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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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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心 잘난 척하는 마음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심(下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수행의 궁극으로 삼고 있는 무심(無心)조차도 사실 하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심이 안 되는데 무심이 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 하심이란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행자시절 최고의 덕목은 하심이었습니다.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이었지요. 그래서 행자 당시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꺾고 절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당연히 하심을 연습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마음을 낮추는 데서 참다운 공부는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감히 나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당신들은 스스로를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나 자신을 ..
자비로운 불자님들 이시여! 우선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 반성하는 자신이 잘못 살아온 가치관으로 남에게 아픔을 전가한다면, 넘어진 얘기, 부끄러운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실수하고, 또 욕심부린 얘기, 그래서 감추고 싶은 얘기를 고백하여 가자는 것이다. 고백에도 전제 조건이 있음. 먼저 자기 자리를 지켜보며, 왜 넘어졌고, 왜 실수했는지, 그 연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의 중심이 `나, 는 아닌지, 살펴보고, 내려놓고, 뉘우치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기 고백이며 참회하는 것이고 또한 자기 치유의 길이기도 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잘못하여 저지른 업은 꼭 받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의 가슴에 뽑히지 않을 철못을 박은 피 멍도 그 ..
생각하는 그림자(망상)에 끌려 다니지 마세요 사유하는 그림자(망상)에 끌려 다니지 마세요! 나 몸은 나 스스로가 아닌 우주의 에너지가 만든 것 그렇기에 내 자신을 자학한다면 대단히 오만한 사람이다 석가세존께서,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구나. 나의 생명이 소중하면 남의 생명도 소중하구나’라는 말씀은 ‘내 생명과 남의 생명이 둘이 아닌 주인공이다. 즉, 전체가 주인공’이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오른손 들었습니다. 그리고 왼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때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른손을 들거나 왼손을 들거나 똑같은 에너지입니다. 그럼 이 에너지는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밤새 나무가 만들어 준 산소를 우리가 코를 통해 들이마십니다. 즉, 우리는 에너지를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열 에너지는 ..
길!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논리와 언어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침묵의 직접적인 경험의 길이다. 논리와 언어의 길은 추론의 길, 이것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이를테면 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산에 불이 났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직접적인 경험은 연기이고, 산의 불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산에 불이 존재한다는 판단은 논리적이고 언어에 의한 추론의 결과이다. 왜냐면 연기가 있는 곳에서는 대개 불의 존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험은 몸에 의해서, 감각기관에 의해서 사물을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써 발생된다. 눈으로 색깔을 보고, 귀로는 소리를 듣고, 몸으로는 온전하게 느낌을 느낀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감각기관과 함께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몸을 통해서..
사대가 오온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물론 옳고 바르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시주를 하든 보시를 하든 공양을 하든 봉사를 하든 어떤 일을 하든지 조건 없이 해야 하고,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 없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없이 삼륜(三輪)이 청정한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할 때 첫 번째의 근본은 발심해서 하는 것, 두 번째는 상대가 원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세 번째는 가르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례로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은 아직 낯설고 인연 맺지 못한 불자들을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부처님 품 안에 들어오게 하고, 궁극에는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분들이 모범을 보이고 솔선해야 불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환한 미소와 신심 깊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도량을 ..
생명보다 더 귀한것이 뭘까요?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진다.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랍으로 남는다.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60세로 돌아가고 싶다. 젊은 날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때는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원지 몰랐으니까. 65세에서 75세까지가 삶의 황금기였다는 것을 그 나이에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고생하는 것.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라는 것. 맑은 정신 상태로는 잘 가본 적이 없는 경지. 육신의 나이가 거의 100세에 다다르는 한 석학이 후배 60-70대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살아보니, 지나고 보니 인생의 가장 절정기는 철없던 청년시기가 아니라, 인..
참회와 수행 참회와 수행이 필요한 시점,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사유해야 합니다. 불자로서 자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갑시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진언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나로 인해 목숨 잃고, 상처 입고, 마음 아픈 모든 영혼들을 향해 참회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참회하며 5계와 10 선계를 지키고자 할 때 무수한 공덕이 돌아오게 됩니다. 몸에 병이 사라지며, 마음이 평화롭고, 생각이 깊어지며,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자비의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들에게 참회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참회하며 방생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성숙한 삶으로 변화한다면 좋은 곳에 빨리 태어날 것입니다. 바르게 수행을 열심히 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조그만 공간에서 밀폐되어 사육..
