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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제6권-법사공덕품 세존께서 상정진보살마하살에게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법화경을 수지하여 독송커나 해설커나 서사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팔백의 눈의 공덕과 일천이백의 귀이 공덕과 팔백의 코의 공덕돠 일천이백의 혀의 공덕과 팔백의 몸의 공덕과 일천이백의 뜻이 공덕을 얻으리니, 이러한 공덕으로써 육근을 장엄함으로 하여금 다 청정하게 되리라. 이 선남자 선여인은 부모로부터 받은 청정한 육안으로 삼천대천 세계의 내외에 있는 산과 숲과 강과 바다를 보게 되며, 아래로는 아비지옥에 이르고 위로 유정천에 이르기까지 또 그 가운데 있는 일체 중생과 업의 인연과 과보로 나는 곳을 보아서 다 알리라.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하사 게송을 설해 말씀하시었다. 만일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이 법화경을 설하는 그 공덕을 그대는 ..
나무에 구멍을 뚫듯이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뚫듯이 그렇게…. “내 속에서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할 인과로서의 업이 자꾸 나오는데 나오는 대로 놓고 놓아서 놓는 것마저도 없다 할 때까지 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게 공했다더라’하면서 놓으면 그냥 공으로 빠져 몰아지지를 않는다. 그러기에 공도 아니고 색도 아닌 데서 주인공 하나를 세워 놓고 전부를 주인공으로 몰고 들어가라고 한 것이다. 빠져나갈 틈이 없이 몰고 들어가는 게 몰락 놓는 것이다. 그렇게 몰다 보면 마치 젖을 쥐어짜서 유선이 터지게 하듯이 답답해져서 빠져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쑥 빠지고 모는 그것만 남게 몰아붙여라. 그렇게 몰다보면 참나가 나온다. 바퀴가 구르려면 중심축이 잡혀 있어야 한다 . 맷돌도 정중앙에 심봉이 딱 꽂혀 있어야 곡식을 갈아낼 ..
얻는 공부 아닌 걷어내는 공부! 야들아! 무엇을 얻고자 예까지 왔는가? 그 이유는 인간이 그 자체로서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빈부귀천과 남녀노소와 관계없이 누구나 부처님의 생명을 지니고 이기에 더 이상 보테가 뺄 것이 없는 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우리의 순수한 본성은 본래 맑고 깨끗하다. 허공처럼 푸르고 한계가 없다. 그런데 망상과 잡념이 그것을 덮는다. 무수한 생각의 장막이 밝은 생명의 숨소리를 막아버린 밝은 태양을 구름이 덮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나친 욕심과 헛된 망상만 비우고 쉬어준다면 우리는 내 안에 파릇파릇 숨 쉬고 있는 생명의 숨소리를 듣게 되기 마련이다. 마음이 쉰 사람이 좋은가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사람이 좋은가. 당연히 마음이 쉰 사람이다. 마음이 여유롭고 한가하여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 마음이 ..
비록 적게 가졌어도 나눌줄 알아야 보살” -염불은 부처님 만나려는 수행 불·보살 명호 마음에 채우면 일체 사량분별 끊어집니다 이곳 산 골짜기에도 이른 아침마다 맑고 투명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한결 정겹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경제 한파로 얼어붙은 중생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봄이 오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때일수록 많이 가진 이들이 적게 가진 사람들을 돌보며 지켜주는 보살행을 펼쳐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가족의 생계유지에 빠듯하고 여유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받아들여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온정을 베푸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 펼치는 보살행의 근원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 힘은 의외로 소박한 곳에서 나옵니다. 우리들의 번뇌가 고통에서 나오듯 보살행도 고통에서 시작..
