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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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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生하는 세상 만족할 줄 알아야! 달마대사가 전한 법은 말과 문자가 문득 끊긴 ‘불립문자 언어도단’(不立文字 言語道斷)의 진리입니다. 본래 법이라고 이름 붙여서 설한다는 그 자체가 잘못입니다. 입을 열면 이미 잘못된 것(開口則錯)이지요. 명(名)과 상(相)에 사로잡힌 것이지요. 그래서 누가 내게 “불교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언어도단에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문을 하더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때 그때 대중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근기에 맞는 떠오르는 말을 할 뿐, 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인데 새삼스레 말씀드릴 게 뭐가 있느냐 이 말이죠.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것이 법문 아닌 것이 없어요. 온 세상과 우주에 법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무슨 신통한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49년간 설법후 열반하시..
깨달음이 깊어지면 모든 존재는 공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空)이다.깨달은 자의 으뜸가는 자질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자 유함일 것이다. 깨닫지 못한 범인(凡人)은 가둔 자가 없어도 스스로 욕망의 성에 갇혀 산다. 내 성을 더 높이, 내 창고를 더 가득 채울수록 내 삶이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습관적인 믿음은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 자유의 숨통을 조이기 일쑤다.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갖가지 의무조항과 내일을 위한 시간표에 쫓기다 보면 자유와 풍요가 함께 동행하는 삶은 늘 요원하기만 하다. “아상의 고정과념… 하게 되면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조건들은 늘 저만치에서 모습을 달리 하며 유혹을 계속하고, 끝날 줄 모르는 운명의 장난에 지치다 보면 불현듯 거울 앞에 서서 진정한 나 자신의 주소를 확인하고 싶어 진다.구도 여정은 삶에 대한 ..
말과 행동을 가려서.... 자신이 지은 죄는아무리 가벼운 죄라 할지라도그대로 소멸되어버리는 법이 없습니다.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그대로 씨앗이 되어민들레 꽃이 되어 날아 갑니다.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들은나쁜 결과를 맺고 악의 꽃을 피웁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들은그대로 사라지는 법이 없이샘을 이루고, 내를 이루고강을 이루고, 생명의 바다로나아가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생각은 행동을 낳고행동은 습관을 낳고습관은 성격을 낳으며성격은 운명을 낳습니다.우리가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생각을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투덜대지 말고 해결책을 찾으세요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작은 촛불을 하나라도 켜는 것이 더 낫다. 공자님 말씀 우리에겐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문제가 없는 인생이란 없고,문제가 없는 순간도 없..
거짓 나 를 버리고! 삼라만상[森羅萬象], 일체현상이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변해 간다.무상(無常)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못하다는 뜻이지요.제법(諸法)은 연생연멸(緣生緣滅)이라.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사라집니다.이처럼 인연 따라 생기고 멸하기 때문에 나라는, 자기라는 고정불변하고 영원한 실체 또한 없습니다.이것을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이러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면 바로 안락을 얻게 됩니다.이 도리가 바로 삼법인(三法印)입니다. ‘본래부처’라는 것이지요.그런데 중생들의 마음속에는 불성 대신 중생 심이라는 아주 ‘잘난 놈’이 하나 들어앉아분별하고 사량하면서 주인노릇을 합니다. 이 잘난 놈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그런데 요상한 것은 이 잘난 놈이 실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있다고 착..
마음이 거울 있는 그대로 비추는 마음이 거울  보통 선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엇이 선이냐. 우리가 듣기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쉽다고 하면 이것처럼 쉬운 것이 없고, 어렵다고 하면 이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장 어렵고 가장 쉬운 것이 하나입니다. 경전에 보면 서산 대사의 『선가귀감』에 보면 ‘선은 부처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부처님 마음이라고 하나요? 사람마다 누구든지 너도나도 갖추고 있는 원래 마음을 선이라고 하고, 그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가르친 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그러면 원래 선은 무엇입니까. 불자가 불문(佛門)에 들어와서 경전도 보고 책도 보고 남의 말도 들어보고 법문도 들어보고 나름대로 화두도 타서 앉아도 보고, 뭘 터득해 보겠다고 애를 ..
