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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같은 인생 외로운 나그네 눈물샘속으로 별하나 진다 얼마나 멀리 왔을까? 사람이 그립구나! 저 만치 저녁이 다가와 모두들 돌아가는데 오늘은 어디서 쉴까 머무를 곳이 없구나! 지친 나그네 가슴속으로 꿈하나 진다 얼마나 멀리멀리 왔을까 사람이 그립구나! 오늘은 어디서 머무를 곳이 없으니 지친 나그네 심연으로 저밀어오는 애절한 이야기 눈꽃이 날린다 얼마나 터덜터덜 걸어 왔을까 긴 터널~~ 나그네가 쉴 곳이 어디멘가! 그 어디 있을까 어둠이 내리면 그대 허상을 찾아 텅빈 거리를 헤메어 보지만 그리움도 외로움도 그대입니다 _()_
심안 법문 {安心立命} 후학들이나 시주님들께서 법문을 듣고자, 먼 거리에서 고생하시고 오신 것은 다른 데가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얻어봐야 되겠다는 자기 행복(幸福)의 한 조각이라도 얻어봐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어서 오신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 인간(人間) 치고서 마음이 안락(安樂)스럽고, 마음이 편안(便安)하고, 그러한 자기 안정(安定)을 도모하지 않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행복(幸福)이라는 것도 마음이 안정(安定)되지 않으면 얻으래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부처님 법문(法門)의 대요도 모두가 다 안심법문(安心法門),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안심법문이 기본적인 법의 내용이 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이 우리 인생(人生)살이도 우리 갈 길을 훤히 알아 버리고서, 인생은 대체로 어떤 것인가, 그 의미(..
허공과 같은 마음 우리들이 우선 생각을 허공 같다고 하는(허공이 내가 허공 같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마는 우리 마음을 비유하기를 허공으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허공을 비유해 말씀드린 것처럼 바로 허공 안에 우주가 건립되어 있고, 우주 그 안에 지구가 있다 하고 지구 가운데 만물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공이야말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입니다. 이 허공과 같은 큰 마음이 본래의 마음인데 거기서 바깥의 허공 가운데 지구라든가 지구를 나라고 매달린다든가 태양을 나라고 매달린다든가 아니면 어떤 별을 나라고 매달린다든가 이렇게 그 허공 가운데 있는 어느 부분 하나를 붙잡아서 자기라고 매달릴 것 같으면 물론 자기가 아니고 자기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착각입니다 그 가운데서 일체경계가 환상인데 고요한 깊..
일신에 편리함을 추구한다면 세속의 일반적인 생활을 세간인연이라고 말함 세간인연에서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정된 범위를 가지고 그 제한된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 출세간이라는 것은 세간을 벗어났다는 의미이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령,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몸을 중심으로 살다 보면, 태어나서 한 생애를 사는 동안에는 시간적인 제한이 있다 몸이라는 것은 항상 때와 장소에 자리 정해지게 된다 그래서 세간이라는 말은 시간과 공간의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함 세간에서 생각할 때는 현실이 가장 중요하고 육체가 가장 중요합니다 각자의 부모에게 몸을 받아 태어나기 이전의 문제 죽고 난 다음 생의 문제에 대해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직 현실에서 내게 이익이 돌아오고, 안녕이 ..
인연 ! 남에게 먼저 받지 말고 먼저 베푸는 삶으로 찾아가세요 부처님 가르침을 펼치면 8만 4천 법문 또는 그 이상 펼쳐지는 것처럼, 번뇌도 펼치면 8만 4천 번뇌 또는 그 이상 펼쳐집니다. 그 많은 번뇌는 무명(無明), 즉 어리석음이 중심이 되어, 이 어리석음에 의해 온갖 번뇌가 함께 일어나 고통의 바다에 생사윤회합니다. 이러한 무명을 중심으로 번뇌를 펼치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인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펼쳐지고, 더 나아가 탐(貪)[탐욕], 진(瞋)[성냄], 치(癡)[어리석음], 만(慢)[자만], 의(疑)[의심], 악견(惡見)[그릇된 견해] 등 6가지 근본번뇌로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더 많은 번뇌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보통 번뇌에 대해 널리 알려진 말로는 ‘백팔번뇌’가 있습니다. 글을 ..
