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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음 저녁을 알리는 범종 소리에....         한 줄기 빛이 어두움을 비추듯          산사의 범음이 울려 퍼진다        산이 높아서 구름도 넘어가지 못하고 쉬어가는 곳        나의 쉼터 초막        그 아늑한 곳에서 세상을 향해 길을 놓듯        맑은 범음을 전하여 묵묵히 걸어왔다        번뇌의 걸망 내려놓고        무거운 마음 쉬어 가는 곳        오늘도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내 귀전에 범음과함께 울려온다        그 미묘한 향기로운 범종 소리에        지친 나그네 발걸음을 내려놓고  쉬어가라하네                                              법등_()_
마음(思惟)의 찌꺼기를 훌훌 털어야 불법에 든다 헤아리고 판단하여 인식하는 모든 것은 망상덩어리, 이것을 버리는 마음공부이다 부처·보살의 사랑을 장차 일체중생에게 널리 보급해 그들이 행복을 느끼며 살도록 해야 하고 살아있는 불교, 생활하는 불교를 믿어야 하보니다. 학문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든 사랑이든 상(相)을 갖고 하는 게 아니고 모든 것은 ‘마음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다즉일(多卽一)이요 일즉다(一卽多)’입니다.모두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수없이 많이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마음 하나만 잘 다스리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생로병사 등 인생에 있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마음에서 나온 찌꺼기입니다.우선 불법(佛法)을 믿는 정신자세가 바로 불법을 바로 알게 되면 무한한 광명이 나타나고 모든 재앙이소멸합니다. 운명과 팔자가 아무 ..
인연 존재와 실상 어떤 존재도, 어떤 사건도 따로 떨어져 일어나지 않는다.그 모든 존재며 생명들도 서로 깊은 연관이 되어 만나며그 모든 사건들 또한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일어난다.모두가 그럴만한 인연 따라 정확한 필요에 의해 일어난다.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필요를 가지고 그 자리에 그렇게 진리로써 여여하게 있는 것이다.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전체로써의 하나’인 법계의 진리 인연으로 그 자리에 진여로써 있는 것이다.산하대지현진광(山河大地現眞光)이란 말처럼 산하대지 모든 것이 참 진리 빛의 나툼이요,‘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쓰일 곳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처럼모든 존재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법계의 진리의 사명을 띄고 그 자리에 존재한다.모든 일, 모든 사건도 마찬가지다.우리 삶의 그 어떤 일이나 사건도 분명..
순백의 서리꽃..상고대 사람들 중에는 말과 표정과 몸가진 전체로, 밝게 빛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 받는다. 설사 초청받지 않은 자리라도 마치 겨울의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환영 받는다. 초청받은 사라이다도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언젠가는 사람들이 싫어한다. 사람이 우울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밝은 사람에게는 행운이 따라붙고 어두운 사람에게는 불운이 따라 붙는다.
사대가 오온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물론 옳고 바르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시주를 하든 보시를 하든 공양을 하든 봉사를 하든 어떤 일을 하든지 조건 없이 해야 하고,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 없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없이 삼륜(三輪)이 청정한 일을 해야 한다.일을 할 때 첫 번째의 근본은 발심해서 하는 것, 두 번째는 상대가 원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세 번째는 가르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례로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은 아직 낯설고 인연 맺지 못한 불자들을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부처님 품 안에 들어오게 하고, 궁극에는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분들이 모범을 보이고 솔선해야 불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환한 미소와 신심 깊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도량을 아..
불교 인연이란! 불교는 부처님 법을 만나는 인연으로 시작하게 된다. 이 인연을 부처님과의 인연이라 하여 불연(佛緣)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생겨나고 인연에 의해서 관계가 맺어진다. 인연이 무엇인가? 인(因)과 연(緣)으로 나누어 말하면 인은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고 연은 간접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꽃이 피었다 할 때 꽃이 핀 것이 인연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데 이 꽃이 애초에 씨앗이 땅속에 묻혀 있다 발아하여 싹이 트고 점점 자라서 꽃이 피게 된 과정이 있다. 다시 말해 꽃이 핀 것은 씨앗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씨앗이 발아하여 싹을 틔어 자라는 동안 성장할 수 있는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흙속에 수분을 필요로 하고 공기나 햇빛을 ..
