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안의 곳간 (59) 썸네일형 리스트형 인생은 나그네 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형제와 한 가족이 되어 사는 것도 한 편의 여행길이요, 성장한 후 사회인이 되어 생활하는 것도 역시 한 편의 여행길이다. 사람에 따라서 짧고 긴 인생길이 있는 것처럼 인간이 한평생 산다는 것도 나그네의 여행길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기에 인생길이 짧던 길든 간에 나그네의 여행길은 즐겁고 기쁘며 뜻깊고 보람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여행길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길이 남아야 한다. 그럼 정처 없는 나그네인 인생길이 즐겁고 보람되려면 어떠해야 할까? 첫째], 여행길은 열린 마음으로 자기를 살펴봐야 한다. 가득 찬 그릇엔 물이 넘치듯 주관적인 고정관념이 강하고 이기적인 습성을 지닌 사람은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마치 색안경을 쓴 사람이 어떤 사물을 보고서 자기가 본 것만이 옳다고 주장.. 어둡고 우둔함이 곧 밝고 총명함도 아니다 “어둡고 우둔함을 능히 알 수 있는 그것은 결코 어둡고 우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시 어느 곳에서 초월하고 깨달을 것을 찾겠습니까? 지식인이 이 어둡고 우둔함에 의지하여 들어가야 만약 어둡고 우둔함에 집착하여 스스로 나에게 돌아올 몫은 없다고 여긴다면 어둡고 우둔함이라는 마귀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대개 평소에 지견(知見)이 많으면 깨달음을 찾는 마음이 앞에서 가로막기 때문에 자기의 올바른 지견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도 역시 밖에서 온 것은 아니며, 또한 별다른 일도 아닙니다. 다만 능히 어둡고 우둔한 것을 알 수 있는 주인공일 뿐입니다.” 어두우니 밝으니 우둔하니 총명하니 하는 것은 이미 사념(思念)에서의 일이다.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알고 우둔함을 우둔함으로 아는 것은, 밝음을 .. 자비로운 관세음 . “천룡팔부 신장들이 자비로 보호하고, 백천 삼매 속히 닦아 성취하고, 가없는이 몸은 밝은 빛이 깊게 되어, 가이없는 이 마음은 신통력을 감추는 곳, 번뇌 티끌 모두 싣고 고통바다 건너서 방편문을 넘어서 깨달음을 얻겠네. 자비로운 관세음께 귀의하여 원하오니, 모든 진리 얻게 하고 지혜 눈을 얻게 하여 모든 중생 제도케 하옵소서. 자비로운 관세음께 귀의하여 원하오니, 반야심을 발하게 하고 하루 빨리 고해바다 건너가서 계·정·혜를 빨리 얻게 하고, 하루빨리 법신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할 때 언제나 외우는 천수경의 일부분을 약해서 풀어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천수경을 항상 독송하면서도 근본 뜻은 마음에 새기지 아니하고 외우기만 합니다. 아무리 좋은 부처님 말씀, 진리의 말씀이라.. 역경을 통하여 부처를 이루라... 이 거룩한 말씀은 늘 나의 마음을 흠뻑 적셔줍니다. 나날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일상을 도리어 더욱 값진 행복으로 되돌려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나날이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나아가는 일상이 늘 걸림 없이 뻥 뚫리길 바랍니다. 그러다가 장애가 올 때 한없이 괴로워 하고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며 때로는 크게 좌절하기도, 포기하기도 합니다. 장애가 바로 부처이며 괴로움의 경계가 바로 부처되는 경계임을 알지 못합니다. 죽기 싫어하는 우리의 마음... 그러나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준다고 하면 덥석 붙잡을 수 있을까요. 남들은 다 늙어 가는데 주위는 모두 변해 가는데 나만 죽지 않고 늙지 않고 늘 그대로 생생하다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친구들이며 사랑하는 여인이며 부모님 모두가 늙어 가는데 홀로 젊음을 즐.. 마음의 집착! 마음의 집착! 탐욕은 인간을 미혹한 삶으로 이끌어 수행을 통해서만 ‘탐욕’ 씻어낼 수 있다 ‘욕망을 최고의 반려로 삼는 사람은 오래도록 미혹의 세계를 헤맨다.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며 미혹한 생을 되풀이 할 수밖에, 그래서 이 미혹의 세계를 뛰어넘을 수도 없다. 이와 같은 사람은 탐욕이 괴로움을 낳는다는 것을 알아 집착을 끊어야만 한다.’ 인간에게 가장 큰 괴로움은 탐욕으로부터 오는 속박이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고 휘몰아 이로 인해서 인간을 미혹의 생으로 떠돌게 하는 원인이 된다. 부처님은 “나는 탐욕의 마음보다 더한 속박을 보지 못했다”고 이는 탐욕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을 악하게 만들고 미혹의 세계로 이끈다는 것을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욕구가 있다. ‘식욕’, ‘성욕’, ‘수면욕’이다. 이 ..