얼굴이 평온함은 대자유 봄인가 싶더니 만물이 무성해지는 여름입니다. 계절과 같이 우리 인생도 잠시도 머물지 않고 만물과 함께 흐른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화엄경의 한 구절로써 과거와 미래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머무르지 않을 때 비로소 불교 수행의 궁극점인 진정한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 생활은 집착이 기본 되고 삼독심을 줄기로 삼아서 영위되고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 혹은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명예와 지위, 재산, 건강 등의 문제로 해서 한 번은 기쁘다가 곧바로 슬픔으로 바뀌고, 한때는 영예롭다가 얼마 후 실망하고 위축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중생의 굴레이며 끊이지 않는 반복입니다. 이러한 놀음에 휩쓸려 공적함을 깨달을 때와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녹야원에 계실 때 한 외도가 와서 물었습니다...
인과 연 사람은 우연히 태어나는게 아니라고 합니다.인연 또한 우연히 찾아 오는게 아니랍니다.세상에 우연히 없다는 말은 인연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인연은 꼭 내 맘에 맞는 것만은 아닙니다.어떤때는 슬픔으로 어떤때는 기쁨으로 갖가지 형태로 다가옵니다.내가 맞이할 인연에 대해 지나친 환상은 갖지 않는 것이 좋고요.인연을 이끌어 가는 자세가 필요함니다.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모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줄 알고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소매 끝만 스쳐도 살려냅니다.그 인연을 통해 사랑을 하고 나눔을 통해 정이 드는거라고 합니다.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지켜보고 있기에 마음속 깊이 그 사랑을 품으면 기쁨이 두배로 차오르고 그리움으로 물들이는  향기조차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 채..
공덕과 복전 ! 하심(下心)하는 자에게는 만 가지 복(福) 불법을 닦는 수행자에게 있어 반드시필요한 것이 하심(下心)과 묵언(默言)수행이다.하심은 나의 마음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경한다는 뜻으로 겸허와 겸손을 의미, 묵언은 일상생활에 있어서필요 없는 말은 삼가고 꼭 필요한 말만 하라는 불교의 기초수행.특히 묵언과 하심은 처음 불문에 들어온 수행자들에게 실천해야 할 과제로 되어있으며불교를 신행하는 불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수행이다.불교는 모든 생명체를 평등한 입장에서 바라본다. 반야경에서도 모든 중생들은 평등하다는생각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모든 생명체에는 각각의 불성을 함유하고 있다.불성이란 부처의 성품을 의미한다. 마음은 중생들 속에 있기 때문에 중생들은 모두가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가능성을 ..
속세의 소리없는 소리! 俗世의 소리 없는 소리!덧없어지며 잎새 사이도 미혹과 사악함은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다마음이 굳혀지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낡은 것은 버려야,새것은 얻는 것처럼 말이네어리석음과 증오는 낙수를 따라 떴다 지고고정관념은 홀로 떠나는 겁, 몇 번의 환생은 겪었던가떨치지 못한 과거에 어지러워지는 마음세간[속세]에 들어서면 많은 혼란 겪게 되어집착과 분노는 혼란으로 인한 것이니중생의 무지몽매함이 불어온 덧없는 운명의 굴레벗어날 수 없는 나락을 세상의 먼지가 되리라흩어진 꿈속의 하룻밤 인연은아득한 세월을 뛰어넘어 황량한 세상의 끝에서믿음으로 다시 만나리...하늘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은원을 따져 물어 신선을 정하는 이 누구인가연분은 하늘의 뜻이며, 재난을 복으로 바꾸고앞길을 순탄하게 살펴 주세요다 인연이리라.....
