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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없는 법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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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고 시비하세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하루하루의 삶을 떠나서 달리 구해야 할 도는 없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함부로 입에 올리기에는 아득히 높은 경지인 것이다. 일상 그대로가 도(道)에 계합(契合)하는 도리를, 범부의 세치 혀에 쉽게 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매력적이다. 갑남을녀들의 일상도 절대 경지의 체현일 수 있다는, 삶 그 자체에 대한 이보다 더 큰 긍정은 달리 듣고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비루한 삶까지 도(道) 일 수는 없다. 여기에 바로 일상의 삶이 버거운 중생의 고뇌가 있다. 어떤 삶이 ‘도’가 되는 삶일까? 그러나 그러한 삶을 만나면, 참으로 좋은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 시인이나 화가가 아니더라도 소나기에 씻긴 저녁 하늘을 물들인 노을의 장엄에 감동할 수 있는 것과 같..
수행자에게는 내일이 없다 "수행자에게는 " 오직 "지금·여기"가 있을 뿐이다. 내일이나 모레를 기약해서는 안된다.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깨어있는 정신으로 직시하면서 묵묵히 코끼리 걸음으로 걸어가, "지금·여기"가 바로 삼천대천 세계의 근본자리이며, 바로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자 영겁의 시간을 머금고 있는 자리이다. 고로 올바른 신행을 하는 사람은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그대로 영원이요 무한의 시간으로 살아간다.” “지금·여기가 그대로 도량이다, 자성이 그대로 사찰이다. 세속을 떨치고 입산해야만 입산이 아니고 몸을 일으켜 집을 떠나야만 출가가 아니다. 마음의 산, 마음의 도량으로 입산하고 출가해야 한다. 밖으로 끄달리고 집착하는 마음을 거두고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 그대로 귀의이다.”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 즉, 가정 ..
마음에 믿음 믿음의 땅 위에 사람을 세운다 세상을 사는 순리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에 의해서 사람 관계가 좋은 사이로 유지되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먼저 사람의 마음에 감정의 균열이 생기며, 의심과 조바심이 일어나 불안감마저 조성되게 된다.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질 때는 스스로의 마음에 믿음이 생길 때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내가 너를 믿는다는 자기의 예상대로 상대의 행위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두고 흔히 쓰는 말이지만 알고 보면 그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불교에서의 믿음이란 범어 ‘스라다(sradha)’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은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났을 때 내 마음속에 ‘아! 그렇구나.’ 하는 이해와 확신이 생기는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선정삼매 지혜와 고요함은 다르지 않은 거 같다. 욕심 없음, 즉 분별하여 집착함이 없는 마음냄이 지혜이다. 다시 말해 지혜로움은 욕심내지 않는 평화로운 마음이고, 욕심 없는 상태가 고요함(선정)이다. 스스로를 볼 때 분별집착 없이 고요한 적이 있는가를 살펴본다. 행동이 태산 같지 못하고 말이 앵무새 처럼 산란한 것을 보니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지혜롭지 못한 것이니 참회하고 다시 또 시작한다. 주객이 분리된 상태에서 ‘알려진’ 것은 부분적 진실일 뿐이고 지성에 의해서 대상을 파악하고 언어로 표현한들, 그것은 개념에 불과할 뿐 살아있는 구체적 사실로서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세존께서도 처음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주객으로 분리한 채 물으시다가, 마침내 주객이 일치한 상태[中道]에 이..