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지마세요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지 말라!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는 종교가 불교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입니다.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불과 100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종교가 불교든 개신교든 천주교든 우리 민족의 모든 사람들의 몸속에는 불교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기독교인들은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극성스럽게 다니면서 ‘예수천국 불신옥’을 외쳐대고 다니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느새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설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워낙 기복적인 종교이다 보니 귀가 얇고 근기가 하열(下劣)한 많은 사람들이 흡수된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종교만이.. 해탈문을 여는 연기! 연기! 선(禪)을 놓고 저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하에 선을 말한다면 이미 그르친 것입니다. 그것은 ‘말’(馬)을 보고 ‘사슴’(鹿)이라고 하는 것처럼 입을 떼는 순간 저는 여러분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선에는 주관과 객관이 따로 없고, 우리는 모두 본래 완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자리는 말로는 해석할 수도, 전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는 부처라 해도, 중생이라 해도, 번뇌라 해도, 지혜라 해도, 구속되어 있다 해도, 해탈해 있다 해도 모두 다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묵묵히 있다고만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조금이라도 선에 접근할 수 있도록 언어를 빌려 방편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라 하는데 여기서 궁금증이.. 늘 바른 생각으로 수행 ‘삼라만상이 실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이는 분별 망상으로 인식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인연 따라 잠깐 머물러 있다가 언젠가는 없어지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딱 바로 잡아서 어떠한 환경이나 문제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바른 마음을 낼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불법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체 걱정 근심이 없는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자기 마음을 바로잡지 못하면 편안하거나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집, 높은 벼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것으로 여기지만, 이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는 될지언정 행복의 기준은 될 수 없습니다. 불법은 안에서 찾아야지 결코 밖에서 찾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은 자기가 이끌어가지 않.. 공덕 베푸는 공덕! 세상을 사는 순리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에 의해서 사람 관계가 좋은 사이로 유지되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먼저 사람의 마음에 감정의 균열이 생기며, 의심과 조바심이 일어나 불안감마저 조성되게 된다.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질 때는 스스로의 마음에 믿음이 생길 때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내가 너를 믿는다는 자기의 예상대로 상대의 행위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두고 흔히 쓰는 말이지만 알고 보면 그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불교에서의 믿음이란! 이 말은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났을 때 내 마음속에 ‘아! 그렇구나.’ 하는 이해와 확신이 생기는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이 그런 것이었다.’ 하고 이해했을 때 고개를 끄떡이며 수긍이 가는 상태의 .. 마음 현상과 작용을 점검하는 공부 자기 마음공부 점검! 