인욕과 지족 참고 견디는 것이 제일 장사요, 족함을 아는 것이 제일의 부자고 병 없음이 제일의 이익됨이며 좋은 벗이 제일 친한 이요, 열반이야말로 제일의 즐거움이니라. 이 중에서도 인욕과 지족은 누구에게나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할 가르침, 모름지기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스스로 족할 줄 알고 마땅히 참을 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참을 줄 모르면 화를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원망으로써 원망을 갚으면 마침내 원망은 쉬어지지 않아요. 오직 참음이 원망을 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욕을 행복의 열쇠라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인욕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함 누구에게도 지려하지 않으며, 내 행복을 위해 남을 힘들게 합니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마음 작용의 양면!!! 지금 내가 쓰다듬고 있는 이 강아지는 엄연한 실물이 아니라 내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아무래도 이 점을 수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다른 실례에 의하면, 그 같은 주장을 전혀 터무니없다고 일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은 불교의 마음 철학, 특히 유식학을 성립시키는 체험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이 속담을 “뱀 보고 놀란 가슴, 새끼줄 보고 놀란다.”라고 바꾸면, 그 취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더욱 실감 날 것이다. 만약 새끼줄을 밟은 상태에서 뱀인 줄 알고 놀랐다면, 이 체험에서는 발바닥으로 전달되는 감촉까지도 분명히 뱀과 같은 것이었다. 손으로 느끼는 감촉이라는 직접적인 체험으로 강아지..
날마다 만나는 인연을... 그물망처럼 닿아있는 인연 “心淸淨 身靑淨 多身靑淨”이라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이 청정해지면 몸이 청정해지고, 한 사람이 청정해지면 주변 사람들도 청정해진다는 의미다.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이 맑아지면 몸도 맑아지고, 몸이 맑아지면 업장이 맑아집니다. 내 업장이 가볍고 맑아지면 가족의 업장도 가볍고 맑아지며 주변 사람들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나의 업장이 두터우면 가족의 업장도 같이 두터워지고 또한 업장이 두터운 사람끼리 모이게 된다 목련 존자가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할 때 어머니 주변에 같이 있던 사람들도 함께 구제됐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여러분들이 공덕을 쌓게 되면 가족도 같이 복을 짓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세계는 '그물망처럼 닿아있는 인연으로` 얽혀있기 때문..
본래 무엇이 문제인가! 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어떻게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식적 조작일 뿐이고 선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은 모두 함과 하지 않음이라는 두 경계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계를 나누어 취하고 버리고 하는 것은 분별하는 의식일 뿐 선은 아니다. 이러한 분별하는 의식은 허망하게 생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망상이라고 부른다. 선(禪)은 확고부동하고 불변하는 자리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경계가 닦치더라도 흔들리거나 휘말리지 않고 늘 여여부동할 수 있는 것이 선이다. 확고부동하고 불변한 자리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는 자리에 머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여 어..
번뇌 망상은 흐르는 물 같은것 나오는 곳에 되놓으면 일어났다. 소멸되기 마련 둘 아니게 진실히 믿고 믿는 마음으로 채찍질해야 자생 중생 스스로 제도 하나도 걸림 없이 살 수 있는데 자기가 긁어서 고를 만들고 자기가 긁어 애고·병고 만들어 내면에다 놓고 들어가야 정(定)에 들어 진실하게 믿고 어떠한 문제든 타파해 나갈 수 있는 능력 길러야 이렇게 더운데도 불구하고 한자리를 또 하게 됐습니다. 물론 세상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걸 보면 마음과 마음이 전달돼서 한치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로 같이 돌아가고 살고 있지만 모습은 다 각각인 것처럼 만났다고 하고 또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항상 말씀드리지마는 아버지가 됐다가 남편이 됐다가 아들이 됐다가 이렇게 순간순간 바뀌면서 돌아가듯 , 우리가 헤어졌..
