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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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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 속 허수아비 어리석은 자들 마주 보고 어리석음을 토해내고 다시 그것을 주워 먹는 허수아비 태워도 활활 타오르지 않는 정열로 자신을 불살라 버리는 허수아비 불을 댕기면 피식거리며 꺼져버리는 오만한 혈기로 부끄러워해야 할, 자신의 모든 행위들을 기교화된 언어로 합리화하여 뻣뻣한 얼굴로 늠름하게 걸어 다니는 허수아비 마치 진실인양 안면에 미소를 가득 띠고 재잘재잘 거리는 허수아비 모두가 허수아비, 허수아비임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참으로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그날 우리는 불꽃이 되리라 나무 석가 모니불 -()-
장엄한 세상 나드리! 선한 마음! 탐욕은 인간을 미혹한 삶으로 이끌어 수행 통해서만 ‘탐욕’ 씻어낼 수 있어 ‘욕망을 최고의 반려로 삼는 사람은 오래도록 미혹의 세계를 헤맨다. 이 곳 저 곳으로 떠돌아다니며 미혹한 생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미혹의 세계를 뛰어 넘을 수도 없다. 이와 같은 사람은 탐욕이 괴로움을 낳는다는 것을 알아 집착을 끊어야만 한다.’ 인간에게 가장 큰 괴로움은 탐욕으로부터 오는 속박,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고 휘몰아 이로 인해서 인간을 미혹의 생으로 떠돌게 하는 원인이 된다. 부처님은 “나는 탐욕의 마음보다 더한 속박을 보지 못했다”고 설한 바 있다. 이는 탐욕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을 악하게 만들고 미혹의 세계로 이끈다는 것을 염려하신 말씀이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욕구가 있다. ‘..
지난날 업의 숙명이 날 일으켜 세운다 너희들이 아는 것 만큼만 보이고, 보이는 것 만큼만 말하는 것이 중생이라고 그래서 성품이 언행(言行)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삼사일언(三思一言)은 거칠은 성품을 잘 다듬고 걸러서 내 놓은 것이 된다. 누가 말 했던가, 가장 훌륭한 말은 오래 생각한 후에 나오는 말이라고......... 너희들 잣대로 눈에보이는 대로 보이니 그런 가치관으로 판단하여 보이겠지 잘 보고 배우고 가슴에 담아가거라 우리 삶의 제일 큰 문제는 자신을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사실을 본 적 없이 자기 생각대로, 느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맹인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존을 두고 서로 자신만의 견해와 주장으로 차이와 대립, 갈등과 폭력을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는 매번 괴로움으로 나타납니다. 도를 얻는다는 것은 맹인이 눈을 뜨..
이보시게 다 내려놓고 가세요(하심) 잘난 척하는 마음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심(下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수행의 궁극으로 삼고 있는 무심(無心)조차도 사실 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심이 안 되는데 무심이 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 하심이란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마음공부하는 수행자는 최고의 덕목은 하심이다 그래서 수행 당시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꺾고 절을 하였다. 또한 부처님께 아침저녁으로 500배씩 하루에 천배를 매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절을 하는 것은 당연히 하심을 연습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마음을 낮추는 데서 참다운 공부는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감히 나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항상 사람들에게 ‘너 자..
사유하는 함이 없음(無念) 법에는 단박에 깨침(頓)과 점차로 깨침(漸)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는다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見性)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한다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예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體)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本)을 삼는다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無相)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無念)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無住)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올라오는 번뇌,망상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절에 다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소원 성취하기 위해서요? 마음 잘 쓰기 위해서요? 아니면 시집 장가가려고요? 예, 다 맞습니다. 우리가 절에 오는 이유는 인생을 좀 더 잘 살아보기 위해서입니다 . 그럼 우리가 인생을 좀더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생을 잘 살려면, 첫째 현실을 자각하고 직시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내 현주소지는 어디인가를 먼저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분명히 알 때, 세상이 바로 보이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의식이 없이 그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직무유기’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의 구성원으로 있는 이상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위치와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자기 나름의 할 일을 다 하며..
청정한 마음 우리가 매일 하루하루 마음공부를 하고 있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깨달음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모르고 사는 사람과 깨달음을 알고 사는 사람은 분명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깨달음을 통해서 그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도 범부(중생)일 적에는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겪으셨어요. 갖가지 욕망에 대해서, 또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꾸역꾸역 일어나는 분별심에 의해서 괴로움을 겪은 거예요.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인생을 보다 맑고 행복하게 또 사람답게 바르게 살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사명이 아닌가 사유합니다.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보니까, 인간의 육신은 참된 ‘나’와 거짓 ‘나’가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그 참된 ‘나’ 는 마치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며,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
나 혼자 만의 길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조심해야 하니 나와는 점점 더 멀어 아득해질 뿐이다. 나 이제 홀로 가지만 가는 곳마다 그를 만나네. 그는 지금 진짜 나이건만 나는 이제 그가 아니네. 진실로 이렇게 깨달아야 여여부동 하게 되었다 하리라.