수행자는 자신의 수행 진행과정을 스스로 점검 확인 할 수 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의 현상, 육체적·감각적 현상관찰의 수행을 확실하고 꾸준하게 지어가는 사람은, 확실히 자신의 심리적 변화와 사고적 진행과정을 보게 되며 동시에 육체적 행동은 조용해지고 보다 더 침착하며 몸의 움직임은 마음의 명령에 의해서 일어나며 한 동작은 하나의 마음에 의한 동작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수행자는 마음공부해 가면서도 자신의 수행 자체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그 진척 정도를 알 수 없어 그저 막연히 깨침이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은 불합리하며 비논리적인 것이다. 이제 새로 배우는 자가 먼저 수행해 온 경험자에게 수행과정과 진행상황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 먼저 수행한 자는 자기 자신의 수행에 대.. “마음이 극락도 지옥도 만든다” [인생고해] “삼라만상이 명경(明鏡)에 비추듯이 마음의 거울 또한 모든 것을 비추어 줍니다. 마음의 근원을 회복하는 것이 부처입니다” 선(禪)의 마음은 진여(眞如)의 마음세계”라면서 번뇌와 무명심을 떨쳐내고 자유인(自由人)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자아 상실의 시대로 규정된 현대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선(禪)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우리 한국인의 마음에서 잊혀 가고 있는 선을 되살려야 한다. 윤리부재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얼마나 건전한 윤리의식을 가지느냐, 얼마나 진리를 가까이하느냐 하는 지성적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기준은 바로 윤리회복에 있습니다. 불교는 이와같은 가치 창조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리라고 확신합니다. 불교윤리는 억압과 굴레를 강조하는.. 번뇌와 망상를 끊어내는 지혜의 선 지혜가 드러나는 참선의 힘, 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내게 알맞은 벗이 없거든 차라리 혼자 바르게 살라. 어리석은 사람의 길동무가 되지 말라 참선을 찬탄한 게송이 있는데, 먼저 ‘선위수지장 공덕지복 전(禪爲守智藏 功德之福田)이라, 선은 지혜를 지키는 창고요 공덕의 복전이다.’라고 참선을 하니까 그때부터 지혜가 쏟아져 나오더라는 거예요.참선을 하면 왜 지혜가 나올까요? 맑은 물에 얼굴을 비치면 훤히 얼굴이 비치지만, 탁한 물에 가면 얼굴이 안 뜨지요? 탁한 물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등 ‘어리석을 치’ 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버리니까 깨끗한 물로 변했습니다. 청정수가 되어 지혜가 훤히 드러난다는 말이다 참선을 하기만 하면 지혜를 간직하는 창고가 되다 보니, 그 다음부터 삶의 .. 더불어서 사는 삶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간관계란 주는 마음에서부터 행하는 마음이 시작이다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면 상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주는 마음이 곧 열린 마음이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받아 주는 것 그것이 열린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애써 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린 마음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냥 열린 마음으로 있어라, 가만히 있어도 열린 마음이면 그건 주는 마음이다 나를 낮추는 것은 열린 마음의 시작이다 나를 낮추고 또 낮춰 저 드 넓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벽도 없고 울타리도 없다 넓디넓은 들판엔 수많은 꽃들이 다투어 피고 뭇 짐승들이 와서 머물고 머물다가는~떠난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런 시비도 없다, 갈등도 없다, 장애도 없다, 거칠 것.. 인욕과 지족 참고 견디는 것이 제일 장사요, 족함을 아는 것이 제일의 부자고 병 없음이 제일의 이익됨이며 좋은 벗이 제일 친한 이요, 열반이야말로 제일의 즐거움이니라. 이 중에서도 인욕과 지족은 누구에게나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할 가르침, 모름지기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스스로 족할 줄 알고 마땅히 참을 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참을 줄 모르면 화를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원망으로써 원망을 갚으면 마침내 원망은 쉬어지지 않아요. 오직 참음이 원망을 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욕을 행복의 열쇠라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인욕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함 누구에게도 지려하지 않으며, 내 행복을 위해 남을 힘들게 합니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마음 작용의 양면!!! 