“매사 긍정하는 마음 파동이 곧 극락” 마음도 굳어지면 분열되면서 부스러기가 생깁니다. 마음이 굳어서 생긴 부스러기, 그것은 아지랑이 같고 연기같이 뿌옇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그것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업(業)이라 말씀하시고 경전에서는 형진(荊塵)이라 칭했습니다. 업은 집착할 때, 욕심낼 때, 화낼 때, 허망된 생각을 할 때, 이렇게 마음이 딱 굳을 때 생깁니다. 촛불이 잘 타다가 바람이 불거나 흔들리면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하면서 그을음이 나옵니다 여기 있는 이 책상도 몇 백 년이 흐르면 쩍쩍 갈라지고 부서져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이 정치를 하기 때문에 경제도 굳는 것입니다. 돈은 행복의 바로미터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심성이 가장 안 좋은 나라가 우간다이고 우리가 두 번째라고 합니다...
연의 존재 (연의 존재 ) 내 처지를 생각하는 것도 연상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등 무간 연(等無間緣)이다. 유채꽃과 같은 물질은 등 무간 연이 될 수 없다. 등 무간 연이란! 마음의 활동에서만 원인으로 작용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은 보통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선은 우리의 생각 즉 기억을 한 장면으로 고정시킬 수 없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장면의 상황을 다시 끌어내어 계속 생생하게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서 후자는 등 무간 연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한 가지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비슷한 장면의 정지된 사진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영화의 경우에는 장면과 장면이 잴 수 있을 정도의 시간 간격으로 ..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진실되게 사는 방법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는 말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거나 내 감정에 속지 않고 내가 내 주인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내 주인이 된다는 일은 쉽기로 말하면 참으로 쉬운 일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기로 말하면 참으로 어려운 일 중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육신, 즉 감정의 덩어리로 된 몸뚱이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넣어주고 성을 내달라고 하면 화를 불같이 내주는 등 감정이 해달라는 대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사는 시간이 많지, 참마음이 주인 되어 행동을 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팔만사천 번뇌 모든 욕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망상번뇌가 우리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내 마음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 되는 세계를..
허망 분별의 진상 일상적 지식의 실상! 비록 아직은 40대 전후의 젊음에 안도하며 건강한 신체를 자부하고 있을지라도, 이전에 말한 적이 있는 이야기를 다시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것인 양 반복하게 되는 일이 잦아지는 것은 이미 정신적으로 노쇠에 접어들었다는 증거이다. 이 분명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같은 말의 반복을 말하는 당사자는 의식하지 못하고 듣는 사람이 주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정신적 노쇠가 덜한 편이라면, 말하고 나서라도 언젠가 했던 이야기임을 스스로 알아차리고서는 이야기할 상대를 잘 구분해야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이 같은 정신적 노쇠가 극심한 경우를 흔히 망령 들었다고 말한다. 망령이란 노년에 나타나는 정신 현상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나이와는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망령이 있다. 다만 ..
본래 청정한 본연의 자리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번뇌 망상이 80억 도 더 된다고 합니다. 그 한 생각 한 생각 念念生滅心, 그것이 모두가 다 마(魔)거든요. 이러한 번뇌의 마가 熾盛할 적에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기도를 하든 하나를 일념으로 해 나아가면 한 생각이 또렷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 마치 급히 흘러내려가는 여울물에 달빛이 비쳤을 때 물길이 아무리 세차게 흘러가도 달빛은 떠내려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공부가 일념이 되어서 온갖 경계에 부딪치더라도 조금도 동요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그야말로 動靜一如가 됩니다. 더 나아가면 夢中一如, 꿈속에서도 한결같이 되어서 나중에는 , 熟眠一如 잠이 푹 들어서 꿈도 생각도 없을 때 한결같이 깨어있는 주인공이 생생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경계에 부딪쳐서 心機一..