((어둡고 우둔함이 곧 밝고 총명함)) ((어둡고 우둔함이 곧 밝고 총명함))“어둡고 우둔함을 능히 알 수 있는 그것은 결코 어둡고 우둔하지 않습니다.그러니 다시 어느 곳에서 초월하고 깨달을 것을 찾겠습니까?지식인이 이 어둡고 우둔함에 의지하여 들어가야 만약 어둡고 우둔함에 집착하여 스스로나에게 돌아올 몫은 없다고 여긴다면 어둡고 우둔함이라는 마귀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대개 평소에 지견(知見)이 많으면 깨달음을 찾는 마음이 앞에서 가로막기 때문에 자기의올바른 지견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이러한 장애도 역시 밖에서 온 것은 아니며, 또한 별다른 일도 아닙니다.다만 능히 어둡고 우둔한 것을 알 수 있는 주인공일 뿐입니다.”어두우니 밝으니 우둔하니 총명하니 하는 것은 이미 사념(思念)에서의 일이다.어두움을 어두움으로 알고 우둔함을 우둔함으로..
자성불[일심]! 몸을 끌고 갈 때는 마음이 필요하니. 마음을 이용해야 하되 업을 이용하지 말고 자성불을 이용하라육체만 쓰고 마음을 쓰지 않으면 육체를 넘어설 수 없고, 또한 마음만 쓰고 자성불을 쓰지 않으면, 마음을 쓰면 쓸수록 마음은 더 강해져서 마음을 넘어설 수 없어서 자성불을 쓸 수가 없고 자등명에 이를 수가 없다. 자등명에 이르고 자성불을 쓰기 위해서는 마음을 쓰되 자성불이 행하도록 하여야 한다. 처음은 자성불로 행하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행하고 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성불로서 객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행하지 않겠는지요? 육체에 끌려가며 살기보다 마음으로 살고, 업의 마음으로 살기보다는 자성불로 사는 날이 되어야 함.마음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이 병들면 몸도 병이 생긴다. 부정적인 생각과 고민은 스트..
보리의 마음! 보리의 마음 빈 배와 같은 자유인 대상을 높게 볼 것도 없고 낮게 볼 것도 없다훌륭하다 해서 훌륭한 게 아니고, 높다 해서 높은 게 아니며, 낮다 해서 낮은 게 아니니 평등하게 보라대상을 내 몸과 같이 보라. 그것이 불심이다.부처님이 지금 내 앞에 계신다 하더라도 높이 보지도 말 것이며 개미 새끼 한 마리, 풀 한 포기라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벌레를 보고 징그럽다 하고, 오물을 보고 더럽다 하지만 그것은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상대를 보고 어떻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형상, 그 마음이 둘이 아니니 주인공 자리에 계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높은 산 위에 올라서서 마음을 내려다 보라. 그러면 크다 작다의 구별에 앞서서 평평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그와 같이 생활에서도 그 위치를 활용해 보라. 모든..
찻잔 속에 미소 도반처럼 마주 앉아 있어도 연인 되어 옆에 다정히 앉아 있어도 되고 싫다하여 그냥 향이라도 좋다오 눈 꽃송이 화원을 병풍치고 뭇새 노래 삼아 마주한 동공 속에 마음 자리하나 무심의 언약이라 오늘 쪽빛 하늘을 담은 늘 싱그런 향을 채운 차나 함께할 이는 없는가요? 뾰뜨르르... 찻잔 소리 물결 되는 보고픔 정녕 우려낼 수 없는 것인가요? 보고 파서 독백을 하는 것인지 외로워서 푸념을 하고픈 것인지 찻잔 속에 미소만 가득하구나! 오시는 분마다 웃음 가득한 미소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 _()_
묵은지 보살의 수행 보살의 수행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작용하는 마음이에요. 작용 이전의 마음, 생각 이전, 분별 이전 본체의 마음을 본다고 한다면 그것이 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변하지 않는 그 마음자리를 다이아몬드, 금강석과 같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지금 쓰고 있는 마음은 끊임없이 변해 가지만 그 마음의 본체는 불변 심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을 변화시키면서 바깥으로 상像을 취한다 이 말이에요. 눈으로 보고 상을 취하고, 귀로 듣고 상을 취하고, 향기로, 맛으로, 감촉으로, 그리고 생각으로 끊임없이 상을 취하고서 내가 만든 상을 붙잡고 오염되어 살고 있어요. 세상에는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지요. 부자이면서 부자인 척을 하면 부자상에 빠진 겁니다. 가난에는 두 가지가 있..