지금 내가 쓰다듬고 있는 이 강아지는 엄연한 실물이 아니라 내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아무래도 이 점을 수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다른 실례에 의하면, 그 같은 주장을 전혀 터무니없다고 일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은 불교의 마음 철학, 특히 유식학을 성립시키는 체험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이 속담을 “뱀 보고 놀란 가슴, 새끼줄 보고 놀란다.”라고 바꾸면, 그 취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더욱 실감 날 것이다. 만약 새끼줄을 밟은 상태에서 뱀인 줄 알고 놀랐다면, 이 체험에서는 발바닥으로 전달되는 감촉까지도 분명히 뱀과 같은 것이었다. 손으로 느끼는 감촉이라는 직접적인 체험으로 강아지.. 본래 무엇이 문제인가! 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어떻게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식적 조작일 뿐이고 선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은 모두 함과 하지 않음이라는 두 경계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계를 나누어 취하고 버리고 하는 것은 분별하는 의식일 뿐 선은 아니다. 이러한 분별하는 의식은 허망하게 생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망상이라고 부른다. 선(禪)은 확고부동하고 불변하는 자리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경계가 닦치더라도 흔들리거나 휘말리지 않고 늘 여여부동할 수 있는 것이 선이다. 확고부동하고 불변한 자리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는 자리에 머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여 어.. 번뇌 망상은 흐르는 물 같은것 나오는 곳에 되놓으면 일어났다. 소멸되기 마련 둘 아니게 진실히 믿고 믿는 마음으로 채찍질해야 자생 중생 스스로 제도 하나도 걸림 없이 살 수 있는데 자기가 긁어서 고를 만들고 자기가 긁어 애고·병고 만들어 내면에다 놓고 들어가야 정(定)에 들어 진실하게 믿고 어떠한 문제든 타파해 나갈 수 있는 능력 길러야 이렇게 더운데도 불구하고 한자리를 또 하게 됐습니다. 물론 세상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걸 보면 마음과 마음이 전달돼서 한치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로 같이 돌아가고 살고 있지만 모습은 다 각각인 것처럼 만났다고 하고 또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항상 말씀드리지마는 아버지가 됐다가 남편이 됐다가 아들이 됐다가 이렇게 순간순간 바뀌면서 돌아가듯 , 우리가 헤어졌.. 허망 분별의 진상 일상적 지식의 실상! 비록 아직은 40대 전후의 젊음에 안도하며 건강한 신체를 자부하고 있을지라도, 이전에 말한 적이 있는 이야기를 다시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것인 양 반복하게 되는 일이 잦아지는 것은 이미 정신적으로 노쇠에 접어들었다는 증거이다. 이 분명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같은 말의 반복을 말하는 당사자는 의식하지 못하고 듣는 사람이 주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정신적 노쇠가 덜한 편이라면, 말하고 나서라도 언젠가 했던 이야기임을 스스로 알아차리고서는 이야기할 상대를 잘 구분해야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이 같은 정신적 노쇠가 극심한 경우를 흔히 망령 들었다고 말한다. 망령이란 노년에 나타나는 정신 현상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나이와는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망령이 있다. 다만 .. 자신의 고통을 아는가! 언젠가부터 따라다니는 이 고통! 상대가 나에게 주었다고 여겨 그 상대를 원망하고 저주합니다 마치 유리병에 갇혀 그곳이 세상이 전부다 여기는 옹 절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상대로부터 받았다 여겼던 그 고통이 사실은 내 안에서 생겨난 욕망에 의한 것임을 인지합니다 잘 살펴보니 몽둥이로 나를 때린 상대를 그리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내 피부에 직접 와닿은 몽둥이 에게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괴로움의 근원이 상대인지 나의 욕망인지 잘 살핀다면 거짓말 같이 질투와 증오 원망하는 부정적 마음이 사라짐을 사유합니다 마음에 큰 변화가 생기고 혼란이 야기될 때 침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답을 찾아 헤매지요. 아무리 찾아도 생각만의 해답은 진실함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는 침묵은 어떤 소리보다도 큰 소음.. 