無常! 사람이 사는 한 생애의 기간을 일기무상(一期無常)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무상을 말할 때 찰나(刹那) 무상과 일기무상의 둘로 설명을 한다. 이 무상이라는 말은 시간이 짧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다. 순간의 일이란 의미에서 무상을 붙여쓰기도 한다. '세상만사가 무상사다.'고 할 때의 무상은 '덧없다.'는 뜻과 함께 '순간에 불과한 일'이라는 뜻을 가진다. 찰나에 생겼다가 찰나에 없어지는 것, 이것이 모든 현상계를 단적으로 파악할 때 쓰는 수식어다. 그런데 무상이란 존재하던 사물이 없어진다든지 전성을 누리던 사람이 몰락한다든지 하는 상황퇴보에서 느끼는 감정의 표현으로 곧잘 쓰이는 말이지만, 원래는 생각이 움직이는 것에서 나온다.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는 염기염멸(念起念滅)의 생멸심을 말한다. 사념처(四念處..
하심(下心) 하심(下心)하는 자에게는 만 가지 복(福)이 생긴다! 불법을 닦는 수행자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심(下心)과 묵언(默言) 수행이다. 하심은 나의 마음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경한다는 뜻으로 겸허와 겸손을 의미한다. 그리고 묵언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필요없는 말은 삼가고 꼭 필요한 말만 하라는 불교의 기초수행이다. 특히 묵언과 하심은 처음 불문에 들어온 수행자들에게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로 되어있으며 불교를 신행하는 불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수행이다. 불교의 하심수행은 모든 중생들이 불성을 구족하고 있다는 근거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는 모든 생명체를 평등한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반야경에서도 모든 중생들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모든 생명체에는..
두 개의 길!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논리와 언어의 길, 다른 하나는 침묵의 직접적인 경험의 길이다. 논리와 언어의 길은 추론의 길, 이것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이를테면 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산에 불이 났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직접적인 경험은 연기이고, 산의 불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다. 산에 불이 존재한다는 판단은 논리적이고 언어에 의한 추론의 결과이다. 왜냐면 연기가 있는 곳에서는 대개 불의 존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험은 몸에 의해서, 감각기관에 의해서 사물을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써 발생된다. 눈으로 색깔을 보고, 귀로는 소리를 듣고, 몸으로는 온전하게 느낌을 느낀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감각기관과 함께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몸을 통해서 우..
누구를 찾아왔는가 ! 세상 사람들은 하잘것없는 일들을 다투어 구한다. 악과 괴로움으로 뒤끓고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때문에 허덕이며 겨우 생계을 꾸려 나간다.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가난한 자나 부자나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돈과 물질에 눈이 어두워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근심 걱정은 떠날 날이 없다 불안 끝에 방황하고 번민으로 괴로와하며, 욕심에 쫓기느라 조금도 마음 편할 틈이 없는 것이다 논밭이 있으면 논밭 때문에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 때문에 근심하며, 가축과 돈과 재산, 음식 세간살이에 이르기까지 이것 저것 걱정 아닌 것이 없다 있으면 있다고 해서, 없으면 없다고 해서 걱정하고 한숨짓는다. 때로는 뜻밖의 수해나 화재 혹은 도둑을 만나 재산을 잃어버리고 원통해하고 슬퍼한다. ..
우리의 인생이..... 꽃피고 잎이 무성할 땐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들이 그제야 삐죽 고개 내미는데 그 가지, 이름이 바로 사랑 아닌가 싶어요 꽃처럼 화려하지 않고 잎새처럼 무성하지 않아도 나뭇가지들이 변하지 않고 자라나는 거지요 비,바람에 흔들리기는 해도 쉽게 꺾이지는 않는 거고요 인생이 한그루 꽃나무라면.... 그래서 무수히 꽃 피고 잎 지며 사계절을 견디는 거라면.... 가장 말이 없고 가장 오래가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커피처럼 들꽃처럼 향기로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쓸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아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혹은 남들이 바보 같다고 놀려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듯이 미소 지으며 삶에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이 살만한 것 아닌가 소원합니다_()_
베풀고 살아가면 세상이 따뜻해져요! 남의 허물 꾸짖기 전에 자기 잘못 먼저 살펴야, 이곳에서 법문을 읽은 보람이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너무나 혼탁해서 하루라도 빨리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될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무너져가는 윤리·도덕을 바로 잡는 길은 오직 부처님 법의 실천과 포교뿐임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부처님이 2천5백 년 전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이 일곱 걸음을 걸은신 후에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부처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중생류, 심지어 미물, 곤충, 초목, 총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불성(佛性) 자리를 가지고 있고, ..