눈에 보이는 대상에끌려다녀 종노릇 하지 말라! 빛깔도 모양도 냄새도 더더구나 빗장도 없는 마음의 문이 관성과 업력으로 떠다니며 제멋대로 여닫으면, 그것은 범부의 용심(用心)입니다. 수행의 동력을 통해 얻은 지혜로 어디서나 자유롭게 여닫되 만물을 유익하게 하면 그것은 바로 성인의 지혜입니다. 따라서 오로지 부처님께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버리라고 하셨던 그 가르침 하나를 가지고 우선 자기를 단련하세요. 그것은 분수와 위치를 알고 자기 역할을 하는 것에서 이뤄집니다. 어리석은 마음 욕심 분노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욕망으로부터, 아는 것으로부터,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때 마음은 그 본래의 빛을 찾습니다. 언뜻 지식의 습득과 지혜의 전승과정은 그렇게 상반되고 대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바탕으로 한 유용한 지식은 다시 큰 바다에서 합류..
관념 불교! 관념 불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끊으면 부처되는 길도 그만큼 가까워져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사람이다. 최고의 지혜를 갖춘 부처로서 생각하건데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존재이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유하려다 보면 도리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본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에게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가장 싫어하는 네 가지의 상(相)이 있는데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다. 이 네 가지의 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또한 자신이 이것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세존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에 우..
법문!!! 다 내 안에 있다 나라·세계 살리는 힘도 내 안에 있어~아픈 사람 보고 마음 내는 것도 보살행~내 안에 보배 두고 왜 구걸하며 사는가,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좀 더 지혜를 넓히고, 마음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걸림없이 돌아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불교다 하면 어렵게만 생각하시고 머리깎은 사람만 하는 공부인 줄 아시는데 그게 아닙니다. 일체 세계, 우주 전체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불교죠. 살아있는 생명의 근본이 ‘불’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이 바로 ‘교’인 것입니다. 풀 한 포기만 살아있어도 불교인데 네 종교 내 종교 따지는 것은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죠. 모두를 포함한 것이 바로 불교인데 말이다. 공부를 하다 보면 마음의 폭이 넓어지고 또 한마음이라는 그 자체는 그냥 송두리째..
나[我]를 돌아보기 우리나라 사찰에 가보면 팔상전(八相殿)이라는 법당이 있습니다. ‘상’이란 글자는 ‘서로 상(相)’자로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여덟 가지 과정을 그림으로 그려 모시는 법당을 팔상전이라 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과정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팔상도입니다. 그중 첫 번째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입니다. 도솔천은 삼계 중생세계에 속합니다. 중생세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로 나누어집니다. 그 가운데서도 욕계에 육천이 있는데 육천 중의 하나가 도솔천입니다. 그곳은 중생세계이지만 모두가 자비심을 가지고 공덕을 닦는 곳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성불하시기 전에 도솔천에서 공덕을 닦으셨습니다. 선행에 따라 선혜보살, 호명보살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며 보살행..
묘법연화경제6권-법사공덕품 세존께서 상정진보살마하살에게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법화경을 수지하여 독송커나 해설커나 서사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팔백의 눈의 공덕과 일천이백의 귀이 공덕과 팔백의 코의 공덕돠 일천이백의 혀의 공덕과 팔백의 몸의 공덕과 일천이백의 뜻이 공덕을 얻으리니, 이러한 공덕으로써 육근을 장엄함으로 하여금 다 청정하게 되리라. 이 선남자 선여인은 부모로부터 받은 청정한 육안으로 삼천대천 세계의 내외에 있는 산과 숲과 강과 바다를 보게 되며, 아래로는 아비지옥에 이르고 위로 유정천에 이르기까지 또 그 가운데 있는 일체 중생과 업의 인연과 과보로 나는 곳을 보아서 다 알리라.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하사 게송을 설해 말씀하시었다. 만일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이 법화경을 설하는 그 공덕을 그대는 ..