무 상 수행자가 아닌 시주들은 정신적인 영역은 누구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禪의 세계이기에그 보이지 않는 선의 힘이기 때문이지요산중에서 일상으로 격는 인간적인 담백함으로 다가오는 대자연의 시간은때로는 홀로 남는다는 것그것이 沙門(사문)삶인 것 같아 아련히 서글픔에 격기도 잠시차라리 所有(소유) 모습이 그려진다네가끔 看經(간경) 벽을 향해 火頭를 챙기는 나 자신을 볼 때면 결코 느슨히 할 수 없는 게 수행자의 참모습으로 가닥이 안 잡힐 때 내 가슴은 섬뜩해 하여, 쉽게 안일 속에 안주하려 드는구나 하는   따스한 아래목 방구들짝 생각에 눕고 싶픈 몸이 잠이 쏟아지면,눈을 이불 삼아 잘 정도로 혼침이 온다는 마장과의 싸움 이겨내려는 수행자의 자세산중숲은 늘 비어 있다. 絢爛(현란)으나 열림을 위해 긴 침묵의 시간..
현세의 불행은 지난 생의 빚 갚기! 현재의 삶은 나의 조상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전생의 나의 업이 오늘의 내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것입니다.전생에 맺어 놓은 응어리와 전생의 빚덩이 때문입니다.전생에 몸과 말과 생각으로 저절로 놓은 응어리를 풀고 빚을 갚느라고 힘든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그 응어리는 부지런히 기도하고 염불 하면 반드시 풀립니다. 그때는 모든 불행이나 우환이 저절로 사라집니다.부디 불행에 대한 한 생각을 잘 가져서 빚을 갚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삶을 개척하기 바랍니다.불행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해서 무시할 수도 없고 고통을 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그럼 어떻게 해야 지난 생의 빚을 모두 갚고 편안한 나날을 살 수 있을까요?전생에 맺은 원결이 크면 클수록 불행은 커지고, 불행이 크면 참회도 간절히 정성을 다 ..
사람들아!!! 남의 허물 꾸짖기 좋아하지 말고 스스로 내 잘못을 되살펴 보라, 만일 이를 알고 이와 같이 행한다면 근심, 다툼이 영원히 사라진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그 행복은 얻을 수 있는 것인가요?이 문제는 아마도 인류시원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그러나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그 해답을 찾기 위하여 사람들은 많은 일을 꾀해왔고 그 결과물이 우리가 맞이한 오늘의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삶에 대한 욕망과 환상!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보다 밝은 내일을 욕망하는 것은 비단 인간뿐만이 아닙니다.이웃집 강아지도 그러하고 밀림의 맹수도, 개천의 물벌레도 마찬가지지요. 그뿐 아니라 한 알의 씨알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긴 가뭄과 장마를 견뎌내는 (오만스러운 인간들에 의하여 억울하..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반반쯤 있는 세계, 기쁨도 반쯤 슬픔도 반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선악도 반반쯤 뒤엉켜 있다고 해서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영 못 살 세상도 아니고 영 극락도 아니라서, 반쯤은 살 만하고 반쯤은 힘들고 어렵습니다.그래서 경봉 스님은 “참을 인忍 자 세 개를 항상 이마에 붙이고 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제일 참기 힘든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나쁜 것이 오면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생각하면서 이것이 지나가면 좋은 날이 온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을 수가 있는데, 좋은 것은 참기가 힘들어요. 음식도 맛있다고 많이 먹으면 문제가 생겨서, 그것 말고도 좋은 것이야 참 많지요. 좋은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하고, 나쁜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이치가 어디든지 끼리..
자신이 구정물통이라는 것을.... 업장소멸(業障消滅)을 위해눈 밝은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이 몸은 돌아다니는 변소요 구정 물통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실로 그러하다. 아무리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화장을 했다고 해도 알고 보면 추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 우리의 몸뚱이이다.가죽 피대 속에는 피와 고름과 때와 똥오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뿐인가? 제 마음에 맞으면 탐욕심을 내고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성을 내며, 탐하고 성내다 보니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여 시기, 질투, 아만, 방일등 수많은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나아가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까지 곁들이고 있으니이러다 보니 우리의 마음 그릇은 완전히 구정 물통이 되고 말았다. 본래 깨끗하고 천진했던 항아리에 쓰레기 찌꺼기도 담고 쉰 밥도 담고 고기 뼈다귀도 담고온갖 찌..