원력 한 칸 방 어찌 그리 너무도 고요한가 만 가지 인연이 모두 적막하네. 길은 돌 틈으로 뚫려 있고 샘은 구름 속에서 새어나네. 밝은 달은 처마 끝에 걸려 있고 산들바람 숲 속에서 일어나네. 누구 따라 고요히 앉아 참 즐거움 배우려나. “우리가 사는 기세 간은 지진, 태풍, 해일 등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어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니다 재앙이 없으면 테러를 비롯해 서로가 투쟁을 해 살상을 일삼는 등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생명을 존중하고, 자비사상으로 남에게 베풀면서 살라는 보살행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찰나 찰나 변해가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생명이 있는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면할 길이 없다, 불교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부처가 될 수 있는..
마음자리 밝아지면 행복” 한 생각 바꾸면 생산자 요. 마음자리를 다 밝아지게 하고 그렇게도 간절히 행복을 바라지만, 많은 사람들의 현실은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지 행복은 타고난 마음자리가 영원히 밝아지는 것 나와 상대 둘 아니죠 마음이 밝아지면, 나와 상대가 적중하게 됩니다. 나와 상대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밝아지는 것, 마음, 지혜는 모두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하나입니다. 마음이 밝아지면 시간에도 공간에도 속해지지 않아 생도 다스리고 별도 다스리기 때문에 그 역량으로 대우주를 통솔하고, 그 지혜자원은 결코 줄어들지 않습니다. 유정물이든 무정물이든 종합적으로 생명체 어느 생명이든 시작할때 지혜의 역량이 전체 생명의 원리 원천이 되고 모체가 각자 생명들의 생사요체가 연결돼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
장엄하게 펼쳐진 대자연의 선물!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이 뭘 까요?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진다.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는다.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60세로 돌아가고 싶다. 젊은 날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는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뭔지 몰랐으니까. 65세에서 75세까지가 삶의 황금기였다는 것을 그 나이에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고생하는 것.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라는 것. 맑은 정신 상태로는 잘 가본 적이 없는 경지. 육신의 나이가 거의 100세에 다다르는 한 석학이 후배 60-70대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살아보니, 지나고 보니 인생의 가장 절정..
초로의 방황을 끝내고.... 내 어린 날은 참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생각만큼이나 뜻 모를 방황도 아울러서였을 것이고, 비행 저지를 소년될 용기도 없었고, 턱없이 감상적인데다 대책없는 시절이었다. 그럴 수밖에. 너무 어린 날 맞았던 그것은 한 소년을 생각 많고 우울한 시절로 만들어 갔다. 이 때 이미 한생의 계산서를 다 작성해버린 셈이 된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는지 간다던 날짜에 이틀인지를 넘겼던가. 그 때서야 용기가 났다. 그러나 걸어야 할 수밖에. 몇 십리 길을 한나절인가를 걸었다. 동구에 이르렀을 때는 마을 집 아궁이에 생솔가지 쪄다 저녁 짓는 연기가 굴뚝을 타고 피어오르고,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아픔이 인 것도 그 때였다. 모를 세상으로 향하는 두려운 마음이 그리움을 더욱 사무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왜 두..