나무에 구멍을 뚫듯이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뚫듯이 그렇게…. “내 속에서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할 인과로서의 업이 자꾸 나오는데 나오는 대로 놓고 놓아서 놓는 것마저도 없다 할 때까지 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게 공했다더라’하면서 놓으면 그냥 공으로 빠져 몰아지지를 않는다. 그러기에 공도 아니고 색도 아닌 데서 주인공 하나를 세워 놓고 전부를 주인공으로 몰고 들어가라고 한 것이다. 빠져나갈 틈이 없이 몰고 들어가는 게 몰락 놓는 것이다. 그렇게 몰다 보면 마치 젖을 쥐어짜서 유선이 터지게 하듯이 답답해져서 빠져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쑥 빠지고 모는 그것만 남게 몰아붙여라. 그렇게 몰다보면 참나가 나온다. 바퀴가 구르려면 중심축이 잡혀 있어야 한다 . 맷돌도 정중앙에 심봉이 딱 꽂혀 있어야 곡식을 갈아낼 ..
비록 적게 가졌어도 나눌줄 알아야 보살” -염불은 부처님 만나려는 수행 불·보살 명호 마음에 채우면 일체 사량분별 끊어집니다 이곳 산 골짜기에도 이른 아침마다 맑고 투명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한결 정겹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경제 한파로 얼어붙은 중생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봄이 오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때일수록 많이 가진 이들이 적게 가진 사람들을 돌보며 지켜주는 보살행을 펼쳐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가족의 생계유지에 빠듯하고 여유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받아들여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온정을 베푸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 펼치는 보살행의 근원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 힘은 의외로 소박한 곳에서 나옵니다. 우리들의 번뇌가 고통에서 나오듯 보살행도 고통에서 시작..
베풀면 베푼만큼 불어서 돌아와! 나라 살리는 힘도 내 안에 있다. 아픈 사람 보고 마음 내는 것도 보살행-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좀 더 지혜를 넓히고, 마음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걸림 없이 돌아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불교다 하면 어렵게만 생각하시고 머리 깎은 사람만 하는 공부인 줄 아시는데 그게 아닙니다. 일체 세계, 우주 전체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불교죠. 살아있는 생명의 근본이 ‘불’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이 바로 ‘교’인 것입니다. 풀 한 포기만 살아있어도 불교인데 네 종교 내 종교 따지는 것은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죠. 모두를 포함한 것이 바로 불교인데 말입니다.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마음의 폭이 넓어지고 또 한마음이라는 그 자체는 그냥 송두리째 진리로서 초월해서 돌아가는구나 하는 것을 뚜렷하게 ..
허공계가 다 하는 날까지 “허공 끝이 어디인가?” “허공은 끝도 없고 시작도 없습니다.” 허공도 내 안에 있습니다.” “내 마음에 따라 춤을 춥니다.” 사람들이 독거유희락(獨居遊戱樂)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본래지당(本來知堂) “우리 마음은 본래지(本來知) 습성지(習性知) 두 가지입니다 본래지의 마음은 대자연의 마음이요 천연의 마음이라면 습성지의 마음은 세세생생 본인의 습관이 쌓여서 만들어진 마음입니다 본래지는 天地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며 시방법계 두두물물 산하대지 어디에도 꽉 차 있는 신령한 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의 마음은 다겁생으로 익혀 온 습성지의 마음입니다 탐진 치, 거짓말, 양설(兩舌), 악구(惡口), 시기질투, 어리석음, 명예욕이 습성지의 마음입니다.” 인연 이전 본래지는 식(識)도 아니고 ..
인연 존재와 실상 어떤 존재도, 어떤 사건도 따로 떨어져 일어나지 않는다. 그 모든 존재며 생명들도 서로 깊은 연관이 되어 만나며 그 모든 사건들 또한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일어난다. 모두가 그럴만한 인연 따라 정확한 필요에 의해 일어난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필요를 가지고 그 자리에 그렇게 진리로써 여여하게 있는 것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전체로써의 하나’인 법계의 진리 인연으로 그 자리에 진여로써 있는 것이다. 산하대지현진광(山河大地現眞光)이란 말처럼 산하대지 모든 것이 참 진리 빛의 나툼이요, ‘길가에 구르는 돌맹이도 쓰일 곳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모든 존재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법계의 진리의 사명을 띄고 그 자리에 존재한다. 모든 일, 모든 사건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의 그 어떤 ..