건물불사보다 마음불사를 해야 포교는 스님·재가불자가 함께 해야 세상 맑아져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인간을 위한 종교입니다. 깨달음의 종교,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경제적인 부에 탐착해 물질만 추구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편리함에 편승하게 되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보다는 외부세계만 좇아 다녀 자기 자신을 잊고, 자아상실에 빠져 버립니다.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 간과되는 정신적인 영역의 혼돈과 혼란의 ‘아노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교가 우리 사회에 해답의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설명이다. 자기를 찾는 내면의 깨달음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진리가 불교에 있다. 그러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불교의 가르침의 요체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불교의 요체는 가상의 자기를 버리고 참나를 찾아가는 데 ..
'나' 누구인가! 삼세 고금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청정한 한 물건이 본래 나일세, 꽃 피고 잎 지나 그 뿌리는 하나요. 해와 달이 뜨고 져도 가고 옴이 없구나, 어떤 것이 참나입니까? 어떤 세상의 내가 참나인 것 같습니까? 번뇌 망상이 없는 청정한 물건이 본래 나입니다. 참으로 나라는 것은 아 무 생각도 일어나기 전에 따로 있어요. 그래서 눈 깜짝할 사이라 도 '나'를 찾다 가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인 것입니다. 돈 벌어서 재산을 쌓고, 벼슬을 해서 존경을 받으려 하고 그런 일이 처 음부터 끝까지 재미가 있느냐 하면 사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안 해 봐서 그렇지 남한테 대접받는 것도 피곤해요. 대접받지 않을 때는 자유롭지 않습니까? 낮잠을 자든 어디 가서 뒹굴든 누가 시비 하겠어요. 대접받으려면 옷도 맘대로..
외적인 형상은 다르더라도 본질은 하나다 새끼든 가마니든 본질은 ‘짚’이다. 외적인 형상은 다르더라도 본질은 하나다.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알리는 것이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본인도 아마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완벽한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로 드는 것이 하나 있다. 핵심을 바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를 돕는 데는 아주 괜찮은 비유입니다. 새끼 보셨죠? 가마니 보셨죠? 그 둘은 서로 다른 제품입니다. 그런데 그 제품들의 재료는 뭡니까? 짚이죠. 제가 그렇게 강조하는 ‘공’의 핵심은 ‘짚’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제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문제예요. 부부 간에도 서로 다른 제품이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심안[보살]의 눈 ‘보살의 눈’을 얻는 세 가지 길 심안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는 ‘믿음을 바탕으로 발심하는 것’, 우리 모두는 본래 심안이 열려 있는 ‘ 완전구족자[完全具足者]’라는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모두는 심안을 가지고 있지만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듯이 업식이 잠시 심안을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믿음의 토대 위에 ‘願’을 세우는 것이 발심입니다. 중생은 업력에 끌려 살지만 보살은 스스로 세운 원력으로 살지요. 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원동력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에 세운 원에 의해서 생사해탈의 대각을 이루셨고, 법장비구는 48 대원을 세워 아미타불이 되셨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유명한 과학자 뉴턴은 원에 의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에디슨은 전기를 발명했어요.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멈춤’ 법의 말씀 ‘멈춤’에는 자신의 선험적 견해의 작동을 멈추고, 밀당을 내려놓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나의 것’이라는 내 생각, 내 가치, 나의 개념들을 대상에 덧입히지 않는 것, 오쇼 라즈니쉬는 장미꽃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보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기억 경험 듣고, 보고, 알고 있는 것들을 텅 비워야 대상의 현재 실제 모습을 느끼고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대상을 알기 위해선 자신의 선험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한 멈춤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 오랫동안 바라보는 ‘머묾과 관찰’을 통해 장미와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때 ‘미지의 장미’라는 대상이 바라보는 존재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의 가치판단과 선호..
어떻게 하면 잘 사는가? 항상 깨어있는 마음 결국 인생의 근본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서 불제자가 된 지금, 지금 수행하지 않으면 다시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일로 미루지 말고 마음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걸어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사는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공헌하고 있는지 내면의 자성을 발견하십시오. 그러면 내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내 잘못이 보이고 자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영광된 삶일 수도 있고 부끄러운 오욕을 남기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가? 불법을 귀하게 여기고 거기에 의지해서 살겠다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본래 불성의 인품이 나도 모르게 자리를 잡아서 일상생활에서 보살로 살아갈 수 있는 ..
