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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緣의한 緣起法 승려가 겪는 여러 인연들 사이의 고민과 번민을 표현한, 인연들에 의해 생겨난 무수한 일들이윤회가 되어 다시금 그 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선(禪)적으로 말하다.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인연(因緣)의 생기에 의한 연기법(緣起法)으로 논한다.씨앗이 좋은 땅을 만나면!!!뿌리와 줄기가 잘 자라듯이 사람도 좋은 인연을 만나야 공덕을 이룰 수 있다.씨앗이 나쁜 땅에 심어지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만약 지혜가 있어 사리를 잘 생각해 헤아리면 온갖 법이 마음 땅에 자라나지만어리석어 지혜가 없으면 법을 알 수가 없다.그러므로 좋은 인연을 만나 바른 법을 부지런히 익혀야 한다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멸하면 이것이 멸하는그러한 관계성에서 우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정교하게 이어진 인연의 사슬로 이어진 채 함께..
향기로운 글 업을 뛰어넘으라!불교에서는 운명이나 숙명 대신에 스스로의 삶을 나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인과(因果), 업보(業報) 론에기초하고 있다. 누구나 물론 전생의 업인(業因)에 따라 자기만의 삶의 모습을 갖고 태어난다.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살 것인지, 어느 정도의 학벌과 능력과 외모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얼마 정도의 행복을 누리다가 언제쯤 죽게 될 것인지에 대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어느 정도 정해진 업력(業力)을 받고 태어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떤 배우자를 만날 것인지, 어느 정도의 대학이나학벌을 가지게 될 것인지, 어떤 회사에 취직하여 어느 정도까지 진급을 하게 될 것인지, 어떤 인연을 만나서 그들에게어떤 도움을 받게 될 것인지, 언제 어떤 병이나 사고로 얼마만큼 고통을..
온통 눈 세상, 발이 꽁 마음을 떠나 어찌 부처를 찾으랴!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불타는 집과 같은데 어찌하여 그대로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을 것인가.윤회를 면하고자 하면 부처를 찾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부처는 곧 이 마음인데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으랴.마음은 이 몸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은 거짓이라서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지만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없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온몸은 무너지고 흩어져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지만 한 물건은 언제나 신령스러워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고 하였다.삼계화택에서는 본래 청정한 마음이 경계를 따라 한없이 유전하다가 꼬일 데로 꼬인 모습이 탐진치 삼독으로 인한 불타는 집과 같은 상황에 비유하고 있다. 세상은 끝없이 무상을 설하고 생사의 불길이 걷잡을 ..
地藏菩薩本願經(지장보살본원경) 상세설명!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어떻게 하여 지옥(地獄)에서 고통받는 중생(衆生)을 건져 주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지장보살의 여러 가지 전생 이야기와, 지옥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지, 또 지옥에서 겪는 고통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여러 부처님의 이름, 즉 불명호를 부르는 것이 중생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이익이 되는지,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자신의 사후 미륵이 이 땅에 올 때 까지 지장보살에게 중생들을 맡기니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忉利天宮神通品 [第一]도리천궁신통품 제일 부처님께서 도리천궁에서 어머님을 위해 설법을 하시면서 큰 신통을 나타내 보임如是我聞.여시아문.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一時 佛 在忉利天 爲母說法 爾時 十方無量世界不可說 不可..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이제는 '내가 너를 통해서 기쁨을 얻었다'라는 의미가 아니고,'삶이 기쁨 그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어느 순간 보니까 산과 내가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산이 봄과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봄 속에서 느껴지는 사계의 전체의 기운과 나의 기운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그와 같은 것의 경험을 지(智)라고 하며, 우리 삶의 닫힌 마음을 여는 순간입니다.여는 순간 지(智)에는 능소(能所)가 없습니다〔無我〕.이때에 유식에 주(住)한다고 하며 식장(識場)을 경험하는 것입니다.식(識)이라고 하는 말의 근본은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 된 앎의 장입니다.그런데 이 앎이 있기까지는 '내가 너를 안다, 내가 추움을 안다, 내가 더움을 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그런데 ..
