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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실체 부처님께서는 중생제도를 위하여 49년동안 법문을 하셨는데 그 실체는 중생으로 하여금 수행을 통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인 여래(如來)가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아(假我)가 주체역할을 하는 중생이 수행을 통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인 진아(..
침 묵 누구의 부탁도 바램도 없어지만 微塵의 業報에 깨어난 울음소리 말라 바스라진 理性의 향기는 불 꺼진 창문의 문틀에 박혔습니다 뫼시고 거느린 사이 어느덧 不感입니다 大地의 소리는 침묵뿐이어늘. . . . 허공에 젖는 손이 밤새밤새 떨었습니다
불법 모임은 깨지지 않는다 일이 적은 것을 즐겨하고 일 많은 것을 좋아하지 말며, 침묵하고, 잠을 적게 자고, 패거리를 만들어 잡담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칭찬하지 말고, 나쁜 사람을 멀리하고, 산이나 숲에서 한적하게 침묵하고 있는 것을 즐긴다. 여래에 대한 믿음이 있고, 자신의 죄를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
봄 항기 가득 차 한잔의 여유 방문하시는 분마다 그림이 다소 부족함이 보이더라도 양해 바라며 일상에서 지친 미운마음 다 내려 놓으시고 평안히 쉬어가세요 _()_
내 고약한 버릇(편무풍설야최잔) 절집에서 “달리 특별한 것을 구하지 말라!” 지루함을 견디는 것도 큰 공부입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시련이 없어도 깊은 상처를 입는다[便無風雪也摧殘, ]”라고 삶이 아무리 무상할지라도 우린 사랑해야 합니다. 꿈과 환상, 고통과 슬픔은 끊임없이 얼굴을 내밉니다. “한가함이 가장 큰 고통이다”라는 선가(禪家)에서 ‘물 긷고 장작 패는 일상도 그대로 신묘한 도’라고 한 것은 인간의 삶이란 것이 결국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인데, 무료함을 달래면서 심연을 메워가는 역정임을 간파한 것 진정한 삶의 즐거움은 이 일상에서 중생에 대한 자비로운 마음, 바로 회향에 있습니다. 남을 향한 따뜻한 마음 이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종교와 사상을 초월해서 다양한 문화권의 뛰어난 영혼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폭 넓게 알아야..
봄 향기
산과 들녁에서 봄의 향기 봄꽃향기 그윽한 산과 들녁에서 삶에 귀감이되는 인연밭(뜰)에서 머물며 대자연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선사하고 가르키는지 눈여겨보시고 그 대자연은 우리들에게 무상으로 베풀고 도와주고 이끌어주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번뇌 망상으로 집착과 편견으로 얼룩져 있죠! 눈으로 보이는 모양과 형상에 집착하고 글자인 토시(그림자)에 속아서 헤아려들고 계산해서 살고있잖아요 대자연은 깨끗한 것도 받아드리고 대자연은 더러운 똥과 오줌도 받아 들인다 인간들이 쓰고 남은 온갖 것들을 다 받아들인다 오직 사랑으로.... 분별없는 사랑으로 다 받아들리고 있으니 그러면서도 깨끗하다 더럽다는 분별이 없다 우리 모두가 가슴으로 새기고 묵언 하심으로 배워야한다 또한, 우리 인간들도 마음을 대자연과 같이 써야 한다 그래서 성글고 덜익은 마음을 여유..
미소 차 성냄과 원망과 불평을 뿌리를 잘라내고 잘게 다진다. 교만과 자존심은 속을 빼낸 후 깨끗이 씻어 맑은 햇살에 말린다. 짜증은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토막을 낸 후에 허공과 같은 넓은 마음으로 절여둔다. 주전자에 실망과 미움을 한 컵씩 붓고 씨를 잘 빼낸 다음 불만을 넣고 ‘도 까 새’도 첨가하여 푹 끓인다. 미리 준비한 재료에 인내와 사랑 기도를 첨가하여 재료가 다 녹고 쓴맛이 없어지기까지 충분히 쪽 달려 조청이 될 때까지 달인다 기쁨과 감사로 잘 젓고 미소를 몇 개 예쁘게 띄운 후 깨끗한 믿음의 잔에 부어서 여여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마신다. 오늘 하루도 예쁘고 밝은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_()_
렌드속 봄 향기 스켓치
淸 天 문득 바람이 일면 고요한 石塔의 風磬소리에 고즈넉한 밤 한 잔 차 의 따스함에 젖어 한 가닥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 마시노라면 가득 고인 그대의 香 텅 빈 세상 우리는 언제나 속고 사는 他人 쪽빛 하늘에 얼굴 하나 生은 한 조각 뜬 구름 날때에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이제 어느 곳으로 향하여 가는가 삶과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다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 뜬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 오고 감이 없는 뚜렸한 한 물건은 무엇인고 한량없는 목숨이 바다를 건너 다시는 고해로 오자 말라는 염원 우리는 언젠가 생멸의 통로를 따라 진한 흙빛으로 돌아갈 생각에(사성재) 무상 한 가닥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듯 생은 한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멸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_()_
다라니 수행》 한국 불자들이 조석으로 외우는 《천수경》! 그 가운데, 불자들이 가장 널리 외우는 《천수경》의 핵심 진언(眞言: 주문) 신묘장구대다라니! 이를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다라니수행 관세음보살님이 설하신 이 신묘장구대다라니(천수대비주=대비주=천수다라니=대다라니)는 무량억겁전 천광왕정주여래께서 처음 수행을 시작한 초지(初地)의 관세음보살님과 일체 중생을 위하여 설하신 진언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수지독송 하게 되면, 보살 십지과위(十地果位)의 여러 단계를 차례로 거치지 않고, 즉시 본래의 마음자리에 들 수 있다, 빨리 오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보살의 모습으로 나투고 계시지만 이미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 전에 성불하신 부처님이십니다. 명호는 ‘정법명 여래’라고 하시고, 일체중생을 성숙시켜..