늘 한결 같은 마음! 왜 사람들은 늘 같은 마음일 수 없을까요?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한동안은 좋게 생각을 냈다가도 조그만 어긋나면 서로 갈라지고 항상 마음이 변합니다. 그게 바로 중생 심이지요. 이곳에 오시는 [중생]모든 인간 들아! 너희들은 다 해당된다. 그러나 우리가 수행을 잘 쌓으면 항상하는마음을 씁니다.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한테 이익이 오면 좋은 마음을 쓰다가도 조금만 그 사람이 해를 끼치면 변심해서 그 항상심이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는 항상심, 한결같은 마음이 정돈되어야 그 생활이 행복해집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한결같은 마음, 그 사람이 나를 해칠 때나 나를 도와줄 때나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마음이 없으면 항상 이해관계나 차별심이 생겨서 변동이..
지혜와 자비 위없는 지혜와 자비! 세존께서 지니신 여러 가지 많은 훌륭하신 점 가운데서도 특히나 위대하시게 생각되는 것은 지혜와 자비일 것이다. 위없으신 세존의 지혜와 중생들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시는 현실적 자비심으로서 이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으며 허공에 떠있는 태양과 달과 같은 것으로서 태양의 빛이 만물을 성장시키듯 부처님의 지혜로서 모든 중생들이 무지의 어두움에서 지혜의 밝은 빛으로 나아가게 하며 달밤의 서늘함이 모든 중생들을 고뇌의 아픔에서 휴식을 취하게 하듯 세존의 자비가 중생들로 생로병사의 윤회고통에서 해탈의 길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혜와 자비가 부처님을 모든 수행자나 성자들보다도 훨씬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게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하셔야 할 모든 임무를 완성하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언제나..
그림자! 망상일 뿐! 마음은 얼마나 맑고 고요한 것일까, 우리도 마음이란 게 있지만 깨달으신 분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의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으십니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귑니다. 망울 튼 버들가지는 싱그럽고 시냇물은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흘러갑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아낙네들은 봄나물을 뜯고 있습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런 광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도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이 있으면 물을 보고 꽃이 있으면 꽃을 본다는 것. 이게 바로 空寂靈知입니다. 이 자리가 本心의 자리인 참 마음인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산에 올라가서 연 초록색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듣고, 흘러가는..
만남 인연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대 숨 쉬는 하늘아래, 그대 머무는 세상에서, 추억 한 줌으로 살 수 있음도 행복이라면 행복이지요. 욕심부려 무엇합니까? 미우면 미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세상사 순응하며 살 일이지요. 성급한 걸음으로 앞서 갈 일 있겠습니까? 사랑이 부족했다면,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지요. 해답 없는 사랑, 규칙 없는 사랑일지라도 만남은 소중해야 합니다. 인연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젖은 어깨 털어 주고 때 묻은 마음 헹구어내 잘 익은 봄의 가운데로 함께 걸어가야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거리가 있습니다. 그 거리를 좁히고 믿음이라는 징검다리를 놓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친구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그 거리를 멀게 하여 무관심이란 비포장도로를 놓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과 불행은 그 어디에도 없다. 중생들 자신들이 저질러서 얻은 인과이다. 인과는 썩지도 않는다 열반을 성취하게 되면 윤회가 끊긴다. 우리는 육도윤회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우리는 끊임없이 육도윤회(六道輪廻)하는 존재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 있을 때는 천사도 되고 닫혀 있을 때는 아귀도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일생의 윤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자리에서도 윤회하는 존재입니다. 당생(當生)에 윤회하는 존재입니다. 내생에 정토에 태어나길 바라는 것은 바른 불자들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생전에 가정, 이웃 등을 위해 마음을 제대로 써야 합니다. 불교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가 있는데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삼법인(三法印..