無所求行 매일 나를 바꾸는게 인과응보 무소구행(無所求行), 댓가를 구하는 바가 없이 선행을 하면서 세상을 살라 입니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대가를 받을 것이라 기대 하지 말고 행하라는 말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 탐욕과 집착은 계속 업을 쌓기 때문에 아무리 공덕을 베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공덕 복덕을 베풀더라도 영원히 불생불멸한 근본 그 자리에 앉아서 공함을 알고 베풀어야지, 그 이치를 모르고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만유는 공하여 항상함이 없으니 집착함이 없어야 삼독에서 벗어납니다. 그러고 나면 칭법행(稱法行)이라.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본래의 마음, 성품의 근본자리, 선악시비와 공덕 복덕을 다 떠나 불생불멸, 부증불감, 선악도 끊어지고, 시비도 끊어진 영원한 진여자성의 자리에 앉아서 살라는..
돌에서 피가 배어나올 만큼의 믿음이라면…. “먼저 우리는 우리 속에 부처를 이룰 수 있는 힘, 불성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정원사가 꽃나무를 가꾸듯이 불성을 살려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불성을 잊고 있다. 우리는 여러해살이 꽃나무가 계절 따라 피었다 져도 이듬해 다시 꽃을 피울 힘을 그 나무 안에 지니고 있는 줄 알지만 자신들에게도 그와 같은 불성이 있다는 것은 잊고 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일단 몸을 바꾸게 되면 전생의 기억을 까마득히 잊고 말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가 다겁생을 거쳐 지금 진화의 위대한 순간에 와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면 꽃나무에 꽃 피우는 힘이 있음을 믿듯이 우리 속에 부처될 힘이 있음을 믿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진화의 원동력, 그 불성을 믿어야 한다.” 일체 중생에게 빠짐없이 다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부..
자비로운 불자님들 이시여! 우선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 반성하는 자신이 잘못 살아온 가치관으로 남에게 아픔을 전가한다면, 넘어진 얘기, 부끄러운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실수하고, 또 욕심부린 얘기, 그래서 감추고 싶은 얘기를 고백하여 가자는 것이다. 고백에도 전제 조건이 있음. 먼저 자기 자리를 지켜보며, 왜 넘어졌고, 왜 실수했는지, 그 연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의 중심이 `나, 는 아닌지, 살펴보고, 내려놓고, 뉘우치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기 고백이며 참회하는 것이고 또한 자기 치유의 길이기도 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잘못하여 저지른 업은 꼭 받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의 가슴에 뽑히지 않을 철못을 박은 피 멍도 그 ..
길!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논리와 언어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침묵의 직접적인 경험의 길이다. 논리와 언어의 길은 추론의 길, 이것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이를테면 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산에 불이 났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직접적인 경험은 연기이고, 산의 불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산에 불이 존재한다는 판단은 논리적이고 언어에 의한 추론의 결과이다. 왜냐면 연기가 있는 곳에서는 대개 불의 존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험은 몸에 의해서, 감각기관에 의해서 사물을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써 발생된다. 눈으로 색깔을 보고, 귀로는 소리를 듣고, 몸으로는 온전하게 느낌을 느낀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감각기관과 함께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몸을 통해서..
사대가 오온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물론 옳고 바르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시주를 하든 보시를 하든 공양을 하든 봉사를 하든 어떤 일을 하든지 조건 없이 해야 하고,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 없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없이 삼륜(三輪)이 청정한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할 때 첫 번째의 근본은 발심해서 하는 것, 두 번째는 상대가 원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세 번째는 가르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례로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은 아직 낯설고 인연 맺지 못한 불자들을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부처님 품 안에 들어오게 하고, 궁극에는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분들이 모범을 보이고 솔선해야 불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환한 미소와 신심 깊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도량을 ..