嚴冬雪寒! 팔랑개비 삶!모두 다 떠돌이 世上살이 더러 외로운 날들엔 누구를 기다릴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서툴기만 한 世上인데 맨몸으로 버틴 삶이 서러워 괜스레 눈물을 흘리고 生이 고달파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모두 다 제멋에 취해 우정이나 사랑으로 멋진 포장을 해도 때로는 서로의 필요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들 텅 빈 가슴은 생채기가 찢어지도록 아프다.만나면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데도 생각하면 더 눈물만 나는 世上살이가슴을 열고 욕심도 없이 사심도 없이 같이 웃고 울어줄 그 누가 있을런가? 인파 속을 헤치며 슬픔에 젖은 몸으로 홀로 웃어도 보고 흐느껴 울며 생각도 해보았지만살면서 살아가면서 몹시도 외로운 날들엔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다.그러나 산에 오르면 무상을 즐기며돌아올 땐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고개..
沈默 침묵은 과묵한 나무처럼 큰 힘을 지닐 수 있는 근본이 되기도 합니다.그래서 부처님은 침묵을 ‘성스러운’이란 수식어를 붙여 때로는침묵이 얼마나 소중한 처신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나라 속담처럼 ‘침묵은 금’이라는 말과도 상통합니다.시시비비를 가릴 때나 진실을 밝혀낼 때 침묵이 효과를 배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예기치 않은 말로 오히려 시시비비 논쟁이 더 불거지고 걷잡을 수 없는 악화일로의 상황을 부르는 경우를여러분은 적지 않게 경험했을 것입니다.불가에 ‘묵빈대처()’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해치고 악의적인 말로 음해하는 세력에 대해 침묵으로 대처한다.살기가 담겨 있는 말을 말로써 대응하면 물리력이 동원되고 급기야 감정이 폭발하게 되므로 이를 삼가는 방법으로 침묵이 유용하다는 판단에서 나왔..
망념! 수행이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잘 되지 않습니다. 구름 끼고 눈이 오려고 하면 몸이 말을 듣질 않죠. 이런 때는 수행이 잘 되지 않는데 억지로 하지 말고 한숨 푹 잔다든지, 기분전환을 하고 해야 됩니다. 수행이 잘 되다 안될 때, "왜 안되지?"하고 안 되는 것에 빠지지 말아야합니다. 꿈꾸고 나서 무슨 꿈인가? 하고 이런 꿈은 도대체 왜 꿀까? 이리저리 궁리하지 마세요.수행이 잘 안되면 분명히 복이 부족해서 그러므로 주변 청소라도 하고, 수행을 해보면 잘 됩니다. 복이 모자라면 수행이 잘 안 됩니다.복이 모자라는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도 일이 잘 안 됩니다. 특히 수행자는 수행하고자 하는 의욕에 비례해서 복이 모자랄 가능성이 많으므로 복[덕]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항상 복을 동시에 지으면서 수행애..
베풀면 베푼만큼 불어서 돌아와! 나라 살리는 힘도 내 안에 있다. 아픈 사람 보고 마음 내는 것도 보살행-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좀 더 지혜를 넓히고, 마음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걸림 없이 돌아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불교다 하면 어렵게만 생각하시고 머리 깎은 사람만 하는 공부인 줄 아시는데 그게 아닙니다.일체 세계, 우주 전체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불교죠. 살아있는 생명의 근본이 ‘불’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이 바로 ‘교’인 것입니다. 풀 한 포기만 살아있어도 불교인데 네 종교 내 종교 따지는 것은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죠. 모두를 포함한 것이 바로 불교인데 말입니다.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마음의 폭이 넓어지고 또 한마음이라는 그 자체는 그냥 송두리째 진리로서 초월해서 돌아가는구나 하는 것을 뚜렷하게 아시게..
無處所 묘한 진리의 체는 원래의 처소가 없어 어디에는 진리가 있고, 어디에는 진리가 없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참 불교의 진리는 천상천하 두두물물이 묘체 아님이 없어 전부가 다 어느 곳, 어느 때를 막론하고 진리의체는 이 허공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온갖생각이 퍼 일어나는데 그 한량없는 생각을 바로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은 그 체가 공한것입니다.그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그 본체는 무엇이냐 하면 공이거든요.확실히 그 생각의 본체가 진공이라고 하는 사실을 요달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입니다.그래서 그 공적의 이치를 이미 깨달아 버리면 실로 한 중생도 제도받은 자가 없습니다.이것이 바로 이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인것, 자성 중생이거든. 자성중생서원도요!한량없는 모습으로 ..