살아 계시는 부처님! 세존이시여! 내 곁에 살아계시는 부처님이 계셔서 좋다. 그 부처님은 때론 웃음으로 때론 묵묵하게 때론 호통으로 때론 실천으로 때로는 그저 마음으로 가르침을 주신다. 그래서 살아 계신 것이다. 그 부처님은 바로 나의 스승님 이시다. 원수로 보이지 않아서 스승이고, 축생으로 보이지 않아서 스승이고 귀신으로 보이지 않아 스승이다. 사람으로 그것도 비구의 모습으로 보여주시기에 스승이시다. 천만 다행이다. 내가 눈이 침침하지 않아, 이상한 모습으로 보지 않는것이 다행이고, 내 견해가 어두어서 스승을 헛것으로 착각하지 않기에 다행스런 일인 것이다. 내 습관되어진 업식에 따라 보이는 것이다. 가령 술을 좋아하면 불단의 감로수도 술로보이고, 술마시는 스승이 멋진 스승으로 보일것이며, 노래듣길 좋아하면 법문도 그저 한가..
불교적인 인격 맑고 향기롭게 살려면 실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은 불교적인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불교적인 인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의 경전인 불서(佛書)를 많이 읽어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경전을 많이 읽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불자인 우리는 부처님 경전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불교 책도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소책자로도 나오고, 수필이나 소설 같은 책들도 많습니다. 월간 [법공양]도 거기에 들어갑니다. 이런 책들을 가급적이면 많이 사가지고 집안의 요소요소에 놓아두면 좋습니다. 경전도 좋고 쉽게 풀이한 불서라도 좋습니다. 거실이나 주방이나 침대 머리맡에 두고, 언제든 펼쳐 들고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
일행 삼매 [禪] 깨달음을 스스로 물을 마셔봐야 찬 지 더운지 알듯이 깨달음이란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모든 외재하는 사물은 우리들 참모습의 그림자이며 모든 외적인 교리는 자성(自性)의 메아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메아리나 그림자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자성을 볼 수 있어야만 비로소 무엇 이 참된 자아인지 알게 됩니다. 현대인들의 마음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스트레스’에 의해 건강이 좀먹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과잉은 몸에 큰 변조(變調)를 가져온다는 것이 의학 적은 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율신경 실조증(自律神經 失調症)’이라고 부릅니다. 이 ‘스트레스’는 대부분 근대화의 산물로서 인위적으로는 예방이 거의 불가능합니 다. 그..
걸망[보따리] 나에게는 항상 메고 다니는 묘한 보따리가 있다 참으로 묘하다 응당히 넣고 싶은 건 다 넣을 수 있고 빼고 싶은건 다 뺄 수 있는 묘한 보따리다 하지만, 나에게 이익되는 것만 넣고 빼다 보니 보따리 줄 조여 매는 것이 점점 야무져 간다 누가 빼갈 까봐 심하게 조여 메는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한다 누가 통째로 들고 갈까봐, 이젠 잠 이루는것도 불안하다 그 묘한 보따리 어리석게 쓰는 것이 되려 나에게 장애가 됨을 알지 못하니 아무것도 모르고 단두대를 향해 앞 다투어 뛰어가는 욕심 많은 소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참으로 묘한 보따리[따불빽] 그것은 저 많은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쓰라고 있는 것이다 조여 매지 않아도 되는 그 마음은 생명이 있든 없든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자 하는 보리심 아니겠는가!
하심(下心) 하심(下心)하는 자에게는 만 가지 복(福)이 생긴다! 불법을 닦는 수행자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심(下心)과 묵언(默言) 수행이다. 하심은 나의 마음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경한다는 뜻으로 겸허와 겸손을 의미한다. 그리고 묵언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필요없는 말은 삼가고 꼭 필요한 말만 하라는 불교의 기초수행이다. 특히 묵언과 하심은 처음 불문에 들어온 수행자들에게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로 되어있으며 불교를 신행하는 불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수행이다. 불교의 하심수행은 모든 중생들이 불성을 구족하고 있다는 근거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는 모든 생명체를 평등한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반야경에서도 모든 중생들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모든 생명체에는..
두 개의 길!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논리와 언어의 길, 다른 하나는 침묵의 직접적인 경험의 길이다. 논리와 언어의 길은 추론의 길, 이것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이를테면 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산에 불이 났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직접적인 경험은 연기이고, 산의 불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산에 불이 존재한다는 판단은 논리적이고 언어에 의한 추론의 결과이다. 왜냐면 연기가 있는 곳에서는 대개 불의 존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험은 몸에 의해서, 감각기관에 의해서 사물을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써 발생된다. 눈으로 색깔을 보고, 귀로는 소리를 듣고, 몸으로는 온전하게 느낌을 느낀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감각기관과 함께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몸을 통해서 우..