대자연의 아름다운 미소에 나를 본다~~~ ‘분별심을 버려라’반대로 ‘분별해라’는 표현은 접하기가 극히 드물 것이다.같은 ‘분별’인데도 무언가 극명한 대조적 느낌이 온다.이것은 불교술어의 한역상의 결과물이다.원어상 별개임에도 같은 한자를 역어로 채택함으로써 또다른 면을 보지 못한 채 지나가곤 한다.상상의 날개로 차별 부정적 뉘앙스를 갖는,우리들이 버려야하는 ‘분별(分別)’은 ‘차별하는 것’ ‘상상하는 것’ 등의 의미가 있다.정확하게는 ‘허망분별’이라 해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앞글자를 빼고 그냥 ‘분별’로 사용한다.사유(思惟)나 계탁(計度)으로도 한역되는 위깔빠는 사유양탁한다는 의미로,곧 마음과 마음작용이 대상에 대해 작용을 일으킬 때그 상을 취해 생각해 헤아리는 것이다.상(相)을 취하기 때문이다모든 잡염하거나 청정한 마음과 그 마음작용을 모두 분..
참다운 공양이란! 불교는 곧 자비의 가르침이잖아요. 불교의 자비는 자아완성의 실현에서 오는 수행의 단계로 절대 사랑이며 평등의 사랑입니다. 만유(萬有)가 동체(同體) 임을 깨닫고 자기 몸을 보살피듯 하는 사랑입니다. 출가 전에는 자비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 것 아깝다는 생각 않고 내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행했으니 부처님 제자가 될 종자가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자비로워야 합니다. 요즘은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해서인지 불자들까지도 조금치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남을 배려하거나 양보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자기 것을 나눠줄 생각은커녕 마음에서도 여유가 없어 딱합니다.그러나 자비의 마음은 자기 수행을 위한 진실적 마음의 표출인 것입니다. 남에게 한..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현재 사람의 몸을 받아 살고 있는 나는 누구입니까?우리는 아득한 옛적부터 수많은 몸을 받으며 윤회를 거듭해 왔습니다.수백 생 벌레로 살았다가 수천 번 짐승이 되었다가 수만 번 남자로 혹은 여자로부모로 자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무수한 생애를 통하여 갖가지 버릇, 갖가지 용심(用心)을 키우며 살았습니다.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입니까?수많은 생애동안 익혔던 버릇과 용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나"입니다.따라서 지금의 "나"에게는 벌레 때의 행동도 터져 나오고, 짐승 시절의 버릇도 터져 나옵니다.인간으로 살면서 얽히고 설키고 가슴에 숯이 박히고, 서로 해치고 못살게 굴었던 행동과 마음 씀씀이가수시로 바깥으로 표출됩니다.겉모습만 지금의 모습과 같은 사람의 가죽을 덮어..
더불어 함께사는 존재 평생을 빚쟁이로 살지 않으려거든, 물 한 모금 마시고 밥 한 술 떠 넣으면서도 더불어 먹고 더불어 감사해야 하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일부러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하는 생각을 지어서 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깊이 감사하는 마음과 믿음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모든 행동이 일체 중생, 일체제불과 같이 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그대로 회향이 된다. 아침에 국가의 은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베푸는 이의 은혜, 좋은 벗의 은혜를 명심하여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데 어찌 그 다섯뿐이겠는가. 이웃의 은혜, 땅의 은혜, 물, 바람, 불의 은혜등 어느 것 하나라도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 하나 잘 나서 독불장군이라 할..