和顔愛語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나 증오는 곧 그 사람의 표정으로 나타납니다. 얼굴 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든지 호흡이 거칠어지는가 하면 눈도 충혈되고, 온몸을 부르르 떨기도 합니다. 이렇듯 변한 우리의 모습이 바로 나찰 귀신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일단 화가 나면 대부분의 경우 이성을 잃기 십상입니다. 평소 와는 달리 거친 욕도 하고, 심한 경우 폭력을 휘두르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우리 의 모습이 바로 나찰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나 자신일 수 있다는 사 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나찰이나 야차 같은 귀신들이 결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분노로 일렁이고, 욕심으로 한없이 요동을 치고 있 을 때 내가 바로 야차요, 나찰인 것입니다. 또한 이같은 분노와 욕심이 ..
無念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見性)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니 이 법문은 옛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體)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本)을 삼고,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無相)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無念)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無住)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前念)과 지금의 생각(今念)과 다음의 생각(後念)이 생각생각 서로 ..
“매사 긍정하는 마음 파동이 곧 극락” 마음도 굳어지면 분열되면서 부스러기가 생깁니다. 마음이 굳어서 생긴 부스러기, 그것은 아지랑이 같고 연기같이 뿌옇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그것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업(業)이라 말씀하시고 경전에서는 형진(荊塵)이라 칭했습니다. 업은 집착할 때, 욕심낼 때, 화낼 때, 허망된 생각을 할 때, 이렇게 마음이 딱 굳을 때 생깁니다. 촛불이 잘 타다가 바람이 불거나 흔들리면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하면서 그을음이 나옵니다 여기 있는 이 책상도 몇 백 년이 흐르면 쩍쩍 갈라지고 부서져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이 정치를 하기 때문에 경제도 굳는 것입니다. 돈은 행복의 바로미터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심성이 가장 안 좋은 나라가 우간다이고 우리가 두 번째라고 합니다...
연의 존재 (연의 존재 ) 내 처지를 생각하는 것도 연상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등 무간 연(等無間緣)이다. 유채꽃과 같은 물질은 등 무간 연이 될 수 없다. 등 무간 연이란! 마음의 활동에서만 원인으로 작용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은 보통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선은 우리의 생각 즉 기억을 한 장면으로 고정시킬 수 없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장면의 상황을 다시 끌어내어 계속 생생하게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서 후자는 등 무간 연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한 가지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비슷한 장면의 정지된 사진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영화의 경우에는 장면과 장면이 잴 수 있을 정도의 시간 간격으로 ..
법을 찾아 부단히 가는 길 문제가 생기면 삶은 우리의 행동에 그 답을 묻습니다.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가?』하고 그러나 결과가 잘못되면 사람들은 반문한다 왜 이렇게 해야 하지? 그러나 우리가 부딪치는 삶의 문제는 포기할 수도 없고 풀지 않을 수 없기에 풀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존재를 제약하는 필연성이 모든 당위(當爲)의 근본 우리는 살아 있는 동물인 까닭에 행동을 전혀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용된 선택의 자유는 행동과 비행동(非行動)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행동 사이에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 우리가 당면하는 문제는 행동할까 행동하지 말까 하는 그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까 하는 그것이다. 어떤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결심은 행동을 전혀 않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달리 행동하겠다는 판단인 것이다. ..