법을 찾아 부단히 가는 길 문제가 생기면 삶은 우리의 행동에 그 답을 묻습니다.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가?』하고 그러나 결과가 잘못되면 사람들은 반문한다 왜 이렇게 해야 하지? 그러나 우리가 부딪치는 삶의 문제는 포기할 수도 없고 풀지 않을 수 없기에 풀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존재를 제약하는 필연성이 모든 당위(當爲)의 근본 우리는 살아 있는 동물인 까닭에 행동을 전혀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용된 선택의 자유는 행동과 비행동(非行動)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행동 사이에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 우리가 당면하는 문제는 행동할까 행동하지 말까 하는 그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까 하는 그것이다. 어떤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결심은 행동을 전혀 않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달리 행동하겠다는 판단인 것이다. ..
누가 내것 만들어주는가을 바라지 말라 법당도 꼭 사찰에 있는 법당만 법당이 아니라 각자 자기 몸뚱이가 바로 법당입니다. 내가 없다면 세상도 없고 상대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법당일 수밖에요.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있는 곳이라면 변소간도 부처님이 계시는 법당인 셈이죠. 법당에 와서 절을 할 때도 ‘ 아, 저 부처님 모습이 내 모습이고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이고 부처님 생명이 내 생명이니 모두가 둘이 아니구나’하고 마음을 둥글려서 한다면 일배를 올린다 해도 삼천배 못지않습니다. 이런 마음의 이치를, 이렇게 시원하고 광대무변한 이치를 여러분 모두가 알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어서 우주 바깥도 한 생각에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문지방 너머도 한생각, 천리만리도 한 생각, 지구 바깥도 한 생각, 한 생각이라..
업의 숙명 나를 만드는 것 오늘의 나는 지난날 내 행동의 결과이니, 나는 내 행동의 상속자이다. 오늘의 내 행동은 내일의 나를 이루는 바탕이요, 오늘의 내 행동은 나를 따르는 혈족이며, 오늘의 내 행동은 내일 내 인격을 만드는 기반이다. 모든 사람들은 바로 자신이 쌓은 업(행동/행위)의 상속자이니, 자신이 쌓는 업에 대하여 항상 깊이 사유하세요 나무 석가 모니불_()()()_
섬김과 희생 부처님처럼 사는 다섯 가지 조건 부처님처럼 살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자비심을 갖는 것입니다. 경전에서 자비심에 대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를 어머니가 자식 사랑하듯이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항상 즐거운 마음을 갖고 모든 사람들의 어려움을 막아주고 생각해주는 마음, 자비심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한없이 키우면 그것이 곧 행복을 가꾸는 길 중에 하나가 되는 따뜻한 미음을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복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나오는 보시가 바로 복의 씨앗입니다. 끊임없이 남에게 베푸는 것은 곧 나에게 저축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푸는 것은 부자로 사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고 훔치는 것은 가난한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
만추의 파노라마 세상 모두가 하나!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끝없는 순환의 연속일 뿐인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지만 사느라고 허둥대다 보면 세월이 끔같이 지나간다. 무슨 일을 하든지 정성을 다 해서 노력해야 하는데 삶의 타성 때문인지, 어리석음 때문인지 건성건성으로 일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반복되는 후회를 우리는 계속하곤 한다 옛 어른 스님들의 말씀에 "우리가 부처님께 간절히 소원을 말해도 3,000번쯤 절을 해야 겨우 눈을 반쯤 떠서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보신다" 고 하셨다 정말 그렇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정말 간절한지, 지금 그 일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우리가 원하는 일을 위해서 끝없이 강한 의지와 밝은 지혜로 노력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우리가 치열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아는가! 언젠가부터 따라다니는 이 고통! 상대가 나에게 주었다고 여겨 그 상대를 원망하고 저주합니다 마치 유리병에 갇혀 그곳이 세상이 전부다 여기는 옹 절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상대로부터 받았다 여겼던 그 고통이 사실은 내 안에서 생겨난 욕망에 의한 것임을 인지합니다 잘 살펴보니 몽둥이로 나를 때린 상대를 그리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내 피부에 직접 와닿은 몽둥이 에게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괴로움의 근원이 상대인지 나의 욕망인지 잘 살핀다면 거짓말 같이 질투와 증오 원망하는 부정적 마음이 사라짐을 사유합니다 마음에 큰 변화가 생기고 혼란이 야기될 때 침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답을 찾아 헤매지요. 아무리 찾아도 생각만의 해답은 진실함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는 침묵은 어떤 소리보다도 큰 소음..