아전인수 잔리에 사무치면!현대 사조(思潮)는 여러 갈래로 다원적이고 다양한 문화현상들이 하나의 도리, 나의 근본 체성(體性)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어느 분야에서나 모두가 다 개방적이고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하나의 진리, 포괄적인 본체로 나아가고 있다. 상(相)에서 체(體)로 또는 분열(分裂)에서 화합(和合)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 따라서 이런 시대를 맞이하여 불교도 내 종파 네 종파의 편견에서 벗어나 불법의 근본이자 우주의 법칙인 반야바라밀로 돌아가는 것이 절실한 때입니다.부처님의 가르침도 여러 가지 방편이 있는 것인데 우주 자체가 무량무변한 진여불성이므로 불성을 깨닫는 대도(大道)에는 문이 따로 없는 것,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무엇이 조주입니까’하고 법을 물으니까 ‘동문(東..
본래 무일물 부처님 법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불진언 언불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라. ‘글로써 말을 다 할 수 없고, 말로써 뜻을 다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부처님 법이 그렇습니다. 어찌 글로, 말로 다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 법은 ‘불가시 불가설 비사량분별지소능해 (不可示 不可說 非思量分別之所能解)’라 했다. 보여줄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니 사량분별로 헤아려 풀 바가 아니라는 것 에는 그 깊고 깊은 불법의 이치가 다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을 보면 부처님 법이 보인다. 부처님 법이 들립니다. 방편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이치를 알게 해 준다. 대한민국이라는 말에 산하가 다 포함돼 있듯이 에는 일체 경의 진리가 다 들어있다. 법화경> 그러니 경 제목만 계속 염송해..
山中 孤獨! 찾아 오는이 없기에 기다리는 이 없는 법이 머무고외롭고 험한 산길을 오르면 어김없이 오롯이 앉은 암자를 만난다산새 소리만 찾아드는 산중에서 다툼과 분별이 끊긴 자리....깨달음에 공덕을 구하겠다는 다짐이다 햇살 드는 법당 마루에 앉아 멀리 구름 너머를 바라보며 온 산줄기가달려온다 해도 그저 묵언으로 정진에 하루를 보낸다 산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영봉들 높디높은 영봉들을 호령한다 겨울산 봉우리마다 하얀 눈꽃을 뽐내겠지만 산 아래 사바는 온통 고통으로 가득한 세간 일 뿐이다   봄볕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눈 쌓인 산줄기와 얼어붙은 논두렁이 어찌다를 수 있으랴!그러나 아직은 산등의 추위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릴 뿐이다  푸른 대나무 숲에 호위를 받으며 솟구쳐 오르는 전나무는 한그루속세를 벗..
서두르고 시비하세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하루하루의 삶을 떠나서 달리 구해야 할 도는 없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함부로 입에 올리기에는 아득히 높은 경지인 것이다. 일상 그대로가 도(道)에 계합(契合)하는 도리를, 범부의 세치 혀에 쉽게 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매력적이다. 갑남을녀들의 일상도 절대 경지의 체현일 수 있다는, 삶 그 자체에 대한 이보다 더 큰 긍정은 달리 듣고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비루한 삶까지 도(道) 일 수는 없다. 여기에 바로 일상의 삶이 버거운 중생의 고뇌가 있다. 어떤 삶이 ‘도’가 되는 삶일까?  그러나 그러한 삶을 만나면,  참으로 좋은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 시인이나 화가가 아니더라도 소나기에 씻긴 저녁 하늘을 물들인 노을의 장엄에 감동할 수 있는 것과..
莊嚴한 法의 世界 티끌만큼의 분별도 버리고 이 문에 들어라,  천재적인 문장가이자 크게 깨침을 얻으신 ‘소동파’라는 분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부처의 설법인데, 저 푸른 산이 어찌 법신부처의 몸이 아니랴 (溪聲便是長廣舌 山色豈非淸淨身)’라고 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시끄럽고 듣기 싫은 물소리인데 깨치고 나니까 부처님 말씀처럼 들리며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묘한 자연의 모습이 바로 부처라는 뜻입니다. 만고에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도 부처님의 법을 설하고 있으며 시주님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오손도손하게 살고 있는 집이 진정한 불국토(佛國土)라는 것입니다. 이 법계(法界)의 모든 것이 바로 부처요, 부처님의 법문이고 달마대사가 서쪽으로 온 뜻입니다. 그것은 물을 마신사람만이 물의 도움을 알듯이 깨달은 사람만이 오직 느낄 ..