불교애서 말하는 인과는! 불교애서 말하는 인과는!업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기본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전생에 지은 업에 의해서 후생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생에 짓는 업을 내생에 받는다고 해야 맞다.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중생은 각자 생전에 지은 행위에 따라서 윤회를 합니다.이렇게 각자가 짓는 행위를 업이라고 합니다. 이 업에는 선업과 악업이 있습니다.선업이란 좋은 행위이고, 악업이란 악한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업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이것을 인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선한 행위에는 선한 과보가 따르고, 악한 행위에는 악한 과보가 따른다고 합니다.과보를 받는 것은 업에 따라서 금생에 받기고 하고, 혹은 내생에 받기도 합니다.또는 그다음 생에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 업이 어..
일체만물은 한몸 남을 해칠수 없어요 너와 나 관계없다 생각할 때 ‘악’ 싹터  一切男子가 是我父요 一切女子가 是我母로다 故로 六道衆生이 皆是我父母로다. 모든 남자가 나의 아버지요 모든 여자가 나의 어머니로다 그러므로 육도의 중생이 모두 나의 어버 이로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의 말씀이지요. 일체중생이 내 아버지 어머니요, 형제 동생이 된다는 이 말씀은 ‘내 혈통’ ‘너의 혈통’이 아무 의미 없는 구분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金가니 李가니 朴가니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기에 편하도록 인위적으로 姓을 갈라놓은 결과일 뿐이에요. 근원적으로는 혈통의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인해 잠시 어머니 뱃속을 빌어 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어머니가 낳고 싶어 낳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만물이..
인연 존재와 실상 어떤 존재도, 어떤 사건도 따로 떨어져 일어나지 않는다.그 모든 존재며 생명들도 서로 깊은 연관이 되어 만나며그 모든 사건들 또한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일어난다.모두가 그럴만한 인연 따라 정확한 필요에 의해 일어난다.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필요를 가지고 그 자리에 그렇게 진리로써 여여하게 있는 것이다.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전체로써의 하나’인 법계의 진리 인연으로 그 자리에 진여로써 있는 것이다.산하대지현진광(山河大地現眞光)이란 말처럼 산하대지 모든 것이 참 진리 빛의 나툼이요,‘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쓰일 곳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처럼모든 존재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법계의 진리의 사명을 띄고 그 자리에 존재한다.모든 일, 모든 사건도 마찬가지다.우리 삶의 그 어떤 일이나 사건도 분명..
순백의 서리꽃..상고대 사람들 중에는 말과 표정과 몸가진 전체로, 밝게 빛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 받는다. 설사 초청받지 않은 자리라도 마치 겨울의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환영 받는다. 초청받은 사라이다도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언젠가는 사람들이 싫어한다. 사람이 우울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밝은 사람에게는 행운이 따라붙고 어두운 사람에게는 불운이 따라 붙는다.
사대가 오온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물론 옳고 바르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시주를 하든 보시를 하든 공양을 하든 봉사를 하든 어떤 일을 하든지 조건 없이 해야 하고,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 없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없이 삼륜(三輪)이 청정한 일을 해야 한다.일을 할 때 첫 번째의 근본은 발심해서 하는 것, 두 번째는 상대가 원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세 번째는 가르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례로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은 아직 낯설고 인연 맺지 못한 불자들을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부처님 품 안에 들어오게 하고, 궁극에는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분들이 모범을 보이고 솔선해야 불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환한 미소와 신심 깊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도량을 아..