선근 공덕 종교에 입문하게 되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내면적 동기를 갖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그 계기를 일별 하여 보리심을 발하였다고 하며, 그 보리심은 깨달음의 발단이 되고 불자들이 이상으로 하는 완전한 자유 종자가 되며 궁극에는 이타의 덕성을 함양시켜 밝은 세상을 구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독(三毒)으로 얼룩진 무한생사의 풍랑 속에서 진정한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밝기를 헤아리기 어려운 등불을 밝히는 것이요 세간의 빛깔에 비유할 수 없는 장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무변광명과 무한 장엄자비를 계발하는 일, 이것이 참으로 보리심을 발하는 일이며 출가입신(出家入信)하는 길입니다. 삼독을 여의는 길이 출가요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입신의 길이니 참으로 완전히 비우면 만덕(萬德)이 꽉 차게 되는 것입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
장엄하게 펼쳐진 꽃 길의 향연![3] 거친 마음 밝히는 등불을 자성 깨쳐 부처 이룬다”! 백 년 동안 쌓은 재물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지만 3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동안 보배가 됩니다. 부처와 조사스님들은 ‘명심견성성불(明心見性成佛)’이라고 했습니다. 거친 마음을 다스려 맑게 밝히면 자성을 볼 수 있고 자성을 확연히 깨치면 곧 부처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 닦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흔히 부처가 다 된 것처럼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막상 경계에 처하면 살림살이가 다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옳고 그른지는 스스로가 알고, 부처님의 말씀을 자기 식으로 잘못 해석해서 말하면 사도요, 마도가 되니 신앙생활은 제대로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훌륭한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 법을 묻고 되묻고 공부한..
장엄하게 펼쳐진 꽃 향기따라{2} 님 그리운 동산에 올리! 짙은 어둠속에서 서성거리다 그리움을 닫아둔 채로 얼마나 헤메이다 혼침한 시간 그 기나긴 초로의 길 목에서 무뎌진 모진 삶에 서성거린다 그림자들이여....! 지난 삶에 지친 어께 들먹이며 가슴 속 흐르는 애잔한 눈물 지채할 수 없는 새벽 안개 속 여운으로 맴도는 삶의 내음... 빛바랜 알음앓이 걸망에 가득 담아 그루터기 여명속에 묻힌다 _()_
허공계가 다 하는 날까지 “허공 끝이 어디인가?” “허공은 끝도 없고 시작도 없습니다.” 허공도 내 안에 있습니다.” “내 마음에 따라 춤을 춥니다.” 사람들이 독거유희락(獨居遊戱樂)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본래지당(本來知堂) “우리 마음은 본래지(本來知) 습성지(習性知) 두 가지입니다 본래지의 마음은 대자연의 마음이요 천연의 마음이라면 습성지의 마음은 세세생생 본인의 습관이 쌓여서 만들어진 마음입니다 본래지는 天地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며 시방법계 두두물물 산하대지 어디에도 꽉 차 있는 신령한 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의 마음은 다겁생으로 익혀 온 습성지의 마음입니다 탐진 치, 거짓말, 양설(兩舌), 악구(惡口), 시기질투, 어리석음, 명예욕이 습성지의 마음입니다.” 인연 이전 본래지는 식(識)도 아니고 ..
번뇌와 망상를 끊어내는 지혜의 선 지혜가 드러나는 참선의 힘, 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내게 알맞은 벗이 없거든 차라리 혼자 바르게 살라. 어리석은 사람의 길동무가 되지 말라 참선을 찬탄한 게송이 있는데, 먼저 ‘선위수지장 공덕지복 전(禪爲守智藏 功德之福田)이라, 선은 지혜를 지키는 창고요 공덕의 복전이다.’라고 참선을 하니까 그때부터 지혜가 쏟아져 나오더라는 거예요.참선을 하면 왜 지혜가 나올까요? 맑은 물에 얼굴을 비치면 훤히 얼굴이 비치지만, 탁한 물에 가면 얼굴이 안 뜨지요? 탁한 물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등 ‘어리석을 치’ 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버리니까 깨끗한 물로 변했습니다. 청정수가 되어 지혜가 훤히 드러난다는 말이다 참선을 하기만 하면 지혜를 간직하는 창고가 되다 보니, 그 다음부터 삶의 ..
和顔愛語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나 증오는 곧 그 사람의 표정으로 나타납니다. 얼굴 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든지 호흡이 거칠어지는가 하면 눈도 충혈되고, 온몸을 부르르 떨기도 합니다. 이렇듯 변한 우리의 모습이 바로 나찰 귀신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일단 화가 나면 대부분의 경우 이성을 잃기 십상입니다. 평소 와는 달리 거친 욕도 하고, 심한 경우 폭력을 휘두르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우리 의 모습이 바로 나찰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나 자신일 수 있다는 사 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나찰이나 야차 같은 귀신들이 결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분노로 일렁이고, 욕심으로 한없이 요동을 치고 있 을 때 내가 바로 야차요, 나찰인 것입니다. 또한 이같은 분노와 욕심이 ..