남과 이웃을 위하여 날마다 기도하세요! 첫째,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이 진실한 것이어야 하고 내 영육으로 간절한 것이어야 하며 내 마음에서 분노, 미움, 원망, 짜증이전혀 없어야 합니다.둘째, 마음에 평화와 평정과 청정이 있어야 하고 이성과 감정으로는 불화가 없어지지 않기에 혼을 바쳐야 합니다.셋째, 내가 구하고 원하는 것이 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과 세상에 이익과 평화와 안락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기도는 이 세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구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진실하면 화나는 일이 너무 많고, 내가 화를안내면 거짓된 경우가 너무 많으며 내가 화도 안 나고 진실하면 대부분 나만을 위한 기도인 것이 대부분입니다.대부분은 이 세가지 중에 하나가 안 맞아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지요. 그러니 이것을 잘 보고 기도하세요.열심히 ..
익어가는 가을의 정취 나도 없고 너도 없고!!!이제는 '내가 너를 통해서 기쁨을 얻었다'라는 의미가 아니고,'삶이 기쁨 그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어느 순간 보니까 산과 내가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산이 봄과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봄 속에서 느껴지는 사계의 전체의 기운과나의 기운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그와 같은 것의 경험을 지(智)라고 하며,우리 삶의 닫힌 마음을 여는 순간입니다.여는 순간 지(智)에는 능소(能所)가 없습니다〔無我〕.이때에 유식에 주(住)한다고 하며 식장(識場)을 경험하는 것입니다.식(識)이라고 하는 말의 근본은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일어나는 하나 된 앎의 장입니다.그런데 이 앎이 있기까지는 '내가 너를 안다,내가 추움을 안다, 내가 더움을 안다', 이런 식으로 진..
법계가 본래 평등함을 아는 실천인데! 본래 언제나 가운데 머물러도 마음은 항상 평등 (평상심)할 지어다, 사랑 버리고 어버이 떠난 것은 법계 평등 그것이라, 만약 친밀하고 소원함(성김)이 있다면 마음으로 평등치 못한 것이다. 마음 가운데 만약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몸에 어찌 괴로움과 즐거움의 성하고 쇠함이 있겠나 평등한 성품 가운데는 너와 나가 따로 없고, 둥글고 큰 지혜의 자리엔 가깝고 멀고 가 끊어졌다.(뚜렷이 밝은 마음자리엔 너·나의 차별 없어 둘 아니게 평등하고 여여하다) 삼악도를 드나듦은(마음이) 미움과 사랑에 얽힌 바(까닭) 요. 육도를 오르 내림은 친소 차별 업에 묶인 탓이다. 마음 평등한 자리에 계합하면 본래 취하고 버릴 것이 없다.만약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생사가 어찌 있으리오. 위 없는 보리도 이..
晩秋 불자들이 나누는 인사말에 ‘여여하셨습니까?’한자로 말하면 같을 여(如)로 ‘한결같으냐’란 의미입니다. 즉 변하지 않고 속되지 않게 부처님께 귀의한 그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느냐란 인사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여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여심을 흩뜨리는 것이 산란심(散亂心)입니다. 산란심에는 7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초기경전 범어본에 의하면 첫째 브야디(vyadhi)로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질병입니다. 이번 캘리포니아주 묻지 마 범행도 이런 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범인에 의해서 저질러졌습니다. 둘째는 스티아나(styana)로 마음은 있어도 행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말합니다. 셋째는 삼사야(samsaya)로 어떠한 의혹이나 우유부단을 일컫습니다. 넷째는 프라마다(pramad..
장엄하게 펄처진 진 대자연의 보물들... 우리들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자기의 적은 무감각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 “무감각입니다. 꽃을 보고도 달을 보고도 진실한 감응을 하지 못하는 무감각이 가장 큰 적입니다.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감성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축생에 가까운 무감각이 이 시대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월드컵이 열립니다. 한 골을 넣으면 모든 사람들이 짜릿한 흥분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뒤에 뭐가 있습니까.” 무감각은 인간을 물질화시킬 뿐만 아니라 폭력화시킨다. 욕망의 최대치를 끌어올린 동물적 삶의 끝은 언제나 ‘허무’를 동반한다. 현대인들의 정신적 공동화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앞선 눈 밝은 스님들은 감수성이 풍부했습니다. 대부분 사람의 죽음을 보고 출가했을 만큼 풍부한 감..