마음이 가야할 길 그 길은 너무도 많은데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이 길이 맞은 듯해서 가지만 고개 돌려보니 저길도 괜찮은 듯하고 저 길로 가지만 또 이 길이 부럽네 눈, 귀, 코, 혀, 피부, 뜻으로 세상을 감응하면서 그것에 끌려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습관적으로 일체 법을 좋다 싫다 분별하게 될 때 그 분별이란 생각조차도 내지 말아야 되는데 잘 되지 않는다 당장 아프니 되지 않고! 지금 괴로우니 여유가 없고! 이겨낼 훈련을 한 적이 없으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짓게 되고 그리게 되고 꾸미면서 또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저 '강'은 움직임 없이 그대로인데 내 마음은 본래, 개골, 풍악을 그리워하는구나.... 저 은둔하여 악업을 짓지 않고 중생의 이익을 위해 정진하는 스승이 보고 주는 자와 받는 자 시주하는 물건.. 흘러가는 물처럼 반야선을 타고 떠나리! 우리는 세세생생 버릴 줄 모르는 집착의 세계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집착하며 사는 것이 버릇이 되어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것을 하나 붙들면 놓아버리지를 못 합니다. 어느 날 관광버스를 타고 어느 도시를 스쳐 지나가다가 나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어떤 동네 골목길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한평생이 지나도록 그 간판이 안 잊히고 마음속에 간직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우연히 눈에 비친 것도 그러한데, 하물며 내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붙드는 일들이 어떻게 나에게서 떨어지겠습니까? 이렇게 무서운 것이 우리의 버릇입니다. {능엄경}에는 '오십 종 변마사(五十種辯魔事)'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색 · 수 · 상 · 행 · 식 5 온의 각각에 해당되는 열 가지씩의 마구니의 일을.. “마음. 형상이 없어 잡을 수가 없구나” 생각으로 실체가 없는 형상에 속아서 살아가는 나그네들이시여! “마음. 형상이 없어 잡을 수가 없구나” 모든 사람은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있는데 스스로 덮고 있어 그 능력이 나오지 않을 뿐 구름이 걷히면 있는 마음이 드러나,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이 불교의 시작이다 마음은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라는 사람은 이 본래부터 있는 ‘마음’을 깨달은 사람이다. 이 본마음은 깨달음의 성질을 품고 있으며 그 이름이 곧 불성이다. 부처는 이를 깨닫고 나서 세존이 되었으며 세존께서 말씀하신 법문이 결집되어 경전이 된 것이다. 이 經 중에 마음을 떠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중에 잘 드러난 것이 약인 욕 요지 삼세 일체 불 응관 법계성 일체유심조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마음을 알면 모든 성인을 한곳에서 만난다.. 망령 된 我를 본다.... 인생 백 년을 온갖 걱정과 생각들 속에서 세상 풍파를 겪으며 죽으면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는 사람도 많고, 반면에 나쁜 냄새를 후세에 남기는 사람들 또한 많은 것도 조용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이 그리 바쁠 필요가 있어서 항상 온갖 풍파를 무릅쓰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걱정과 근심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서글픈 웃음만 나오게 된다 각자가 자기의 생전에 최고의 기록을 돌파해 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죽기 전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면, 비록 목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죄 될 것은 없다고 본다 그러니 항상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깊이 생각해 가며 무슨 일이나 탈선함 없이 꾸준히 해나간다면 큰 성공까지는 .. 삶의 굴레... 산다는 그 자체는 시간 ~공간 흐름이라 생각합니다 그 흐름 속에서 어느 날 홀연히 발길을 멈추면 아무런 변화도 없는 자리에 문득 눈을 뜰때가 있지요 그것은 인생이 주는 가장 고귀하고 신선한 생명이 아닐까요 열광했던 젊은 시절, 한때의 불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옛날이 그리고 미래가 일순간에 몰려들면서 혼란이 일고 불안이 가슴을 죄 들면 그 원대한 원의 소재를 생각해 봅니다 젊음은 끝없는 방황을 요구 하기도 하지요 정작 할 수 없는 자기의 모순에 허우적거리면서, 그 숱한 고뇌를 우리는 뛰어넘어야 합니다 하잘것없는 인정을 음미하고 턱없이 밀어닥치는 고뇌에 때론 만신창이가 되기도 합니다 대게는 사람들은 바람에 휘날려 빙글빙글 돌다가 땅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흡사하지요. 우리는 이러한 의미 없는 낙하를 용납해서는.. 