無念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見性)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니 이 법문은 옛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體)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本)을 삼고,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無相)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無念)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無住)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前念)과 지금의 생각(今念)과 다음의 생각(後念)이 생각생각 서로 ..
범부와 성인이 어드메 있는가 어느 날 우연히 꿈과 같은 바다에 놀다가 이 몸 벗고 근원으로 돌아가 원래 본성에 걸림이 없으니 어찌 깨달음과 나고 죽음이 따로 있겠는가 삶의 허무를 감당할 재간이 없어 깊은 침묵으로 머물고 있을쯤 그 인연으로 불법을 만났다 젊은 날의 허무는 어디에 갔는가 “무(無). 그놈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을 틈도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지 어쩌면 밑바닥까지 도달한 그 허무가 한눈팔지 않고 수행의 길을 걸어오게 한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르지. 슬픔도 힘이 되듯 허무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큰 힘이 됐단 말이야! 범부와 성인의 무엇으로 차이를 두고 있는가? 번뇌를 밑천 삼아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큰 원력을 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인인 것 수행자로서 가장 큰 고비 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좋아 그리고 사람의..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진실되게 사는 방법! ※ 날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진실되게 사는 방법!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는 말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거나 내 감정에 속지 않고 내가 내 주인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내 주인이 된다는 일은 쉽기로 말하면 참으로 쉬운 일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기로 말하면 참으로 어려운 일 중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육신, 즉 감정의 덩어리로 된 몸뚱이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넣어주고 성을 내달라고 하면 화를 불같이 내주는 등 감정이 해달라는 대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사는 시간이 많지, 참마음이 주인되어 행동을 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팔만사천 번뇌 모든 욕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망상번뇌가 우리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내 마음의 ..
죽을 힘을 다하여 메달려라 기도를 할 때수행자는 힘이 있습니다. 내면의 힘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삶의 그 어떤 경계라도 쉽게 수행자를 뒤흔들 수 없습니다. 입시철이 다가오거나, 진급철이 다가오거나,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닥치면백일 기도다 뭐다 해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봅니다. 이런 때를 계기로 진실된 마음 내어 기도를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 세속적인 바람(욕망)들로 인해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인연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기도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입시기도나, 진급기도 같은 기도는 그 목적이 '합격'이나 '진급'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명확히 하고 정진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입시기도나 진급기도를 할 때 합격하기 위해서, 진급하기 ..
불자님이시여! 불상은 조각이든 그림이든 부처님에 대한 형상이지 부처님은 아니다, 부처님은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나 지혜의 눈을 떠 깨닫고 깨달은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행 할 수 있다면 그가 곧 부처이다 부처님은 예배의 대상이 아니고 그 어떤 우상도 아니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로 충만한 인격의 소유자이지요 그러므로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고 나와 이웃이 다 함께 지혜롭게 잘 살아가는 마음밭을 닦아가는 길이다 이러한 인격에 귀의하는 것은 곧 본질적인 자아에 눈을 뜨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 형상을 모시고 애경 하며 그 뜻을 이어받기 위하여 각자 지혜의 눈을 뜨고 저 함이다 부처님 本體인 法身은 宇宙의 대광명이며 모든 衆生의 생명의 根源이다 그래서 無量光 또는 無量壽라고 한다 그래서 석가모니..
매 순간 일어나는 경계에 끄달리지 말라 어떤 경계 닥쳐도 ‘공부’로 알아야 -“마음에 묻고 맡기는 습관에서 답이 나와요”- -“苦를 苦라 집착하면 별도에 이르지 못하죠”- “항상 좋은 일만 생기지 않는 것은 파도나 잔잔한 물이나 동등하듯 그 이치 알게하기 위해서죠” 우리에게 제일 급한 게 뭐냐 하면, 자기 뿌리를 자기가 믿는 겁니다. 배를 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선장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를 믿습니까? 그래서 파도가 치든 잔잔하든 양면을 다 놓고 그 선장한테 맡겨 놓는다 이겁니다. 선장이 배를 끌고 갈 수 있게끔 만들어야지, 파도가 친다고 해서 우왕좌왕하며 마음이 흔들린다면 결국에는 배가 뒤집히죠. 우리 몸뚱이를 배로 비유한다면선장인 주인공이 자기를 이끌고 가는데 바깥으로 자꾸 끈 달린다 면목적지까지 목적지까지목적지까지 제대로 끌고 갈 수가..