불교 인연이란! 불교는 부처님 법을 만나는 인연으로 시작하게 된다. 이 인연을 부처님과의 인연이라 하여 불연(佛緣)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생겨나고 인연에 의해서 관계가 맺어진다. 인연이 무엇인가? 인(因)과 연(緣)으로 나누어 말하면 인은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고 연은 간접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꽃이 피었다 할 때 꽃이 핀 것이 인연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데 이 꽃이 애초에 씨앗이 땅속에 묻혀 있다 발아하여 싹이 트고 점점 자라서 꽃이 피게 된 과정이 있다. 다시 말해 꽃이 핀 것은 씨앗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씨앗이 발아하여 싹을 틔어 자라는 동안 성장할 수 있는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흙속에 수분을 필요로 하고 공기나 햇빛을 ..
무 상 수행자가 아닌 시주들은 정신적인 영역은 누구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禪의 세계이기에그 보이지 않는 선의 힘이기 때문이지요산중에서 일상으로 격는 인간적인 담백함으로 다가오는 대자연의 시간은때로는 홀로 남는다는 것그것이 沙門(사문)삶인 것 같아 아련히 서글픔에 격기도 잠시차라리 所有(소유) 모습이 그려진다네가끔 看經(간경) 벽을 향해 火頭를 챙기는 나 자신을 볼 때면 결코 느슨히 할 수 없는 게 수행자의 참모습으로 가닥이 안 잡힐 때 내 가슴은 섬뜩해 하여, 쉽게 안일 속에 안주하려 드는구나 하는   따스한 아래목 방구들짝 생각에 눕고 싶픈 몸이 잠이 쏟아지면,눈을 이불 삼아 잘 정도로 혼침이 온다는 마장과의 싸움 이겨내려는 수행자의 자세산중숲은 늘 비어 있다. 絢爛(현란)으나 열림을 위해 긴 침묵의 시간..
사람들아!!! 남의 허물 꾸짖기 좋아하지 말고 스스로 내 잘못을 되살펴 보라, 만일 이를 알고 이와 같이 행한다면 근심, 다툼이 영원히 사라진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그 행복은 얻을 수 있는 것인가요?이 문제는 아마도 인류시원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그러나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그 해답을 찾기 위하여 사람들은 많은 일을 꾀해왔고 그 결과물이 우리가 맞이한 오늘의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삶에 대한 욕망과 환상!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보다 밝은 내일을 욕망하는 것은 비단 인간뿐만이 아닙니다.이웃집 강아지도 그러하고 밀림의 맹수도, 개천의 물벌레도 마찬가지지요. 그뿐 아니라 한 알의 씨알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긴 가뭄과 장마를 견뎌내는 (오만스러운 인간들에 의하여 억울하..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반반쯤 있는 세계, 기쁨도 반쯤 슬픔도 반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선악도 반반쯤 뒤엉켜 있다고 해서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영 못 살 세상도 아니고 영 극락도 아니라서, 반쯤은 살 만하고 반쯤은 힘들고 어렵습니다.그래서 경봉 스님은 “참을 인忍 자 세 개를 항상 이마에 붙이고 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제일 참기 힘든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나쁜 것이 오면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생각하면서 이것이 지나가면 좋은 날이 온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을 수가 있는데, 좋은 것은 참기가 힘들어요. 음식도 맛있다고 많이 먹으면 문제가 생겨서, 그것 말고도 좋은 것이야 참 많지요. 좋은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하고, 나쁜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이치가 어디든지 끼리..
대자연의 아름다운 미소에 나를 본다~~~ ‘분별심을 버려라’반대로 ‘분별해라’는 표현은 접하기가 극히 드물 것이다.같은 ‘분별’인데도 무언가 극명한 대조적 느낌이 온다.이것은 불교술어의 한역상의 결과물이다.원어상 별개임에도 같은 한자를 역어로 채택함으로써 또다른 면을 보지 못한 채 지나가곤 한다.상상의 날개로 차별 부정적 뉘앙스를 갖는,우리들이 버려야하는 ‘분별(分別)’은 ‘차별하는 것’ ‘상상하는 것’ 등의 의미가 있다.정확하게는 ‘허망분별’이라 해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앞글자를 빼고 그냥 ‘분별’로 사용한다.사유(思惟)나 계탁(計度)으로도 한역되는 위깔빠는 사유양탁한다는 의미로,곧 마음과 마음작용이 대상에 대해 작용을 일으킬 때그 상을 취해 생각해 헤아리는 것이다.상(相)을 취하기 때문이다모든 잡염하거나 청정한 마음과 그 마음작용을 모두 분..