누구를 찾아왔는가 ! 세상 사람들은 하잘것없는 일들을 다투어 구한다. 악과 괴로움으로 뒤끓고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때문에 허덕이며 겨우 생계을 꾸려 나간다.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가난한 자나 부자나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돈과 물질에 눈이 어두워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근심 걱정은 떠날 날이 없다 불안 끝에 방황하고 번민으로 괴로와하며, 욕심에 쫓기느라 조금도 마음 편할 틈이 없는 것이다 논밭이 있으면 논밭 때문에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 때문에 근심하며, 가축과 돈과 재산, 음식 세간살이에 이르기까지 이것 저것 걱정 아닌 것이 없다 있으면 있다고 해서, 없으면 없다고 해서 걱정하고 한숨짓는다. 때로는 뜻밖의 수해나 화재 혹은 도둑을 만나 재산을 잃어버리고 원통해하고 슬퍼한다. ..
우리의 인생이..... 꽃피고 잎이 무성할 땐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들이 그제야 삐죽 고개 내미는데 그 가지, 이름이 바로 사랑 아닌가 싶어요 꽃처럼 화려하지 않고 잎새처럼 무성하지 않아도 나뭇가지들이 변하지 않고 자라나는 거지요 비,바람에 흔들리기는 해도 쉽게 꺾이지는 않는 거고요 인생이 한그루 꽃나무라면.... 그래서 무수히 꽃 피고 잎 지며 사계절을 견디는 거라면.... 가장 말이 없고 가장 오래가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커피처럼 들꽃처럼 향기로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쓸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아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혹은 남들이 바보 같다고 놀려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듯이 미소 지으며 삶에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이 살만한 것 아닌가 소원합니다_()_
베풀고 살아가면 세상이 따뜻해져요! 남의 허물 꾸짖기 전에 자기 잘못 먼저 살펴야, 이곳에서 법문을 읽은 보람이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너무나 혼탁해서 하루라도 빨리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될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무너져가는 윤리·도덕을 바로 잡는 길은 오직 부처님 법의 실천과 포교뿐임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부처님이 2천5백 년 전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이 일곱 걸음을 걸은신 후에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부처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중생류, 심지어 미물, 곤충, 초목, 총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불성(佛性) 자리를 가지고 있고, ..
범부와 성인이 어드메 있는가 어느 날 우연히 꿈과 같은 바다에 놀다가 이 몸 벗고 근원으로 돌아가 원래 본성에 걸림이 없으니 어찌 깨달음과 나고 죽음이 따로 있겠는가 삶의 허무를 감당할 재간이 없어 깊은 침묵으로 머물고 있을쯤 그 인연으로 불법을 만났다 젊은 날의 허무는 어디에 갔는가 “무(無). 그놈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을 틈도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지 어쩌면 밑바닥까지 도달한 그 허무가 한눈팔지 않고 수행의 길을 걸어오게 한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르지. 슬픔도 힘이 되듯 허무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큰 힘이 됐단 말이야! 범부와 성인의 무엇으로 차이를 두고 있는가? 번뇌를 밑천 삼아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큰 원력을 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인인 것 수행자로서 가장 큰 고비 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좋아 그리고 사람의..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진실되게 사는 방법! ※ 날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진실되게 사는 방법!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는 말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거나 내 감정에 속지 않고 내가 내 주인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내 주인이 된다는 일은 쉽기로 말하면 참으로 쉬운 일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기로 말하면 참으로 어려운 일 중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육신, 즉 감정의 덩어리로 된 몸뚱이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넣어주고 성을 내달라고 하면 화를 불같이 내주는 등 감정이 해달라는 대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사는 시간이 많지, 참마음이 주인되어 행동을 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팔만사천 번뇌 모든 욕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망상번뇌가 우리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내 마음의 ..
죽을 힘을 다하여 메달려라 기도를 할 때수행자는 힘이 있습니다. 내면의 힘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삶의 그 어떤 경계라도 쉽게 수행자를 뒤흔들 수 없습니다. 입시철이 다가오거나, 진급철이 다가오거나,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닥치면백일 기도다 뭐다 해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봅니다. 이런 때를 계기로 진실된 마음 내어 기도를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 세속적인 바람(욕망)들로 인해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인연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기도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입시기도나, 진급기도 같은 기도는 그 목적이 '합격'이나 '진급'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명확히 하고 정진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입시기도나 진급기도를 할 때 합격하기 위해서, 진급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