새는 그릇은 아무리 채워도 ( 생각일 뿐)... 내가 있다면 맘대로 되는 게 있어야 변하지 않는 게 있어야는데 전혀 안 그래 어느 게 나? 깊이 보면 무아 구함이 없는 걸 구하면 그 역시 속박 구하지 않는 해탈한 여래의 생활 보니... 반야바라밀 몸은 파초와 같다 알맹이 없고 허깨비 같고 생각은 허망해~~ 아지랑이 같아 깨닫지 못하면 붉은 고깃덩어리 무상, 무아를 철저히 느끼고 철저히 부수고 수행해야 망상 덩어리를 녹여야 성불~ 쓰레기 더미에서 금은보화를 얻는다! 반야를 얻으면 악몽에서 깨어나듯 일절의 걱정 근심에서 벗어난다 지혜를 얻고 나면 내 문제는 일체 없어 자비뿐.... 무상을 느끼고 도를 닦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도 닦을 이유 없어 공덕 심는 이 흙더미에서 보물케는 것 몸은 사라져도 공덕은 남는다 윤회 바로 봐도 끝도 없어 순간순간 나를 잃는 ..
더불어서 사는 삶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간관계란 주는 마음에서부터 행하는 마음이 시작이다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면 상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주는 마음이 곧 열린 마음이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받아 주는 것 그것이 열린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애써 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린 마음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냥 열린 마음으로 있어라, 가만히 있어도 열린 마음이면 그건 주는 마음이다 나를 낮추는 것은 열린 마음의 시작이다 나를 낮추고 또 낮춰 저 드 넓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벽도 없고 울타리도 없다 넓디넓은 들판엔 수많은 꽃들이 다투어 피고 뭇 짐승들이 와서 머물고 머물다가는~떠난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런 시비도 없다, 갈등도 없다, 장애도 없다, 거칠 것..
자신이 지어놓은 결과물, 지금 나에게 고난이 있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내가 어리석어지어 놓은 일들이 결과로 나타나서입니다. 그렇게 고난과 같은 무의미한 일들의 근원이 되는 어리석음을 멀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고 지금 내 몸이 아프다는 것은 전생에 지어 놓은 업의 숙명이 빗받으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이 수행자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병을 나으르려고 한다면 그 전생이나 금생에 쌓아놓은 덕이 있다면, 그것을 법력이 높으신눈 밝은 스승님을 찾으시어 상담하고 관음전에 죽기 살기로 기도와 발원으로 매달려 어쩌면 답이 올지도!!! 교만을 인정하며 "참된 스승에게 지혜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다. 그래야 어리석음에서 멀어지고 고난을 만나지 않으며 고난에서 멀어지는 원인인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不二門 나오는 곳에 되놓으면 일어났다 소멸되기 마련! 둘 아니게 진실히 믿고 믿는 마음으로 채찍질해야 자생중생 스스로 제도 하나도 걸림없이 살 수 있는데 자기가 긁어서 고를 만들고 자기가 긁어 애고·병고 만들어 내면에다 놓고 들어가야 정(定)에 들어 진실하게 믿고 어떠한 문제든 타파해 나갈 수 있는 능력 길러야 이렇게 더운데도 불구하고 한자리를 또 하게 됐습니다. 물론 세상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걸 보면 마음과 마음이 전달돼서 한치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로 같이 돌아가고 살고 있지만 모습은 다 각각인 것처럼 만났다고 하고 또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항상 말씀드리지마는 아버지가 됐다가 남편이 됐다가 아들이 됐다가 이렇게 순간순간 바뀌면서 돌아가듯 우리가 헤어졌다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