생명보다 더 귀한것이 뭘까요?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진다.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랍으로 남는다.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60세로 돌아가고 싶다. 젊은 날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때는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원지 몰랐으니까. 65세에서 75세까지가 삶의 황금기였다는 것을 그 나이에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고생하는 것.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라는 것. 맑은 정신 상태로는 잘 가본 적이 없는 경지. 육신의 나이가 거의 100세에 다다르는 한 석학이 후배 60-70대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살아보니, 지나고 보니 인생의 가장 절정기는 철없던 청년시기가 아니라, 인..
참회와 수행 참회와 수행이 필요한 시점,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사유해야 합니다. 불자로서 자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갑시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진언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나로 인해 목숨 잃고, 상처 입고, 마음 아픈 모든 영혼들을 향해 참회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참회하며 5계와 10 선계를 지키고자 할 때 무수한 공덕이 돌아오게 됩니다. 몸에 병이 사라지며, 마음이 평화롭고, 생각이 깊어지며,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자비의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들에게 참회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참회하며 방생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성숙한 삶으로 변화한다면 좋은 곳에 빨리 태어날 것입니다. 바르게 수행을 열심히 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조그만 공간에서 밀폐되어 사육..
건물불사보다 마음불사를 해야 포교는 스님·재가불자가 함께 해야 세상 맑아져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인간을 위한 종교입니다. 깨달음의 종교,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경제적인 부에 탐착해 물질만 추구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편리함에 편승하게 되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보다는 외부세계만 좇아 다녀 자기 자신을 잊고, 자아상실에 빠져 버립니다.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 간과되는 정신적인 영역의 혼돈과 혼란의 ‘아노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교가 우리 사회에 해답의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설명이다. 자기를 찾는 내면의 깨달음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진리가 불교에 있다. 그러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불교의 가르침의 요체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불교의 요체는 가상의 자기를 버리고 참나를 찾아가는 데 ..
'나' 누구인가! 삼세 고금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청정한 한 물건이 본래 나일세, 꽃 피고 잎 지나 그 뿌리는 하나요. 해와 달이 뜨고 져도 가고 옴이 없구나, 어떤 것이 참나입니까? 어떤 세상의 내가 참나인 것 같습니까? 번뇌 망상이 없는 청정한 물건이 본래 나입니다. 참으로 나라는 것은 아 무 생각도 일어나기 전에 따로 있어요. 그래서 눈 깜짝할 사이라 도 '나'를 찾다 가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인 것입니다. 돈 벌어서 재산을 쌓고, 벼슬을 해서 존경을 받으려 하고 그런 일이 처 음부터 끝까지 재미가 있느냐 하면 사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안 해 봐서 그렇지 남한테 대접받는 것도 피곤해요. 대접받지 않을 때는 자유롭지 않습니까? 낮잠을 자든 어디 가서 뒹굴든 누가 시비 하겠어요. 대접받으려면 옷도 맘대로..
심안[보살]의 눈 ‘보살의 눈’을 얻는 세 가지 길 심안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는 ‘믿음을 바탕으로 발심하는 것’, 우리 모두는 본래 심안이 열려 있는 ‘ 완전구족자[完全具足者]’라는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모두는 심안을 가지고 있지만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듯이 업식이 잠시 심안을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믿음의 토대 위에 ‘願’을 세우는 것이 발심입니다. 중생은 업력에 끌려 살지만 보살은 스스로 세운 원력으로 살지요. 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원동력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에 세운 원에 의해서 생사해탈의 대각을 이루셨고, 법장비구는 48 대원을 세워 아미타불이 되셨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유명한 과학자 뉴턴은 원에 의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에디슨은 전기를 발명했어요.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멈춤’ 법의 말씀 ‘멈춤’에는 자신의 선험적 견해의 작동을 멈추고, 밀당을 내려놓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나의 것’이라는 내 생각, 내 가치, 나의 개념들을 대상에 덧입히지 않는 것, 오쇼 라즈니쉬는 장미꽃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보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기억 경험 듣고, 보고, 알고 있는 것들을 텅 비워야 대상의 현재 실제 모습을 느끼고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대상을 알기 위해선 자신의 선험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한 멈춤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 오랫동안 바라보는 ‘머묾과 관찰’을 통해 장미와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때 ‘미지의 장미’라는 대상이 바라보는 존재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의 가치판단과 선호..