功 德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자라 하더라고 자신의 행복을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잘못되어 죄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을 바라지만 모두가 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뿌린 씨앗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씨앗 말입니다. 큰 씨앗을 뿌린 사람은 큰 행복을 누릴 것이고 작은 씨앗을 뿌린 사람은 작은 행복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인과의 법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밤잠을 안 자면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과 놀 것 다 놀고 잠잘 것 다 잔 사람이 같은 문제로 시험을 본다면 누가 더 잘 보겠습니까?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둡니다. 노력이라는 씨앗을 더 많이 뿌린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차지하는 것은 .. 산중 고독 찾아 오는이 없기에 기다리는 이 없는 법이 머무는 곳 외롭고 험한 산길을 오르면 어김없이 오롯이 앉은 암자을 만난다 산새 소리만 찾아드는 산중에서 다툼과 분별이 끊긴자리.... 깨달음에 공덕을 구하겠다는 다짐이다 햇살드는 법당 마루에 앉아 멀리 구름 넘어를 바라보며 온 산줄기가 달려온다 해도 그저 묵언으로 정진에 하루를 보낸다 산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영봉들 높디 높은 영봉들을 호령한다 겨울산 봉우리마다 하얀 눈꽃을 뽐내겠지만 산 아래 사바는 온통 고통으로 가득한 세간 일 뿐이다 봄볕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눈 쌓인 산줄기와 얼어 붙은 논두렁이 어찌다를 수 있으랴! 그러나 아직은 산등의 추위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릴 뿐이다 푸른 대나무 숲에 호위을 받으며 솟구쳐 오르는 전나무는 한구루.. 무명초 항상 저 허공 속에 꿈을 꾸며 빛나는 별보다 아련히 보이는 별이 되어 꿈을 찾는 나그네 내 마음 걸망에 담아 저 허공 속에 유성이 흐르는 길을 따라 彼岸의 길을 가는 나그네 정처 없이 가야 하는 저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며 저 굽이쳐 흐르는 험난한 苦海의 바다에 조그만 떡갈잎 배를 띄워 六塵에 지친 나그네의 몸을 실어 잠깐 쉬어간다 人生도 저 험난한 바다도 허공 속에 길 잃은 별들의 영혼도 三毒山에 울어 지친 새들도 나의 가냘픈 번뇌의 떡갈잎마저 저 끝이 없는 길을 따라 般若의 길을 찾아 떠난다 멀고 먼 고갯길 따라 삼독산을 넘고 오욕의 山을 넘어 無生化가 피어 있는 山으로 간다 저 넓고도 넓은 十方의 외로운 들판에 無明草 그 無明草에 꽃이 필 때 저 아득히 멀어져 간 외로운 하늘가에 잊힌 無明草 또한 잊..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약 '자비' 네가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라고 말하라. 경전마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가르침이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 중에는 발음이 똑같은 단어들, 철자가 같은 단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뿐만이 아니다. 영어 등 외국어도 마찬가지이다. 말은 참으로 불완전한 전달수단이어서 남이 한 말을 내가 정확히 이해했다고 가정하거나 그 가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같은 행동은 값비싼 대가를 치를지도 모른다. 내가 한 말이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인간사회의 상당수의 문제들이 언어 사용상의 오해로 일어나는 예가 다반사다. 사용한 낱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리지 않을 경우 모호한 지시가 큰 화를 부르는 예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그때 얼마나 안타까운가.. 심외 무법 법에는 단박에 깨침(頓)과 점차로 깨침(漸)이 없다.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아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見性)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한다. 이 법문은 예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體)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本)을 삼는다.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無相)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無念)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無住)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前念)과 지..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