질량의 세살 질량의 세상 눈에 보이는 현상인 색의 세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실상 세계인 공의 세계가 서로 맞닿아 불가분의 관계라는 부처님 가르침 또한 현대 과학자들에 의해 하나하나 증명되고 있습니다. 색(色)은 물질에, 공(空)은 에너지에 비유한다면 물질은 에너지로, 에너지는 물질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이전의 과학자들은 에너지 불멸의 법칙과 질량 불변의 법칙, 이 두 가지를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E=mc²이라고 하는 방정식을 만들었습니다. E는 에너지이고 m은 질량이며, c는 광속을 말합니다. 즉, 에너지와 질량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절대적으로 동등하여 서로 바뀔 수 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모든 물질은 에너지로 만들어져 있으며 에너지가 응집되면..
물은 인과연으로 그냥 흐른다 나와 남을 위한 일 착하다 해도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나니 솔바람 칡덩굴 달빛 아래서 길이 무루(無漏)의 조사선을 관할지어다. 마음속에 애착이 떠난 것을 ‘사문’이라 하고, 세속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불교에서 출가자를 뜻하는 ‘사문’이란 본래 범어인 ‘슈라..
시원한 바다와 계곡물에 잠시 쉬어 가세요 合掌_()_
봄의 향기 .
참회와 겸손 불교의 행에 있어서 참회가 매우 중요하다. 그릇된 업을 고쳐가는 지름길이 참회에 있다. 참회라고 말하면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용서를 비는 것으로 생각하고, 도덕적 부담감이 큰 죄의식이 참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르고 지나갈 번한 작은 에러성의 자신에 대한 참회가 있고 남에게 실수한 사소한 잘못을 자책하는 가벼운 참회가 있다 참회란 범어의 크라마 (Ksama)의 역어인데 쉽게 말하면 미안해하는 마음이다. 사람이 쓰는 인사말 가운데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어느 나라 말에도 예외 없이 다 있다. 인사말이 있다는 것은 언어적 습관을 통해 우리는 때로 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말의 경우 윗사람에게는 “죄송합니다” 라고 경어를 써 예를 갖추어 말하면서 정말 수줍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자연의 고요속에 장엄함 나무를 보라. 꽃과 풀을 보라.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 생각을 중지하고, 분별을 멈추고, 다만 마음을 그 위로 살며시 올려놓기만 하라. 나무는 얼마나 고요한가. 나무는 아무런 생각도, 고민도, 분별도 없다.단지 나무는 나무일 뿐, 나무라는 이름조차 고집하지 않는다. 꽃은 얼마나 생명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가. 꽃은 언제나 꽃의 생명 안에 자리하고 있다. 다른 것과 비교하고 따지고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꽃일 뿐. 모든 자연의 생명은 이와 같은 고요함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자연의 고요함. 그 텅 빈 고요함을 배우라. 우리 삶에서도 잠깐의 멈춤, 비움을 통해 드러나는 그 고요함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인간 또한 자연이며 자연의 고요함을 그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 안..
돈독한 신심을 일으켜 등불을 밝히세요 만공스님은 “번뇌를 지우고 지혜를 별도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있되 그 번뇌에 어둡지 않고 번뇌의 실상을 여실히 봄으로써 번뇌의 당처(當處)에서 지혜를 얻으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생사와 열반이 둘 아님 (不二)에 있어서 생사가 끝나고 열반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생사 그자체로서 열반의 모습을 삼는 당시 당처(當時當處)의 불 이를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장래의 어떤 시점에 중생의 몸을 여읜 부처가 새롭게 오는 것이 아니라, 즉시의 현전에서 업력으로 받은 육신인 ‘나’가 있는 그대로 이전과 이후가 아무런 다름이 없이 그대로 부처입니다. 화두도 내가들고, 망상도 내가 내고, 잠도 내가 잡니다 거짓된 나 자신과의 모든 싸움에서 이겨 참 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일체의 생각들을 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