어떻게 하면 잘 사는가? 항상 깨어있는 마음 결국 인생의 근본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서 불제자가 된 지금, 지금 수행하지 않으면 다시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일로 미루지 말고 마음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걸어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사는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공헌하고 있는지 내면의 자성을 발견하십시오. 그러면 내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내 잘못이 보이고 자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영광된 삶일 수도 있고 부끄러운 오욕을 남기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가? 불법을 귀하게 여기고 거기에 의지해서 살겠다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본래 불성의 인품이 나도 모르게 자리를 잡아서 일상생활에서 보살로 살아갈 수 있는 ..
지혜와 자비 위없는 지혜와 자비! 세존께서 지니신 여러 가지 많은 훌륭하신 점 가운데서도 특히나 위대하시게 생각되는 것은 지혜와 자비일 것이다. 위없으신 세존의 지혜와 중생들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시는 현실적 자비심으로서 이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으며 허공에 떠있는 태양과 달과 같은 것으로서 태양의 빛이 만물을 성장시키듯 부처님의 지혜로서 모든 중생들이 무지의 어두움에서 지혜의 밝은 빛으로 나아가게 하며 달밤의 서늘함이 모든 중생들을 고뇌의 아픔에서 휴식을 취하게 하듯 세존의 자비가 중생들로 생로병사의 윤회고통에서 해탈의 길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혜와 자비가 부처님을 모든 수행자나 성자들보다도 훨씬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게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하셔야 할 모든 임무를 완성하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언제나..
그림자! 망상일 뿐! 마음은 얼마나 맑고 고요한 것일까, 우리도 마음이란 게 있지만 깨달으신 분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의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으십니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귑니다. 망울 튼 버들가지는 싱그럽고 시냇물은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흘러갑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아낙네들은 봄나물을 뜯고 있습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런 광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도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이 있으면 물을 보고 꽃이 있으면 꽃을 본다는 것. 이게 바로 空寂靈知입니다. 이 자리가 本心의 자리인 참 마음인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산에 올라가서 연 초록색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듣고, 흘러가는..
만남 인연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대 숨 쉬는 하늘아래, 그대 머무는 세상에서, 추억 한 줌으로 살 수 있음도 행복이라면 행복이지요. 욕심부려 무엇합니까? 미우면 미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세상사 순응하며 살 일이지요. 성급한 걸음으로 앞서 갈 일 있겠습니까? 사랑이 부족했다면,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지요. 해답 없는 사랑, 규칙 없는 사랑일지라도 만남은 소중해야 합니다. 인연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젖은 어깨 털어 주고 때 묻은 마음 헹구어내 잘 익은 봄의 가운데로 함께 걸어가야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거리가 있습니다. 그 거리를 좁히고 믿음이라는 징검다리를 놓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친구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그 거리를 멀게 하여 무관심이란 비포장도로를 놓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과 불행은 그 어디에도 없다. 중생들 자신들이 저질러서 얻은 인과이다. 인과는 썩지도 않는다 열반을 성취하게 되면 윤회가 끊긴다. 우리는 육도윤회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우리는 끊임없이 육도윤회(六道輪廻)하는 존재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 있을 때는 천사도 되고 닫혀 있을 때는 아귀도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일생의 윤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자리에서도 윤회하는 존재입니다. 당생(當生)에 윤회하는 존재입니다. 내생에 정토에 태어나길 바라는 것은 바른 불자들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생전에 가정, 이웃 등을 위해 마음을 제대로 써야 합니다. 불교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가 있는데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삼법인(三法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