참다운 공양이란! 불교는 곧 자비의 가르침이잖아요. 불교의 자비는 자아완성의 실현에서 오는 수행의 단계로 절대 사랑이며 평등의 사랑입니다. 만유(萬有)가 동체(同體) 임을 깨닫고 자기 몸을 보살피듯 하는 사랑입니다. 출가 전에는 자비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 것 아깝다는 생각 않고 내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행했으니 부처님 제자가 될 종자가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자비로워야 합니다. 요즘은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해서인지 불자들까지도 조금치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남을 배려하거나 양보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자기 것을 나눠줄 생각은커녕 마음에서도 여유가 없어 딱합니다.그러나 자비의 마음은 자기 수행을 위한 진실적 마음의 표출인 것입니다. 남에게 한..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현재 사람의 몸을 받아 살고 있는 나는 누구입니까?우리는 아득한 옛적부터 수많은 몸을 받으며 윤회를 거듭해 왔습니다.수백 생 벌레로 살았다가 수천 번 짐승이 되었다가 수만 번 남자로 혹은 여자로부모로 자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무수한 생애를 통하여 갖가지 버릇, 갖가지 용심(用心)을 키우며 살았습니다.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입니까?수많은 생애동안 익혔던 버릇과 용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나"입니다.따라서 지금의 "나"에게는 벌레 때의 행동도 터져 나오고, 짐승 시절의 버릇도 터져 나옵니다.인간으로 살면서 얽히고 설키고 가슴에 숯이 박히고, 서로 해치고 못살게 굴었던 행동과 마음 씀씀이가수시로 바깥으로 표출됩니다.겉모습만 지금의 모습과 같은 사람의 가죽을 덮어..
더불어 함께사는 존재 평생을 빚쟁이로 살지 않으려거든, 물 한 모금 마시고 밥 한 술 떠 넣으면서도 더불어 먹고 더불어 감사해야 하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일부러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하는 생각을 지어서 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깊이 감사하는 마음과 믿음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모든 행동이 일체 중생, 일체제불과 같이 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그대로 회향이 된다. 아침에 국가의 은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베푸는 이의 은혜, 좋은 벗의 은혜를 명심하여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데 어찌 그 다섯뿐이겠는가. 이웃의 은혜, 땅의 은혜, 물, 바람, 불의 은혜등 어느 것 하나라도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 하나 잘 나서 독불장군이라 할..
본래 무일물 부처님 법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불진언 언불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라. ‘글로써 말을 다 할 수 없고, 말로써 뜻을 다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부처님 법이 그렇습니다. 어찌 글로, 말로 다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 법은 ‘불가시 불가설 비사량분별지소능해 (不可示 不可說 非思量分別之所能解)’라 했다. 보여줄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니 사량분별로 헤아려 풀 바가 아니라는 것 에는 그 깊고 깊은 불법의 이치가 다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을 보면 부처님 법이 보인다. 부처님 법이 들립니다. 방편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이치를 알게 해 준다. 대한민국이라는 말에 산하가 다 포함돼 있듯이 에는 일체 경의 진리가 다 들어있다. 법화경> 그러니 경 제목만 계속 염송해..
山中 孤獨! 찾아 오는이 없기에 기다리는 이 없는 법이 머무고외롭고 험한 산길을 오르면 어김없이 오롯이 앉은 암자를 만난다산새 소리만 찾아드는 산중에서 다툼과 분별이 끊긴 자리....깨달음에 공덕을 구하겠다는 다짐이다 햇살 드는 법당 마루에 앉아 멀리 구름 너머를 바라보며 온 산줄기가달려온다 해도 그저 묵언으로 정진에 하루를 보낸다 산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영봉들 높디높은 영봉들을 호령한다 겨울산 봉우리마다 하얀 눈꽃을 뽐내겠지만 산 아래 사바는 온통 고통으로 가득한 세간 일 뿐이다   봄볕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눈 쌓인 산줄기와 얼어붙은 논두렁이 어찌다를 수 있으랴!그러나 아직은 산등의 추위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릴 뿐이다  푸른 대나무 숲에 호위를 받으며 솟구쳐 오르는 전나무는 한그루속세를 벗..
