 힘을 지닐 수 있는 근본이 되기도 합니다.그래서 부처님은 침묵을 ‘성스러운’이란 수식어를 붙여 때로는침묵이 얼마나 소중한 처신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나라 속담처럼 ‘침묵은 금’이라는 말과도 상통합니다.시시비비를 가릴 때나 진실을 밝혀낼 때 침묵이 효과를 배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예기치 않은 말로 오히려 시시비비 논쟁이 더 불거지고 걷잡을 수 없는 악화일로의 상황을 부르는 경우를여러분은 적지 않게 경험했을 것입니다.불가에 ‘묵빈대처()’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해치고 악의적인 말로 음해하는 세력에 대해 침묵으로 대처한다.살기가 담겨 있는 말을 말로써 대응하면 물리력이 동원되고 급기야 감정이 폭발하게 되므로 이를 삼가는 방법으로 침묵이 유용하다는 판단에서 나왔..
망념! 수행이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잘 되지 않습니다. 구름 끼고 눈이 오려고 하면 몸이 말을 듣질 않죠. 이런 때는 수행이 잘 되지 않는데 억지로 하지 말고 한숨 푹 잔다든지, 기분전환을 하고 해야 됩니다. 수행이 잘 되다 안될 때, "왜 안되지?"하고 안 되는 것에 빠지지 말아야합니다. 꿈꾸고 나서 무슨 꿈인가? 하고 이런 꿈은 도대체 왜 꿀까? 이리저리 궁리하지 마세요.수행이 잘 안되면 분명히 복이 부족해서 그러므로 주변 청소라도 하고, 수행을 해보면 잘 됩니다. 복이 모자라면 수행이 잘 안 됩니다.복이 모자라는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도 일이 잘 안 됩니다. 특히 수행자는 수행하고자 하는 의욕에 비례해서 복이 모자랄 가능성이 많으므로 복[덕]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항상 복을 동시에 지으면서 수행애..
마음공부가 익은자는 마땅히 사의지를 사유 할것이다.! 첫째, 나는 전생에 몸을 사랑하였기 때문에(몸을)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는 생각에 심한 원한이 있기 때문에 욕구로 애욕이 생기면 마땅히 끊어야 하니, 이미 끊어서 밖의 몸을 위하여 지(止)를 관한다.네 가지 마음의 그침이란,마음이 몸에 있지 않음이 (몸에서의) 마음의 그침이 되고, 통양이 없음이 (감수작용에서의) 마음의 그침이 되며, 마음이 없음이 (마음에서의) 마음의 그침이 되고, 법에 있지 않음이 (법에서의) 마음의 그침이 된다. 색에 따라서 인식이 곧 생하는 것이 그치지 않음이 된다.사의지(四意止), 곧 사념처(四念處)에 대한 설명이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으나 다른 각도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다.수행자가 사의지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 신념처(身念處),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베풀면 베푼만큼 불어서 돌아와! 나라 살리는 힘도 내 안에 있다. 아픈 사람 보고 마음 내는 것도 보살행-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좀 더 지혜를 넓히고, 마음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걸림 없이 돌아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불교다 하면 어렵게만 생각하시고 머리 깎은 사람만 하는 공부인 줄 아시는데 그게 아닙니다.일체 세계, 우주 전체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불교죠. 살아있는 생명의 근본이 ‘불’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이 바로 ‘교’인 것입니다. 풀 한 포기만 살아있어도 불교인데 네 종교 내 종교 따지는 것은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죠. 모두를 포함한 것이 바로 불교인데 말입니다.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마음의 폭이 넓어지고 또 한마음이라는 그 자체는 그냥 송두리째 진리로서 초월해서 돌아가는구나 하는 것을 뚜렷하게 아시게..
無處所 묘한 진리의 체는 원래의 처소가 없어 어디에는 진리가 있고, 어디에는 진리가 없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참 불교의 진리는 천상천하 두두물물이 묘체 아님이 없어 전부가 다 어느 곳, 어느 때를 막론하고 진리의체는 이 허공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온갖생각이 퍼 일어나는데 그 한량없는 생각을 바로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은 그 체가 공한것입니다.그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그 본체는 무엇이냐 하면 공이거든요.확실히 그 생각의 본체가 진공이라고 하는 사실을 요달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입니다.그래서 그 공적의 이치를 이미 깨달아 버리면 실로 한 중생도 제도받은 자가 없습니다.이것이 바로 이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인것, 자성 중생이거든. 자성중생서원도요!한량없는 모습으로 ..
불교애서 말하는 인과는! 불교애서 말하는 인과는!업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기본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전생에 지은 업에 의해서 후생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생에 짓는 업을 내생에 받는다고 해야 맞다.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중생은 각자 생전에 지은 행위에 따라서 윤회를 합니다.이렇게 각자가 짓는 행위를 업이라고 합니다. 이 업에는 선업과 악업이 있습니다.선업이란 좋은 행위이고, 악업이란 악한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업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이것을 인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선한 행위에는 선한 과보가 따르고, 악한 행위에는 악한 과보가 따른다고 합니다.과보를 받는 것은 업에 따라서 금생에 받기고 하고, 혹은 내생에 받기도 합니다.또는 그다음 생에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 업이 어..
일체만물은 한몸 남을 해칠수 없어요 너와 나 관계없다 생각할 때 ‘악’ 싹터  一切男子가 是我父요 一切女子가 是我母로다 故로 六道衆生이 皆是我父母로다. 모든 남자가 나의 아버지요 모든 여자가 나의 어머니로다 그러므로 육도의 중생이 모두 나의 어버 이로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의 말씀이지요. 일체중생이 내 아버지 어머니요, 형제 동생이 된다는 이 말씀은 ‘내 혈통’ ‘너의 혈통’이 아무 의미 없는 구분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金가니 李가니 朴가니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기에 편하도록 인위적으로 姓을 갈라놓은 결과일 뿐이에요. 근원적으로는 혈통의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인해 잠시 어머니 뱃속을 빌어 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어머니가 낳고 싶어 낳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만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