무상한 행복 한생각 돌리면! 이만큼 사는것도 덕분입니다 오죽하면 그렇게하겠는가! 그럴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한 몱 하잖아 얼굴이 다르니 생각도 다르지 덕분인 줄 모르니 불쌍하구나 보이지 않는 한 생각이 친구도 지옥도 만든다네 할 수 있다는 힌 생각이 자신과 세상을 바꿉니다
자각 불법만 배우면 됐지, 내 껍데기를 보고 시시비비 분별하니 문제가 있다. 바닷물이 더럽다고 안 받아들이고 깨끗하다고 받아들이더냐? 그런 마음 가지고 어디 맞는 게 있는가 그래서는 공부를 못하지 이 좋은 사공을 만나 무사히 강을 건너온 이의 평온이 깃들어 섣불리 길을 잘못 들었다가는 되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보기 십상 수행 길에서 눈 밝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 그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이 없는 숲 속은 즐겁다. 집착을 버린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하지 않는 곳에서 즐거워한다. 그들은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깥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는 수행자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환상을 좋아하지만, 진리를 터득한 이는 환상을 싫어한다
기나긴 旅路에서 깊은산 골짜기 속 한 줌 먼지로 떠돌고 싶은 날들 三世(삼세)의 輪廻(윤회)함이 무어 그리도 서러운 일일런가 해 저무는 산노을 저편 우리들의 꿈은 아직 살아 있으려니 가슴 바닥을 치며 어우르는 세월의 물결 生이야 死야 우리들의 외침은 허공을 가르는데 꿈속에서도 꾸는 해탈의 그길 가르키시어도 길을 볼 수 없음이니 아! 길은 언제나 거기 있어도 마음은 남아있음을 믿게 하심이리 阿彌陀佛(아미타불) 산 넘어 저 세계 더불어 가려하는 애절함으로 우리들의 날은 저물지만 길은 반듯이 있는것이라 외치는 음성은 귀전에 맴돌고 저멀리 노을진 산넘어에서 법음이 들리는 듯 _()_
행복의 미혹에 빠지지 말고 놓아주기... 어느 정도 자기가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야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진다 이것의 이유가 되고, 저것의 이유가 되어 자기도 모르는 어둡고 습습함에 정체를 알 수없는 중량감에 동행해 버릴 때에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짓눌려 버리고 만다 가끔은 가벼운 깃털을 달고 자기만의 괄호를 치고 들어가 앉아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 단순하게 살아내는 내가 되어지는 것도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알 수 없는 미혹으로 자꾸만 집어넣고 영원한 미로의 여행만을 행복이라고 치부하지 말어야 한다 현실 앞에서의 내 것을 남에게 내어주는 어리석음으로 불행에 빠져 있어야 할 겨를이 없다. 착각에 빠져 가끔은 내 것의 행복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 어떠하더라도 가끔은 착각의 여정을 떠날 필요가 있다.
미소 차 성냄과 원망과 불평을 뿌리를 잘라내고 잘게 다진다. 교만과 자존심은 속을 빼낸 후 깨끗이 씻어 맑은 햇살에 말린다. 짜증은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토막을 낸 후에 허공과 같은 넓은 마음으로 절여둔다. 주전자에 실망과 미움을 한 컵씩 붓고 씨를 잘 빼낸 다음 불만을 넣고 ‘도 까 새’도 첨가하여 푹 끓인다. 미리 준비한 재료에 인내와 사랑 기도를 첨가하여 재료가 다 녹고 쓴맛이 없어지기까지 충분히 쪽 달려 조청이 될 때까지 달인다 기쁨과 감사로 잘 젓고 미소를 몇 개 예쁘게 띄운 후 깨끗한 믿음의 잔에 부어서 여여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마신다. 오늘 하루도 예쁘고 밝은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_()_
돈독한 신심을 일으켜 등불을 밝히세요 만공스님은 “번뇌를 지우고 지혜를 별도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있되 그 번뇌에 어둡지 않고 번뇌의 실상을 여실히 봄으로써 번뇌의 당처(當處)에서 지혜를 얻으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생사와 열반이 둘 아님 (不二)에 있어서 생사가 끝나고 열반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생사 그자체로서 열반의 모습을 삼는 당시 당처(當時當處)의 불 이를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장래의 어떤 시점에 중생의 몸을 여읜 부처가 새롭게 오는 것이 아니라, 즉시의 현전에서 업력으로 받은 육신인 ‘나’가 있는 그대로 이전과 이후가 아무런 다름이 없이 그대로 부처입니다. 화두도 내가들고, 망상도 내가 내고, 잠도 내가 잡니다 거짓된 나 자신과의 모든 싸움에서 이겨 참 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일체의 생각들을 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