익어가는 가을날.... 가을이 빠르게덧없이 떠나가네요가지 마라 잡고 싶은데..빨리 걸어도 천천히 걸어도주어진 세월의 시간은 같아요늘 생각 속에 있는 그 사람깊어가는 가을날, 멋진 날 되세요^)^  일체가 다 극락이다!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1차적 원인은 무지와 오해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무지와 오해에 근거한 사고와 삶의 태도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 결과는 모순과 혼란을 재생산해 내고 되풀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되는 내용은, 한마디로 모든 문제의 원인은 무지와 오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기에 무지와 오해를 풀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를 제일 첫 구절에서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으로 말합니다. 오온이 텅 비어 있음을 꿰뚫어 보면 일체 고난과..
분별심 여래의 말은 분별심 치료하는 방면!다만 세간의 일은 헛된 환상일 究竟法 [구경법]이 아님을 알아서 마음을 이 禪門 [선문]으로 돌려 지혜의 물로써 더러운 때를 씻어내고 스스로 깨끗하게 머물며, 단칼에 끊어버려서 다시는 헛된 환상을 이어가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나 앞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헛된 환상이라고 하면, 업을 지을 때도 환상이고 과보를 받을 때도 환상이며. 깨달을 때도 환상이고 어리석을 때도 환상이며,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가 환상이니, 이제 이러한 잘못을 알았다면 환상의 약으로 다시 환상의 병을 것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병이 나아 약을 치우면 여전히 다만 옛날 그 사람일 뿐입니다. 만약 따로 사람이 있고 法 [법]이 있다면 이것으로 삿된 외도의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선의 공부란 이..
올 바른길 이 한마디 속에 불교 대의와 선적 삶이 다 들어있습니다. 보리자성은 우리에게 깨달음의 자리, 참마음의 자리를 말합니다. 참 마음은 도를 닦고 참선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청정하다는 말입니다. 청정하다는 말은 모든 번뇌망상이 본래부터 없어 자아가 텅 비어 버린 그러한 성품자리를 말합니다.또한 텅 비었지만 일체 공론이 원만하게 구족 돼 있는 그런 자리입니다. 이를 일러서 보리자성이 본자청정 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었다는 부정 속에 구족 했다는 긍정이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부정과 동시에 긍정이고, 긍정과 동시에 부정인 존재의 원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단용차심 하면 직료성불하리라. 이와 같은 참마음(보리자성 본자청심)으로 살게 되면 곧바로 깨달음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먼 훗날..
세월과 함께한 아름다운 스케치 인적이 끊긴 산방매미소리 시원스리 청량하게 울어대지만외로운 정적만이수행자을 반기는 구나 적막강산에 찾아주는이 없어도묵언의 세계에서 한마음 오롯이 살아있네 지금까지 쫒기듯 살아온세월을 잠시 뒤돌아 보게한다 가만히 가만히세월 베게 길게 누운 구름도빨갛게 저녁 노을에 물들어 아름답게 수놓을때면가슴에 바람타고 들어서는 그대의 묵향 수행자 뜰에 여울지네^)^
장엄하게 펼쳐진 세상 꾸밈없이 보라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을 상대에게 어떻게 보여야 할지 고민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신을 과장해 어필해 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겸손한 이미지로 자신을 소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내가 꾸며 연출한 대로 나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만남이 빈번해도 거리감이 더욱 커져 당혹스럽던 경험이 저마다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자세입니다. 꾸밈과 거짓 없이 나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나를 홍보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입니다.  일례로 〈전등록〉에 나오는 공안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설봉의존이 동산양개의 문하에서 밥을 짓는 소임을 볼 때였습니다. 하루는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고 있는데 동산화상이 물었습니다.“그대는 쌀을 씻으면서 모래를 골라내서 버리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