무심으로 믿어라! 그대로 무심으로 믿어라! 한 생각 놓고 돌리면 구정물도 새물 돼, 종점이 시발점 되는 도리 알면 피안행, 마음의 용광로에 다 놓을 때 습 제거돼 보이는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계나 다 생명이 있기에 처처불이요 생활 자체가 고정되지 않아 사사 불공입니다. 본래 인생이 태어났으면 자기 뿌리와 싹이 동시에 같이 태어났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실 줄 알고 내가 미리 이 염주를 들고 나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염주가 되기에는 줄에다 이 알을 꿰어야 염주가 되죠? 그렇다면 사람도 이렇게 염주처럼 정신계와 물질계를 겸해서 가지고 나왔다 이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본래 어디를 찾아야 하고 어디를 믿어야 하고 이런 게 없이, 본래 이렇게 꿰어져 있습니다. 육신과 정신계가. 즉 말하자면은 염주알은 어디를 믿어야 ..
행복, 불행 누가 지었는가 누구나 가장 원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자신이 만든다는 것을 모릅니다. 어떤 이가 행복을 찾아 집을 나섰지요. 많은 세월 행복을 찾아 세상을 헤매었지요. 행복을 찾지 못한 나그네는 지쳐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담 넘어 매화가지에서 꽃망울 터진 것을 보고 행복을 느꼈습니다. 이 나그네처럼 우리는 공기를 마시고 살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또 다른 곳에서 공기를 찾고 있는 셈입니다. 스스로 진리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서 밖에서 진리를 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만인이 귀착해야 할 깨달음은 멀리서 다른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안에서 나 스스로 발견해야 합니다. 간혹 불자 중에는 불교를 '부처 믿는 종교'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자기를 찾을 ..
빈 손 시간은 쉼 없이 일초 이초 삼초. 재깍재깍 “ 한 순간 잠시도 쉬지 않고 빨리 돌아간다. 하루가 날마다 바삐 움직이며 걷고 뛰며 살아가게 되는데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만 간다. 언제쯤이면 빨리 지나갈까 하는 생각을 가운데 하루를 지나고 보면 어느덧 따사로운 봄이 마침내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또 다시 뜨거운 여름이 오고 마침내 가을 단풍잎이 물드는 계절과 함께 또다시 추운 한 겨울이 금방 찾아온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흘러가는 시간과 세월 속에 나이는 하나 둘 늘어만 가고 어느새 우리들은 청년기를 지나서 흰머리가 하나씩 늘어나는 노년이 되어 서서히 보이지 않는 죽음의 시간들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되돌아 지나온 세월과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서 그 긴 세월 속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루어..
함께 살면서도 몰라봐 부처님이 오시기 전에 도솔천이라는 하늘나라에 계셨는데 중생이 사는 세계를 내려다보니까 도솔 천하고 조건은 다르지 않더라고 합니다. 조건은 같은데 다만 그 마음 씀씀이만 달랐어요. 다투지 않아도 되는 걸 다투고, 갈등을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걸 표현하고, 자존심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걸 세우면서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 괴로워하는 거예요. 어리석음과 욕심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방하고 편가르고 이리저리 왜곡하며 수작 부리며 살아가고 있어요. 세상을 굴절시켜 보는 사람은 항상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어요.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그건 오직 내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지, 누가 갖다주는 게 아니에요. 행복해지려면 좋은 사람, 좋은 일을 바로 볼 줄 아는 눈을 떠야 합니다. 삐뚤어진 눈을 ..
당신은 긍지가 넘치는 모습으로 하루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만큼은 모든 것이 맑아 보이는군요. 하늘의 따사롭게 빛나는 태양도, 폭신폭신해 보이는 구름도 모두 당신의 가볍고 즐거운 마음을 격려해 줍니다. 그런 당신은 오늘은 더욱 청명한 모습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만나게 될 것 같군요. 평소엔 지나쳤던 작은 것들... 나무 위에 있는 작은 새와 이야기를 나누고 낮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를 쓰다듬어주고, 누군가 무책임하게 버린 휴지도 치우고 싶은 마음도 샘솟고, 하는 일마다 보람과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순수한 마음을 지닌 당신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멋진 사람'으로서 각인 되게 될 것이고요. 당신은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느끼고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각박한 세상 ..