茶의 香 고요함은 禮을 낳고 움직임은 香을 빚는다 앉았다 일어섬은 한바탕이요 놓고 잡음이 不二의 가부좌 甘露三昧가 태곳적 그 마을길에서 만나 스스로 우아하듯 은은한 차 맛이 法身을 적신다 다소곳함이 비운 마음 그릇에 차 빛깔로 가득하니 공간과 사람 함께 평화롭다 -()-
묵상 세상에는 가장 하기 어려운 두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은혜를 갚는 것이요, 둘째는 큰 은혜는 말할 것도 없이 조그만 은혜라도 잊지 않는 것이다. 이 세계에는 60조가 넘는 엄청난 수의 중생이 서로 의지해서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생명은 마음 한 생각에 따라 어느 날은 폭풍우 치는 날을 사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맑고 기분 좋은 날을 살기도 합니다. 한평생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나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내 마음을 내가 어떻게 농사짓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내 마음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이 믿고 있는 사실처럼 불자란 아름다운 이름이고, 다른 사람이 따라오지 못할 아름다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잠깐 더 부언하면 송아지나 말이나 개도 오식(五識..
저물어가는 가을 정취 행복하기 위해 잘 살려 하지만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 이 생이 잘 살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르고 살다 죽어버린다면 잘 살 수 있는 종자를 심지 않아서 다음 생에 더 괴롭게 살 수도 있다 "이번 생만 잘 살면 되지 다음 생은 무슨.?"이라는 생각만 낸다면 이 생의 작은 일들은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에만 만족하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종자를 심어야겠다는 설계는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이 잘 되고 안 되고 역시 지난날의 설계에 의한 결과임을 인정하자 지금 보다 더 행복하고 싶고 지금 보다 덜 괴롭고 싶거든 종자를 심자!! 눈앞의 작은 이익이 아닌 "온 중생에게 이익을 주겠다는 대장부의 종자"를 심자 이렇게 어리석음을 지혜로 대체하려 노력한다면 깊은 산중 토굴에 살아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찾아..
무심으로 믿어라! 그대로 무심으로 믿어라! 한 생각 놓고 돌리면 구정물도 새물 돼, 종점이 시발점 되는 도리 알면 피안행, 마음의 용광로에 다 놓을 때 습 제거돼 보이는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계나 다 생명이 있기에 처처불이요 생활 자체가 고정되지 않아 사사 불공입니다. 본래 인생이 태어났으면 자기 뿌리와 싹이 동시에 같이 태어났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실 줄 알고 내가 미리 이 염주를 들고 나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염주가 되기에는 줄에다 이 알을 꿰어야 염주가 되죠? 그렇다면 사람도 이렇게 염주처럼 정신계와 물질계를 겸해서 가지고 나왔다 이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본래 어디를 찾아야 하고 어디를 믿어야 하고 이런 게 없이, 본래 이렇게 꿰어져 있습니다. 육신과 정신계가. 즉 말하자면은 염주알은 어디를 믿어야 ..
가피의 길 길 우리는 어제도 인생의 길을 걸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인생의 길을 걷고 있고 내일도 인생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할 것인가? 부처님의 법문(法門) 가운데 중요한 물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습마물(什徼物)이 임 마래(恁徼來) 오. 이것은 중국 송(宋) 나라 때의 속음인데 이 뜻은 "무엇이 이렇게 있는가?" "무엇이 이렇게 왔는가?" 이런 뜻입니다. 다시 부언해서 말씀드리면 "나라는 것은 대체로 무엇이며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대체로 무엇인가 하는 그런 해답이 내려지면 응당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그런 우리 삶의 의미(意味)도 거기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제까지는 내가 인생의 의미대로 바르게 살았던가? 바르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내일도 또 오늘 같은 연속이 아..