익어가는 가을의 정취 나도 없고 너도 없고!!!이제는 '내가 너를 통해서 기쁨을 얻었다'라는 의미가 아니고,'삶이 기쁨 그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어느 순간 보니까 산과 내가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산이 봄과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봄 속에서 느껴지는 사계의 전체의 기운과나의 기운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그와 같은 것의 경험을 지(智)라고 하며,우리 삶의 닫힌 마음을 여는 순간입니다.여는 순간 지(智)에는 능소(能所)가 없습니다〔無我〕.이때에 유식에 주(住)한다고 하며 식장(識場)을 경험하는 것입니다.식(識)이라고 하는 말의 근본은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일어나는 하나 된 앎의 장입니다.그런데 이 앎이 있기까지는 '내가 너를 안다,내가 추움을 안다, 내가 더움을 안다', 이런 식으로 진..
晩秋 불자들이 나누는 인사말에 ‘여여하셨습니까?’한자로 말하면 같을 여(如)로 ‘한결같으냐’란 의미입니다. 즉 변하지 않고 속되지 않게 부처님께 귀의한 그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느냐란 인사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여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여심을 흩뜨리는 것이 산란심(散亂心)입니다. 산란심에는 7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초기경전 범어본에 의하면 첫째 브야디(vyadhi)로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질병입니다. 이번 캘리포니아주 묻지 마 범행도 이런 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범인에 의해서 저질러졌습니다. 둘째는 스티아나(styana)로 마음은 있어도 행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말합니다. 셋째는 삼사야(samsaya)로 어떠한 의혹이나 우유부단을 일컫습니다. 넷째는 프라마다(pramad..
장엄하게 펄처진 진 대자연의 보물들... 우리들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자기의 적은 무감각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 “무감각입니다. 꽃을 보고도 달을 보고도 진실한 감응을 하지 못하는 무감각이 가장 큰 적입니다.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감성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축생에 가까운 무감각이 이 시대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월드컵이 열립니다. 한 골을 넣으면 모든 사람들이 짜릿한 흥분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뒤에 뭐가 있습니까.” 무감각은 인간을 물질화시킬 뿐만 아니라 폭력화시킨다. 욕망의 최대치를 끌어올린 동물적 삶의 끝은 언제나 ‘허무’를 동반한다. 현대인들의 정신적 공동화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앞선 눈 밝은 스님들은 감수성이 풍부했습니다. 대부분 사람의 죽음을 보고 출가했을 만큼 풍부한 감..
익어가는 가을날.... 가을이 빠르게덧없이 떠나가네요가지 마라 잡고 싶은데..빨리 걸어도 천천히 걸어도주어진 세월의 시간은 같아요늘 생각 속에 있는 그 사람깊어가는 가을날, 멋진 날 되세요^)^  일체가 다 극락이다!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1차적 원인은 무지와 오해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무지와 오해에 근거한 사고와 삶의 태도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 결과는 모순과 혼란을 재생산해 내고 되풀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되는 내용은, 한마디로 모든 문제의 원인은 무지와 오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기에 무지와 오해를 풀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를 제일 첫 구절에서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으로 말합니다. 오온이 텅 비어 있음을 꿰뚫어 보면 일체 고난과..
분별심 여래의 말은 분별심 치료하는 방면!다만 세간의 일은 헛된 환상일 究竟法 [구경법]이 아님을 알아서 마음을 이 禪門 [선문]으로 돌려 지혜의 물로써 더러운 때를 씻어내고 스스로 깨끗하게 머물며, 단칼에 끊어버려서 다시는 헛된 환상을 이어가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나 앞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헛된 환상이라고 하면, 업을 지을 때도 환상이고 과보를 받을 때도 환상이며. 깨달을 때도 환상이고 어리석을 때도 환상이며,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가 환상이니, 이제 이러한 잘못을 알았다면 환상의 약으로 다시 환상의 병을 것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병이 나아 약을 치우면 여전히 다만 옛날 그 사람일 뿐입니다. 만약 따로 사람이 있고 法 [법]이 있다면 이것으로 삿된 외도의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선의 공부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