망상과 분별심 어디 있는가? 크게 깨침을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부처의 설법인데, 저 푸른 산이 어찌 법신 부처의 몸이 아니랴 어제까지는 시끄럽고 듣기 싫은 물소리인데 깨치고 나니까 부처님 말씀처럼 들리며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묘한 자연의 모습이 바로 부처라는 뜻 만고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도 부처님의 법을 설하고 있으며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과 오손도손 하게 살고 있는 집이 진정한 불국토(佛國土)라는 것입니다. 이 법계(法界)의 모든 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문이고 그것은 물을 마신사람만이 물의 도움을 알듯이 깨달은 사람만이 오직 느낄 뿐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깨달은 사람의 공상에서는 오직 극락세계요, 바로 정토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치지 못한 중생들에게는 괴로움과 고통의 세계 암흑의 세계 일 뿐입니다. 흔히 미..
내 것 아니면 절대 탐하지 마세요 평생 좌우명을 삼을 만한 말씀 나쁜 일 하지 말고 좋은 일 해라(諸惡莫作 衆善奉行) 세 살 먹은 아이도 말하기는 쉽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다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륜패륜 범죄사건은 너무도 많아 일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당사자도 어떤 것이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행하지를 못하니 범죄자가 되고 패륜아가 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잘해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가 없다 자기가 아무리 잘해도 인연이 아니면 어떨수 없다 우리는 항상 좋은 인연을 만나기를 발원하며 업장을 소멸해가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한 몸이요 만물이 나와 일체라는 일진법계도리를 모르고 그래서 분수 넘치는 욕심을 내다보니 세상일이 마음대로 안돼 화를 냅니다...
노년에 생로병사! “마음을 쉬면, 매사 걸리는 게 없으면 자연스레 건강해집니다. 병의 80%가 마음에 달려 있지 마음을 불편하게 쓰면 건강이 좋지 않아요. 하지만 마음만 바로 닦아 놓으면 지진이 나서 야단이 나도 극락이 바로 거기에 있는 도리가 나옵니다. 불교가 바로 그 마음 닦는 도리예요.” 곧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이 집중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늙으면 나이가 많다는 한계의식(壽者相)에 사로잡혀 매사 의욕도 떨어지고, 육체적인 노쇠로 말미암아 병고에 시달리는 게 인지상정인데 유난히 건강하신 스님의 비결은 바로 수행에 있디 “마음을 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 맨손체조와 호흡운동, 이틀에 한 번씩 냉온욕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세상 사는 동안 육체를 잘 다스리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제 건강도 못 건사하면서 중생을 ..
내 안에 그대... ( 독바위에서...) 초로의 길 목에서 찾아오는 외로움 길가에 가로등 아래서 눈 마주치는 낯섦에 쓸쓸함이 쌓이네 또다시 길 나서면 낯섦이 또 다른 나를 반기네 정녕 그대가 그리워 바람 부는 대로 세월 가는 대로 사바의 인연 구름 타고 떠나가리 자비로운 여인이여..... 그냥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좋으련만....! 그대와 함께하고파 갈 바람 타고 그리운 님 찾아 부단히 길 떠나간다
淸 天 문득 바람이 일면 고요한 石塔의 風磬소리에 고즈넉한 밤 한 잔 차 의 따스함에 젖어 한 가닥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 마시노라면 가득 고인 그대의 香 텅 빈 세상 우리는 언제나 속고 사는 他人 쪽빛 하늘에 얼굴 하나 生은 한 조각 뜬 구름 날때에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이제 어느 곳으로 향하여 가는가 삶과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다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 뜬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 오고 감이 없는 뚜렸한 한 물건은 무엇인고 한량없는 목숨이 바다를 건너 다시는 고해로 오자 말라는 염원 우리는 언젠가 생멸의 통로를 따라 진한 흙빛으로 돌아갈 생각에(사성재) 무상 한 가닥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듯 생은 한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멸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_()_