가을날 사색의 길.... 그림자가 끊긴 자리! 우리가 산다는 것은 전부 생각의 흐름, 한 생각도 없이, 그것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아무 생각도 안 한다 해도 보통 중생의 세계에서는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을 가지고 안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다 쉬어버리지 못한 것이고 텅 비웠다 해도 비웠다는 생각 역시 하나의 생각이거든요. 결국은 우리의 생각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생각 속에서 자꾸 흐르고 있다 그러니까 좋은 경계가 오고 기뻐할 때는 좋은 줄은 알지만 그것은 금방 꿈같이 지나가 버립니다. 또 어떠한 생각이 대신 밀어닥쳐 연신 붉은 생각, 푸른 생각, 흰 생각 온갖 생각이 난다 그 말이지요. 기쁜 생각 덤덤한 생각, 사랑하는 생각, 미워하는 생각, 질투하는 생각, 온갖 생각이 자기의 부처를 가리고 주마등처럼 흘러갑니다...
행복, 불행 누가 지었는가 누구나 가장 원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자신이 만든다는 것을 모릅니다. 어떤 이가 행복을 찾아 집을 나섰지요. 많은 세월 행복을 찾아 세상을 헤매었지요. 행복을 찾지 못한 나그네는 지쳐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담 넘어 매화가지에서 꽃망울 터진 것을 보고 행복을 느꼈습니다. 이 나그네처럼 우리는 공기를 마시고 살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또 다른 곳에서 공기를 찾고 있는 셈입니다. 스스로 진리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서 밖에서 진리를 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만인이 귀착해야 할 깨달음은 멀리서 다른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안에서 나 스스로 발견해야 합니다. 간혹 불자 중에는 불교를 '부처 믿는 종교'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자기를 찾을 ..
무지한 사람은 기도해도 복을 짓지 못한다! 일 심!! 우리의 마음은 본래 희고 밝은 것이기에 염불도 필요 없고, 참선도 필요 없고, 마음공부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잖아요. 쓸데없는 잡념, 번뇌, 망상, 좋지 못한 貪瞋痴, 三毒을 일으키지요. 그러니까 마음공부를 절실히 해야 하고 생각을 완전히 비우기는 어렵지만 생각을 좋은 쪽으로 돌이켜 염불수행으로 정화시키기는 어렵지 않아요. 오직 일심으로 염불 수행하면 업장도 소멸되고 질병이나 고통에서 다 벗어나서 염불에만 마음을 두면 정신이 집중되고 정신이 집중되면 정신통일이 됩니다. 정신이 통일이 되면 참선해서 깨우치는 것과 같고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염불수행이 어째서 좋으냐 하면 참선은 자기 힘으로만 하는데, 염불수행은 자력도 필요하지만 타력이 더 많이 증가되지요. 항상 자나 ..
마음이 가야할 길 그 길은 너무도 많은데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이 길이 맞은 듯해서 가지만 고개 돌려보니 저길도 괜찮은 듯하고 저 길로 가지만 또 이 길이 부럽네 눈, 귀, 코, 혀, 피부, 뜻으로 세상을 감응하면서 그것에 끌려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습관적으로 일체 법을 좋다 싫다 분별하게 될 때 그 분별이란 생각조차도 내지 말아야 되는데 잘 되지 않는다 당장 아프니 되지 않고! 지금 괴로우니 여유가 없고! 이겨낼 훈련을 한 적이 없으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짓게 되고 그리게 되고 꾸미면서 또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저 '강'은 움직임 없이 그대로인데 내 마음은 본래, 개골, 풍악을 그리워하는구나.... 저 은둔하여 악업을 짓지 않고 중생의 이익을 위해 정진하는 스승이 보고 주는 자와 받는 자 시주하는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